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산성 81

남한산성, 남문인 지화문(至和門)

남한산성은 한성 백제시대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는 통일신라가 이 곳에 주창성을 쌓고 한강유역을 지키는 중요 산성으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 중기까지도 남한산성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임진왜란 이후 청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서 수도인 한양을 지키는 성곽으로서 그 역할이 크게 중요시 되었으며,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피신했던 성으로 45일간 이곳에서 항전하였다. 지금에 와서 볼 수 있는 견고한 석축과 방어시설이 완비된 산성으로의 모습은 상당부분 숙종때 쌓은 것이며, 정조대에 크게 개축하였다고 한다. 남한산성에는 동.서.남.북 방향으로 4개의 성문을 두고 있는데, 그 중 성남에서 올라오는 출입문인 남문에 제일 큰 규모로 실제 남한산성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 송파나루와 ..

[중앙박물관 통일신라실] 문자와 지방 생활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경주를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인 국가를 세우기는 했지만, 조선시대처럼 지방관을 파견하여 행정적으로 완전히 지방을 장악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제도적으로는 신문왕때 전국을 9주로 나누고 그 아래 군현을 두는 체제를 완성하였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 백제의 수도인 한성, 웅진, 사비가 국제적인 도시로 발전했지만 통일 이후에는 모든 경제력이 경주로 집중되어서 지방은 그 면모를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문헌적으로나 발굴된 유물에서 통일신라시대에는 지방도시들이 큰 번성을 누리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며, 신라의 귀족들이 이주한 소경을 비롯한 일부 도시에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당시 지방의 모습을 보여 주는 유물들은 주로 군사적인 성격을 지닌 산성에서 출토..

중앙박물관 2011.06.08

제천 청풍 망월산성, 남한강을 지키던 신라의 산성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의 옛 청풍도호부 관아가 있던 마을 뒷편에 위치한 망월산 정상부를 둘러싼 망월산성이다. 청풍은 남한강 중류의 충주와 단양 사이에 있는 고을로 남한강 수운과 죽령길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중요한 지역으로 종3품관인 부사가 수령으로 있던 큰 고을이다. 남한강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옛부터 경북지역에서 죽령을 넘어 서울로 여행하던 많은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던 고장이다. 망월산성은 망월산 정상부에 작은 규모로 석축을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여주 파사산성, 충주 장미산성, 단양 적성산성과 온달산성과 함께 삼국시대에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해 신라와 고구려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시기에 처음 세워진 산성으로 보인다. 원래 쌓았던 산성의 석축은 없어지고 지금은 옛모습을 추정하여..

[오산 독산성] 세마대지, 권율장군이 흰쌀로 말을 씻어 왜군을 물리친 전설이 있는 산성

오산 독산성은 수원, 기흥, 동탄의 넓은 평야지대를 내려보고 있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산성이다. 북쪽으로 수원 광교산까지는 산이 거의 없는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어, 독산성에 올라서면 상당히 넓은 지역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이 곳은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거점이지만, 산성내에 물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고, 그래서 임진왜란때 권율장군의 세마대 전설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독산성은 남한산성 등과 더불어 수도 서울의 남쪽을 지키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산성으로 그 역사는 삼국시대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독산성은 산정사 부근에 성벽을 쌓은 퇴메식 산성으로 산성의 규모는 크다고 볼 수 없다. 현재 성벽을 쌓은 규모로 보면 남한강변을 지키는 적성산성이나, 온달산성과 비슷한 규모로 보이며..

단양 적성산성, 남한강변 죽령길을 지키는 신라의 산성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금석문이 있는 비석 중 하나인 단양 신라적성비가 있는 적성산성이다. 조령과 더불어 영남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중요한 통로 중의 하나인 죽령을 지키는 산성으로 남한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성재산에 자리잡고 있다. 이 적성산성은 남한강 북쪽에서 쳐들어 오는 적을 제압하는 목적으로 쌓은 산성으로 신라에게 유용했던 산성으로 보인다. 대부분 성벽은 최근에 복원된 것이라 하며, 성을 쌓은 방법과 형태를 보면 보은의 삼년산성 비슷한 신라계 산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단양 적성산성 정상 부근. 이 성벽위에 서면 발아래로 남한강이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적성산성에서 내려다 본 남한강 단양 적성산성 성벽위에는 흙이 깔려있지 않다. 단양 적성산성 내부 성벽적성산성 성문. 남한강 방향으로 성문이 있..

