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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석보는 전북 정읍과 김제의 경계선이 되는 곳인 정읍천과 동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둑을 쌓아 물을 가두어 두었던 보가 있었던 곳이다. 구한말 탐관오리의 대명사인 고부군수 조병갑이 고을 백성들을 동원하여 보를 쌓고, 과중한 수세를 거둠으로써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 구한말 동학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던 역사적인 현장이다.

 실제로 만석보를 쌓았던 지점을 보면 그 강폭이 그리 넓지 않고, 강을 막는데 동학혁명이 일어날 정도 과중한 공사가 아니었음에도,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욕에 의해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방에서는 당시에 만석보 상류에 농민들이 만들어 사용하던 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병갑이 농민들을 동원해 보를 쌓고 물세을 걷었다고 하니 그의 탐욕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만석보만 보아도 그의 탐욕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는데, 농민들이 폭발할 정도 다른 일에서 얼마나 많은 착취가 있었는지는 심히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조선시대 지방을 통치하는 관료들은 어느 정도 정부에서 착취를 용인한 면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구한말 정치와 행정이 마비되다시파 하던 시절에 지방관들의 착취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이며, 그 중에서 조병갑의 착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구한말 나라를 뒤흔든 동학혁명의 원인이 되기도 했던 조병갑 일가는 일제 강점기 이후에도 별탈 없이 호의호식했다고 하며, 그 후손은 21세기까 번창하고 있으니 탐관오리들의 뿌리는 깊고도 깊은 것 같다.


탐관오리의 대명사 고부군수 조병갑이 쌓았던 만석보가 있었던 자리. 동진강과 정읍천이 합류하는 지점 아래에 보를 쌓았다고 한다.  이 만석보는 동학혁명이 끝난 1898년 고부군수 안길수가 완전히 철거했다고 한다.


만석보 옛터 가는 길을 알려주는 표지석


동학혁명을 일으킨 농민들이 살았던 고부지역의 넓은 평야. 눈앞에 산이로고는 볼 수 없고 멀리 지평선이 보이는 지역이다. 이런 풍요로운 지역에서 얼마나 조병갑의 수탈이 심했으면 농민혁명이 일어났을까 생각된다.


만석보 옛 터로 들어오는 길


동진강변에 쌓은둑을 따라서 조금 들어가면 옛 만석보터였음을 알려주는 비석이 있고, 만석보가 있었던 자리를 볼  수 있다.


만석보 조감도. 동진강과 정읍천이 합류하는 지점 바로 아래에 만석보를 쌓았음을 알 수 있다.


이 곳이 동학혁명의 횃불이 타올랐던 가렴주구와 탐관오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조병갑이 쌓았던 만석보 옛 터임을 알려주는 표지석.


양성우 시인이 쓴 '만석보' 시비.


여기가 만석보 옛 터임을 알려주는 자리로 비석과 표지석이 있고, 시골 사람들이 즐기는 작은 공원이 있다.


만석보로 흘러들어오는 정읍천. 옛 다리를 볼 수 있다.


정읍천과 동진강이 합류하는 지점


만석보 옆에 쌓은 둑


정읍 만석보 옛 터

이 터는 농사에 사용하기 위해 냇물에 둑을 쌓아 물을 가두어 두던 보가 있었던 곳이다. 원래 정읍천 상류에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민보가 있었다. 그런데 조선 고종 30년(1893년) 고부군수로 부임한 조병갑이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만석보를 다시 쌓고 물세 명목으로 많은 세금을 거두어 들였다. 1894년 조병감의 각종 폭정과 과중한 세금 부담에 허덕이던 농민들이 마침나 일어나 이 만석보를 때려 부숨으로써, 동학혁명의 발단이 되었다. 동학혁명의 첫 횃불이 타올랐던 이곳에 1973년 사적비를 건립하여 그 역사적 의의를 기념하고 있다. <출처:정읍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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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정읍시 신태인읍 | 정읍 만석보 옛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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