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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유적

공주 우금치 전적지(사적 387호), 동학혁명 최대의 격전지

younghwan 2011. 4. 1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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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호남지역에서 논산, 부여를 거쳐서 서울로 연결되는 육로가 금강변 충청감영이 있었던 공주 시내에 들어오기 직전에 있는 마지막 고개가 우금치로 동학농민전쟁 당시 최대의 격전지이다. 동학혁명당시 정부와 체결된 전주확약이 지켜지지 않자, 동학 농민군은 2차봉기를 일으키고 전봉군이 이끄는 4천명의 농민군은 논산에서 손병휘가 이끄는 북접군과 합류하여 2만여명의 군세로 충청감영이 있는 공주로 진격했다. 호남지역에서 공주로 들어오는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곳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군과 대대적인 전투를 벌렸으나 관군의 우세한 화력에 밀려 크게 패퇴하였다.

 지금 우금치 전적지에는 당시를 기념하기 위년 기념탑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우금치 전투를 기념할만 것은 거의 찾아 보기 힘들다. 게다가 우금치전적기념비는 원래 우금치고개를 지나는 국도변에 있었는데, 지금은 새로운 국도가 개설되면서 그 위치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구석진 곳에 외로이 서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우금치 고개에서 공주감영이 있었던 공주사대부고까지는 약 2km 정도로 아주 가까운 거리이며, 우금치 고개에 올라서면 공주의 남쪽지역이 눈에 들어 온다. 비록 남아 있는 흔적은 없지만 동학혁명의 정신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뜻깊은 장소가 아닌가 생각된다. 당시 농민군들 점령하고자 했던 공주의 충청감영 또한 그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일부 건물만 공주박물관 옆에 복원되어 있다.


동학혁명 최대의 격전지 우금치를 기념하는 조형물이 우금치고개에 홀로 서 있다.


이 기념탑 또한 세원지 오래되어서 상당히 낡아 보인다. 지금은 찾은 사람도 별로 없는 외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기념탑 주변에 만들어진 기념물인데,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많이 낡아 보이는 장승. 지금은 사람들에 기억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농학혁명의 위상을 보여주는 듯 하다.


우금치 고개를 지나는 터널. 


원래의 전적비는 차량과 사람의 통행이 많았던 우금치고개를 지나는 국도 바로 옆에 있었으나, 새로운 국도의 개설로 지금은 찾아보거나 지나면서 보는 사람이 없는 외로운 곳에 자리잡고 있다.


우금치 고개에서 내려다 보이는 공주 시가지.


옛국도와 새로운 국도가 나란히 있다. 


아래쪽에서 본 우금치고개


지금은 공주사대부고로 변해 버린 충청감영 옛터,

 


충청감영을 지키던 문루인 '충청도포정사'는 지금 금강변 공주박물관 근처로 옮겨져 있다.


공주사대부고 교정 한모퉁에 남아 있는 옛 충청감영의 흔적들



이 곳은 제2차 동학농민운동 때 당시의 최대 격전지로 동학농민군의 원혼이 서려 있는 곳이다. 1894년 2월 전라도 고부에서 전봉준 등이 탐관오리의 학정과 부패한 정치를 바로 잡기 위하여 보국안민과 제폭구민의 기치를 내걸고 봉기하였다. 농민군은 정부와 전주확약을 맺은 후 집강소를 설치하고 개혁을 추진하였다. 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일제의 내정 간섭이 심해지자 2차 봉기를 하였다. 농민군은 동학의 남.북접 연합으로 충청도 감영인 공주를 공격하기 위하여 공주 주변인 호포, 널티, 우금치 등에서 관군, 일본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이곳 우금치에서 동학군은 신식무기로 무장한 진압군에 의하여 패퇴하고 전봉준 등의 지도자들은 체포되거나 죽임을 당하였다. <출처:공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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