여주 파사산성, 신라 파사왕이 쌓은 남한강변을 지키는 산성

우리나라 역사에서 조선시대까지 중요한 교통로 중의 하나였던 남한강 수운을 지키는 여러 산성중에서 하나인 여주 파사산성이다. 이 성은 삼국시대 신라 파사왕때 쌓은 산성으로 당시 고구려와의 투쟁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산성이다. 그 후로도 한강 수운을 지키기 위해서 이 성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한강에 있는 많은 나루터중에 하나인 이포나루를 지키는 이 성은 조선시대 수도 서울을 지키는 중요한 성들 중의 하나였지만, 이 곳 주민들은 이 성을 쌓고 유지하는 데 비협조적인 것으로 여러 기록들에 남아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이 산성의 형세를 보면 북쪽은 산악지대이고 남쪽은 여주와 이천의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파사산성을 쌓은 파사왕의 의도에서 알 수 있듯이 북쪽으로부터의 침입을 막고자 하..

파주 중성산 칠중성(七重城), 나.당 전쟁과 한국전쟁 격전의 현장

파주 임진강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칠중성(七重城)입니다. 워낙 격전이 많았던 곳이고, 특히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던 파주 감악산 인근에서 가장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던 곳이어 과거의 성벽과 시설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한국전쟁의 연장선으로 많은 참호들과 군사시설이 있는 곳입니다. 칠중성이 있는 이 곳은 남북한 세력이 부딪히는 임진강 중류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고구려와 백제의 투쟁, 고구려와 신라의 투쟁, 나.당 전쟁과 최근의 한국전쟁의 격전장입니다. 그래서 부근에 고구려성과 백제토성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칠중성이 있는 중성산 정상에 올라서면 북쪽 임진강 방향을 막힌 산이 없어서 조그만 움직임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지형적 특징으로 인해 전략적 중요성을 한눈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서울 아차산성, 백제 수도 위례성이 내려다 보이는 산성

서울의 동쪽 경계인 지금의 워커힐 호텔이 있는 뒷산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이다. 백제의 수도 위례성을 한눈에 내려볼 수 있는 아차산에 쌓은 산성이다. 백제가 수도 위례성을 방어하기 위해 처음 쌓았으며, 이때는 토성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고구려가 아차산성을 점령하고 이 일대에 군사시설인 보루를 건설함으로써 백제 위례성에서 물러나 공주지역으로 수도를 옮길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성곽은 중간크기 돌을 촘촘하게 쌓고 있는데, 고구려 산성축조법의 영향을 받은 신라가 한강유역을 장악하면서 쌓은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따르면 아차산성에서 백제 개로왕이 전사하였다고 하며, 신라가 한강유역을 장악한 이후 고구려의 온달장군 또한 이곳에서 전사하였다고 전해진다. 아차산성에서 거의 유일하게 산성임을 눈으로..

단양 온달산성, 온달장군 전사한 장소라는 전설이 남아있는 곳

온달산성은 단양에서 남한강을 따라서 상류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소백산자락 아래 남한강변 성산에 자리잡고 있는 산성이다. 삼국시대에서 신라 전성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고구려와 신라 간에 힘겨루기가 치열하게 있었던 장소로 고구려 온달장군이 전사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산성의 이름은 온달산성으로 고구려 산성으로 여겨지는 곳이지만, 산성이 위치한 장소가 북쪽으로부터의 적을 제압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보아서 신라의 산성으로 여겨진다. 성을 쌓은 방법을 보면 작은 돌로서 촘촘하게 쌓은 것이 아차산성 등 고구려 산성과 비슷하기도 하며, 신라가 쌓은 보은 삼년산성과 비슷한 방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고구려, 신라 간에 주인이 여러번 바뀌었을 것 같다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곳 온달산성에 올라가면 남한강..

충주 장미산성(忠州薔薇山城), 남한강이 굽어보이는 삼국시대 고구려 산성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간 분쟁이 많았던 지역인 충주 인근 남한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장미산성입니다. 고구려와 신라가 세력권의 표시로 만들어 놓은 중원고구려비와 중앙탑이 있는 곳에서 자동차로 남한강변을 따라서 하류로 10여분 내려오면 있는 남한강 서쪽편 장미산에 장미산성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장미산성 중앙인 장미산 정상에 올라서면 남한강 상류쪽 충주 일대가 한눈에 들어와서 이 장미산성이 당시 국방상의 중요한 요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장미산성 성벽의 일부는 온전하게 남아있고 많은 부분은 허물어져 있지만 산성 자체는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충주 남한강변 중원고구려비와 중앙탑이 있는 지역에서 남한강 하류쪽로 도로를 따라서 자동차로 10여분 내려오면 남한강 서쪽편에 있는 나지막한 장미산이 있는 삼국시대 산..

