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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이후 국왕이 주로 머물렀던 창덕궁 출입문인 돈화문이다.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바깥세상에서 궁궐로 들어오는 첫번째 문으로 경복궁의 광화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보물 385호 지정된 돈화문은 현존하는 궁궐 정문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412년 처음 세워졌으며, 임진왜란 이후 중수된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은 광화문과 달리 정전과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지 않고, 동궐 서쪽끝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정전인 인정전 정면으로는 조선초기부터 존재했던 종묘가 있었기때문이다. 이는 경복궁과는 달리 법도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자연지세를 적절히 맞추어 건물을 배치한 동궐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돈화문은 문루가 있는 2층으로 이루어진 출입문으로 석축으로 쌓아 성문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 광화문과는 달리 목재로 건축한 문루 형태를 하고 있다. 앞면은 5칸, 옆면 2탄의 남향건물로 법도에 따라 가운데에 3개의 출입문을 두고 있으며, 양쪽에는 벽체로 막아 놓고 있다. 돈화문은 국왕이 드나드는 의례적 성격이 강한 출입문으로 실제로 당상관 이상의 고위 관료와 3사(홍문관, 사헌부, 사간원)의 언관만이 출입이 가능했다고 하며, 나머지 신하들은 서쪽편 금호문으로 드나들었다고 한다. 경복궁이 중건되기 이전 조선후기에는 창덕궁 일대가 조선의 정치.행정의 중심지로 창덕궁 정문에서 종로까지 관아들이 밀집해 있었다고 한다. 2층 문루에는 시간을 알려주는 종과 북이 있었다고 한다.

돈화문(보물383호) 일원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은 왕의 행차와 같은 의례에 사용되었고, 신하들은 서편의 금호문으로 드나들었다. 창건 당시 이미 종묘가 창덕궁 앞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돈화문은 궁궐의 서쪽 끝에 놓여졌다. 궁궐의 중심부가 동쪽에 있기때문에 정문을 들어서면 동쪽으로 금천교를 건너 정전인 인정전 일곽과 연결된다. 1608년 재건된 돈화문은 2층 누각형 목조건물로 아래층은 출입용으로, 위층은 감시 전망용으로 사용되었다. 앞에 넓은 월대를 두어 출입시의 대기공간으로 사용했고, 원래는 여기서부터 종로까지 관청가가 조성되었다.



창덕궁 돈화문, 보물 383호로 지정된 우리라나에서 가장 오래된 궁궐정문으로 1412년 태종이 이곳에 상왕을 위한 궁궐을 지을 때 지은 것으로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대에 중수가 있었다고 한다.


돈화문은 동궐의 정문으로 성문처럼 석축을 쌓고 홍예가 있는 광화문과는 달리 목조를 이용해서 쌓은 궁궐 정문이다. 앞면 5칸으로 가운데 3칸은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양쪽 1칸씩은 벽으로 막아놓고 있다.


돈화문 앞 마당에는 원래 넓은 월대가 있었으나, 일제가 창덕궁에 차량이 출입할 수 있도록 흙으로 묻어버린 것을 최근에 복원하였다.


창덕궁 돈화문 앞 월대. 2단 정도로 석축을 쌓아서 월대를 조성했으며, 삼도의 형식에 맞게 계단을 설치해 놓고 있다.


돈화문 앞 월대 계단


돈화문 현판. 원래 창덕궁 돈화문에는 현판이 없었으나 성종대에 서거정에게 이름을 지어 현판을 걸게 하였다고 한다.


망루 역할을 했던 2층 문루에는 시간을 알리는 종과 북을 달아 놓아 일반인들에게 시간을 알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정오를 알리기 위해 북을 치는 오고, 통행금지를 알리는 28번의 종을 치는 인정,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33번의 종을 치는 파루가 있었다고 한다.


지붕을 바치는 공포는 다포계를 하고 있다.


겹처마 서까래에 단청을 입혀 놓고 있다.


지붕 추녀마루의 잡상. 궁궐 정문으로 7개의 잡상이 올려져 있다.


2008년 창덕궁 돈화문


2012년 창덕궁 돈화문



돈화문 내부의 우물반자 천정


창경궁 돈화문 출입문. 삼문의 형식으로 가운데는 국왕이 출입하는 문이며, 양쪽으로 신하들이 출입하였다. 돈화문 당상관 이상의 고위관료와 삼사(홍문관, 사헌부, 사간원)의 언관들만 출입하였다고 한다.


돈화문 문루를 오르는 계단


조선후기 돈화문에서 종로에 이르는 도로에는 정부 주요 기관들의 관아가 밀집해 있었다고 한다.


궁권 안쪽에서 본 돈화문(2008년)


2012년 돈화문


창덕궁 돈화문을 들어서면 국왕 직할기관인 홍문관, 내의원, 규장각 등이 모여 있는 궐내각사가 정면을 나타나고, 정전인 인정전을 비롯하여 궁궐건물들은 동쪽편 금천교를 넘어서 위치하고 있다.


궐내각사 입구에는 창덕궁과 후원이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음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창덕궁 서쪽편 작은 협문이 금호문. 당상관이상의 고위관료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신하들은 이 문을 통해서 창덕궁을 출입했다고 한다.


돈화문을 들어서면 주변에 8그루의 회화나무가 있는 수령 300~500년 이상된 고목들이다. 대체로 임진왜란 이후 창덕궁을 중건할 때 심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창덕궁의 회화나무
돈호문 안마당 좌우에 자라는 8그루의 회화나무가 모두 천연기념물이다. 나무는 높이 15.0~16.0m, 가슴높이 줄기 둘레 90~178cm, 나이는 300~500년에 이른다. 이곳 회화나무는 1830년 무렵의 창덕궁 그림(동궐도)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버린 창덕궁을 다시 지을 때 심은 것으로 짐작된다. 돈화문 주변은 조정의 관료들이 집무하는 관청이 배치되는 공간으로, 이곳에 회화나무를 심은 것은 '궁궐 정문 안쪽에 과목(회화나무와 느티나무)를 심고 그 아래에서 삼공이 나랏일을 논했다'는 중국 고사에 의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궁궐 이외에 학덕 높은 선비들이 사는 마을에 흔히 심었다. 그래서 학자나무라고도 한다. <출처:문화재청>


창덕궁 금천교 입구에 심어진 회화나무


창덕궁 입구 금천을 건너는 금천교. 궁궐 돌다리 중에서도 상당히 규모가 큰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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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 | 돈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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