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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천안 천흥사지 5층석탑(보물 354호), 고려전기 양식을 잘 보여주는 석탑

younghwan 2014. 7. 2.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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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 성거읍 천흥사 절터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에 세워진 오층석탑(보물354호)이다. 지대석 위에 2층기단을 놓고 그 위에 5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기단부는 1층은 낮게, 2층은 높게 만들었다. 윗층 기단은 각 면마다 1개씩 4개의 판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로 되어있으며 1층 기단은 높게,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높이가 줄어든다. 통일신라 말기 석탑이 작고 정형화된 형식인데 반해 웅장하면서 전체적인 비례에 있어 조형미가 있는 통일신라 전성기 석탑을 연상시키고 있는 석탑이다.

천흥사는 천안 성거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었던 사찰이었다. 천흥사종(국보280호)를 비롯하여 보물로 지정된 오층석탑, 당간지주 등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성종대에 폐사지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조선이 들어서면서 많은 토지와 노비를 소유하고 있던 사찰들이 억압을 받았던 시기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천안 천흥사지 5층석탑, 보물 354호, 충남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천흥리
천흥사터에 서 있는 고려시대의 탑이다. 2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거대한 모습으로, 고려왕조 시작 직후 석탑의 규모가 다시 커지던 당시의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다. 탑신을 받치고 있는 기단은 아래층이 너무 얕아 마치 1층으로 된 듯 하다. 아래층 기단의 4면마다 7개씩의 안상이 촘촘히 조각되어 있다. 위층 기단의 4면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겼다. 몸돌은 4면의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겼다. 몸돌은 4면의 모서리에만 기둥 모양을 뚜렷하게 새겨 놓았고,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줄어드는 비율이 비교적 완만하다. 지붕돌은 얇고 너비가 좁으며, 밑받침이 3단으로 매우 얕게 조각되었다. 경사면은 가파르다가 이내 수평을 이루고 있어 그 반전감이 크고, 네 귀퉁이에서의 들림은 날아갈 듯 가뿐하다. 전체적으로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돌의 구성에도 규율성이 있다. 특히 탑신에서 보이는 완만한 체감율은 온화하고 장중한 느낌을 더해준다. 절터에는 탑 외에도 천안 천흥사지 당간지주(보물99호)가 남아 있으며, 동종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동종은 남겨진 기록에 의해 고려 현종 원년(1010)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 탑 역시 이와 시대를 같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천안시청>



천안시 성거읍 성거산 자락에 위치한 천흥사 절터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석탑이다. 높이 5.27m로 고려시대 석탑 중에서는 규모가 크고 조형미를 갖추고 있어 웅장한 느낌을 준다.


2층으로 된 석탑 기단부. 아랫층은 낮고, 위층은 높게 만들었다.


아랫층 기단부에 새겨진 안상


탑신 몸돌은 1개의 돌로 만들었으며,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을 새겨 놓고 있다. 몸돌에 조각을 새겨놓고 있지는 않다.


지붕돌도 1개의 돌로 만들었으며, 날렵한 느낌을 준다. 위로 올라갈수록 높이가 낮아져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천흥사지 오층석탑. 뒷편에 최근에 지은 사찰이 보인다.


석탑은 남아 있는 천흥사지. 석탑 주변에 불전들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찰입구에 세워진 당간지주가 이곳에서 400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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