부여 성흥산성 (가림성,사적4호), 백제수도 사비성을 지키던 주요 산성

부여 성흥산성은 해와 달이 뜨는 풍경이 아름다운 아름다운 장소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이 곳 성흥산성은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부여)과 웅진(공주)을 지키는 군사전략상 아주 중요한 곳으로 부여 서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부여 수도인 사비성을 가로 지르는 백마강(금강) 하류쪽과 주변 논산지역의 넓은 평야를 굽어보고 있어 수도를 방어하는데 요충지이다. 성흥산성이 있는 임천면은 조선시대에는 임천군으로 현재 부여군에 속해 있던 부여현, 흥산현, 석성현보다 높은 지위의 군현으로 아마도 금강 수운을 관리하는 업무의 중요성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부여 성흥산성은 산정상을 돌과 흙으로 성벽을 빙둘러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남.서.북문터와 군창터, 우물터가 남아 있다고 한다. 산성의 규모는 아주 큰 편은 아니지만 적정한 수..

나주 자미산성, 고대국가 마한의 중심

나주 영산강 남쪽에서 영암 월출산까지의 넓은 평야지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 지역은 고대국가 마한의 중심지이고, 그 중심에 해발 100m도 되지 않는 낮은 야산에 자리잡고 있는 자미산성이 있다. 이 자미산성은 백제 테뫼식 산성으로 백제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산성의 역할을 해 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자미산성은 영산강 이남 하류지역을 관장하는 곳으로 마한시대부터 후백제 견훤과 고려 태조 왕건과의 투쟁, 삼별초 항쟁 등 다양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이 주변 지역은 반남 박씨의 본향이기도 하다. 물론 자미산성은 지금 이름만 산성이고, 성벽이나, 성문지 같은 유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는 상태로 산성이었다는 의미만 간직하고 있다. 자미산성 입구 자미산성 오르는 길. 자미산성은 해발 100m가 되지 않는 낮은 ..

부여 부소산성

부소산성은 부여의 금강산변 낮은 야산인 부소산성에 쌓은 성을 말한다. 부소산성은 백제의 산성 형식을 보여주며 자연적인 능선을 쌓아서 산성의 형태를 만든 것으로 돌을 쌓은 흔적을 찾기는 약간 힘들다. 그렇지만 산성이 백마강을 끼고 요새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공략하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 부소산성 내 유물/유적: 1. 계백, 성충, 홍수 3명의 충신을 모신 사당: 삼충사 2. 3천궁녀가 떨어진 낙화암, 백마강 그리고 고란사 부소산 정상부근의 반월루 입니다. 부여시내와 금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입니다. 부소산성내에 있는 누각인 영일루 입니다. 부소산성내에 있는 숙영지인 군창지입니다. 부소산성의 성벽이었던 것 같은데 잘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경주의 반월성이나 행주산성도 비슷한 양상을 보입니다. 백제성인 토..

[서울 북한산성] 대동문에서 대성문까지

북한산성 중에서 성벽이 능선을 따라 가장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는 구간입니다. 정릉, 수유리 등 서울의 동쪽에서 북한산을 등반하게 되면 통과하게 되는 성문들입니다.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산성의 성벽을 느낄 수 있고 서울의 동쪽 부분의 경치를 멀리까지 감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북한산성 안쪽에서 본 대동문입니다. 북한산성 바깥쪽에서 본 대동문입니다. 대동문 바깥 쪽에서 본 성벽 북한산성 성벽 대동문 현판과 문루. 북한산성 성곽길. 이런 형태로 능선을 따라서 성벽이 있다. 이 성곽은 워낙 높은 능선에 있어서 쌓느라 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 군데군데 위치한 치. 가파른 언덕길. 능선을 따라서 이어진 북한산성 성벽, 문수봉까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성벽위서 내려다본 서울시가지 멀리 남산타워가 보인다. 대동문..

[서울 북한산성] 대남문, 청수동 암문

북한산성은 서울의 북쪽에 자리한 북한산을 둘러싸고 있는 성이다. 그래서 북한산성의 성벽들은 대부분 해발 500m이상의 능선을 따라서 쌓았고 그 중 구기동을 통해서 올라가면 문수봉 옆 고개길에 있는 대남문을 만날 수 있다. 북한산성 성문중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대남문입니다. 문수봉 바로 아래에 있는 고개에 있습니다. 성문을 통해 등산객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대남문 성문 대남문 문루와 현판 문수봉 방향으로 성벽이 계속 연결되어 있습니다. 대동문에서 대남문으로 연결된 성벽, 이 쪽 성벽이 제일 완벽하게 북한산성 성벽을 체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북한산성 성벽 대남문 성벽 위의 풍경입니다. 등산객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북한산을 감상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먼곳에서 바라본 대남문입니다 문수봉과 비봉 사..

행주산성 정상 행주대첩비, 덕양정, 충의정, 기념탑.

한강 하류에 자리잡고 있는 행주산성은 건너편의 개화산과 더불어 평지에 솟아 있어 멀리서도 쉽게 보이는 유적지입니다. 행주산성 정상에는 이정표 역할을 해 주고 있는 기념탑과 조선시대에 세운 대리석으로 만든 대첩비가 있고, 특별한 유적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대첩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70년대 성역화 사업된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것들입니다. 행주산성 정상에 오르는 길이 끝나는 부분입니다. 발 아래로 한강이 흐르고 정상부에 위치한 기념탑과 대첩비각이 보입니다. 행주산성 정상부로 오르는 길입니다. 성역화 사업으로 조성된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아늑한 분위기를 주고 있는 길입니다. 행주산성 정상으로 오르는 길 옆으로 있는 숲속길입니다. 이 숲속길로도 정상으로 오를 수 있습니다. 행주산성에서 가장 좋은 경치를 감상할 ..

행주산성 입구의 권율장군 동상과 대첩문, 오르는 길

행주산성은 임진왜란 중에 있었던 3대 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의 현장으로 우리에게 아주 가까히 있는 유적지입니다. 산성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남한산성처럼 돌로 쌓은 성곽은 볼 수 없지만, 북쪽편에는 토성의 흔적이 일부나마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서울을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둔 곳입니다. 행주산성은 일산으로 가는 자유로변에 자리잡고 있는 유적지로 눈에 보이는 때는 많지만 잘 들어가지는 않게 되는 곳입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경치도 좋고 임진왜란 당시를 한번 되새겨보기에 좋은 장소입니다. 행주산성의 이름을 널리 알린 행주대첩의 영웅 권율장군의 동상이 산성입구에 우뚝 서 있습니다. 70년대 유적지 성역화 사업에 따라 조성된 전형적인 모습..

[남한산성] 서문(우익문)에서 북문(전승문)까지, 석양이 아름다운 곳

남한산성 서문에서 북문까지는 산성의 서북쪽으로 솟아있는 능선을 따라서 성곽을 쌓은 곳으로 한강이 흐르는 서울시내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남한산성 축성의 목적인 한강 수운을 제압하고 관리하는 기능을 가장 적절히 수행할 수 있는 곳으로 적들이 남한산성을 제압하지 않고는 이 곳을 지나서 남한강 상류 방향으로 진격하기 힘들고, 한강 이남 지역으로의 진출이 어렵기 때문에 삼국시대 초기부터 이 곳에 산성이 존재한 이유가 되는 곳이다. 이 곳은 또한 서울에서 일몰 풍경이나 야경을 촬영하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며, 실제로 이 곳을 찾았을 때도 많은 사진작가(?)들이 일몰장면과 야경을 촬영하기 위해서 오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서문에서 약간 위쪽에 있는 능선에서 서울 한강이남과 한강이 흐르는 모습이 가장 가까이서 ..

단양 온달산성 올라가는 길, 남한강 풍경

온달산성은 단양 영춘면 남한강 남쪽 성산위에 자리잡고 있는 삼국시대 산성이다. 신라가 쌓은 산성인지, 고구려가 쌓은 산성인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고구려 온달장군과는 연결되어 있는 유적지이다. 온달산성은 남한강 남쪽에 위치한 산 정상부에 쌓은 산성이라 경치가 상당히 휼륭하고 깊은 산중을 흐르는 남한강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북쪽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산성이라 신라에게 필요했던 산성이라는 느낌이 많이 드는 곳이다. 강건너편 언덕이 고구려에게 필요했던 곳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온달산성에서 내려다 본 남한강. 건너편 언덕이 온달장군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고구려가 이곳에서 진지를 구축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남한강을 경계로 고구려, 신라군이 대치했을 것으로 보인다. 남한..

한국의 풍경 2010.01.15

[공주 공산성] 북문인 공북루와 금강 옛다리 흔적

공주 공산성 북문인 공북루는 지금은 아무도 드나드는 사람들이 없는 외진 곳처럼 보이지만, 고대 이래로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공주에 금강철교(금강교)가 가설되기 전까지는 호남지역에서 서울로 통하는 거의 유일한 내륙교통의 거점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던 출입문이다. 공북루를 나서면 금강을 건너는 나루가 있었고, 후대에는 각종 다리가 건설되었다고 한다. 이 곳에서 금강을 건너면 걸어서 천안 차령산맥의 관문인 차령을 넘어서 서울로 향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공주 공산성은 동.서로 흐르는 금강 수운과 호남지역에서 연결된 남.북 내륙 교통의 거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으며, 그 관문이 공산성 북문인 공북루였다. 계곡을 둘러싼 포곡형 산성인 공주 공산성에서 정면이 뚫린 북쪽 방향에 북문과 공북루가 있다. 공북..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