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한반도에서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2,000년 ~ 1,500년 사이에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한반도에는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성립되었다. 고조선의 범위는 한반동 서북지역과 요동지역을 포함하고 있는데, 당시를 대표하는 청동기인 비파형동검과 고인돌, 미송리식 토기등으로 확인되고 할 수 있다. 청동기시대 한강유역에는 아직 성읍국가를 형성하지는 못했지만, 사림들이 마을을 낮은 구릉이나 평지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으며, 청동의기를 사용하는 권력자가 등장하였다. 서울 주변의 대표적인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는 양재천 부근 도곡동 지역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집자리 유적을 들 수 있다. 이곳에서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 돌끌, 반달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철기시대에는 철로 다양한 도구를 만들었는데 칼, 창, 화살촉과 같은 무기류, 낫,괭이,보습 같은 농기류가 만들어지면서 농업생산력은 증가하고, 정복전쟁 또한 활발해졌다.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5세기무렵부터 철기시대기 시작되었는데, 기원전후 최초의 국가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 한강이남 지역에는 크고 작은 성읍국가들이 연맹체격인 삼한을 이루고 있었다. 한강유역과 중부지방에는 변한이 있었는데, 초기에는 천안지역의 목지국이 연맹을 주도했으나, 점차 고구려에서 남하한 세력과 토착세력이 연합한 한강유역 백제가 성장하면서 주도국가로 부상하였다. 이 시기 한강유역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북한강 유역에 위치한 가평 대성리 유적을 들 수 있다. 이 유적지에서는 청경동촉과 화분모양 토기 등이 발견되어 선진기술을 가진 집단과 교류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권력의 출현
기원전 3,500년 무렵 사람들은 청동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주로 검 등의 다양한 무기류, 거울과 방울 등의 의기류, 끌.도끼.조각칼 등의 공구류를 만들었다. 청동기를 사용하면서 사회는 지배하는 세력과 지배받는 사람들로 구분되어 계급이 생기고 전쟁이 자주 일어났으며 국가가 출현하였다. 한국의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2,000년 무렵부터 기원전 1,500년 무렵 사이에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는 농경과 간석기 사용이 보편화되고 민무늬토기가 등장하였다. 사람들은 낮은 구릉이나 평지에 마을을 이루며 살았으며 죽은 뒤에는 고인돌, 돌널무덤 등에 묻혔다. 이러한 청동기문화를 배경으로 한국 최초의 국가 고조선이 성립하였다. <출처:한성백제박물관>


청동거울거푸집(청동기시대, 전 평남 맹산), 청동거울(복원품), 청동거울은 청동으로 만든 거울이다. 청동판의 표면을 다듬고 문질러 얼굴을 비춰볼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주로 지도자가 제사지낼 때 사용하였다. 뒷면의 무늬는 거친무늬거울에서 잔무늬거울로 변화하였다.


청동검거푸집(청동기시대, 경기 용인 초부리, 복제), 거푸집은 청동기.철기 등의 금속도구 제작에 쓰인 돌이다. 주로 다루기 쉬운 활석.사암 등의 무른 돌로 만들었다. 거푸집은 금속도구를 대량으로 주조했음을 알려주는 도구이다.


청동투겁창(청동기시대, 경기 오산 수정동, 복제), 세형동검

청동기시대 사람의 삶

청동기새의 제련기술
청동은 구리에 주석.아연.납 등을 섞어 만든 것으로 대개 주석이 10%이상 들어간다. 한국의 청동기는 무기가 대부분이고, 그 밖에 공구.의기.꾸미개.수레말갖춤 등이 있다. 청동기는 구리를 녹여 거푸집에 부어 만들었다. 비파형동검시기에는 주로 비파형동검과 부채모양도끼를, 세형동검시기에는 검.투겁창.꺾창.거울.도끼.끌.낚시바늘 등을 거푸집으로 대량 생산하였다. <출처:한성백제박물관>

서울 역삼동 유적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당시 행정구역명은역삼동) 인근 양재천변 야산 정상부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집자리 유적이다. 집자리는 여러기가 조사되었으며 장방형이 평면구조로 그 규모가 길이 16m, 너비 3m, 깊이 70cm로 대형이다. 외곽에서 많은 양의 목탄편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이 집자리는 화재에 의해 폐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민무늬토기를 비롯해 붉은간토기, 돌끌, 반달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이 디오라마는 서울의 대표적인 청동기시대 유적인 역삼동 집자리를 모델로 하여 청동기시대 농경, 목책, 환호, 제세, 무덤 축조 등의 일상생활모습을 모형으로 재구성하였다. <출처:한성백제박물관>


서울 역삼동유적을 기준으로 재현한 청동기시대 생활모습


청동기시대 무덤(고인돌) 조성


청동기시대 제사의식.


청동기시대 마을. 목책으로 둘러져 있고 대체로 땅을 파서 움집을 짓고 살았다.  청동기시대의 집자리
청동기시대의 집자리는 하천이나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낮은 구릉에 작은 단위로 조성되었다. 집자리의 평면형태는 주로 방형.장방형.원형이며 바닥을 지면 아래 1m 가까이 파서 만든 구덩식 집자리가 일반적이었다. 내부 중앙이나 출입구 반대편에 치우쳐 화덕을 설치하였다.

비파형동검, 청동기시대에 제작된 비파모양의 청동칼이다. 칼몸과 손잡이로 나누어 제작하였다. 주로 만주.요동지역, 한반도 서북부지역에 분포하며, 고조선의 세력범위를 알 수 있는 유물이다.


고인돌무덤.비파형동검의 분포

민무늬토기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무늬가 없는 민무늬토기를 사용하였다. 민무늬토기는 바닥이 납작하고 적갈색을 띤다. 아가리에는 간단한 선무늬나 구멍무늬, 점토띠 등으로 장식하였다. 토기 겉면을 문질러 붉은색이나 검은색을 내 토기도 있다. 민무늬토기는 팽이모양.미송리식.구멍무늬.가락동식.송국리식 등 지역과 시기에 따라 여러가지 형태가 있다.


가락동식 토기.항아리(청동기시대, 서울 가락동 집자리, 고려대박물관), 가락동식토기. 서울 가락동유적의 대표적인 유물로 청동기시대 전기를 대표하는 민무늬토기 형식이다. 겹입술에 짧은 빗살무늬를 새긴 점이 가장 큰 특징이며, 토기의 형태는 편평한 바닥의 깊은 바리모양, 항아리모양, 사발모양 등이 있다.


화순 대곡리 유물(국보 143호, 1. 팔주령, 2.쌍두령, 3.잔무늬거울, 복제), 대쪽모양 청동기(청동기시대, 대전 괴정동)


간돌도끼, 1.간돌도끼(청동기시대, 경기 화성천전리, 중앙박물관), 2. 돌끌(청동기시대, 경기 평택 토전리, 중앙박물관)


갈돌.갈판, 돌도끼.석봉(청동기시대, 경기 연천 삼거리, 경기도박물관)


반달돌칼.홈자귀

여러나라의 성장
청동기시대 후기 사람들은 철로 다양한 도구를 만들었다. 주로 검.창.화살촉 등의 무기류와 낫.괭이.보습 등의 농기구류를 만들었다. 철기의 보급으로 정복전쟁이 더욱 활발해지고 농업생산력도 증가하였다. 한국에서는 기원전 5세기 무렵부터 철기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시기에는 새로운 토기 제작기술이 발달했으며, 돌무지무덤, 널무덤 등이 만들어졌다. 청동기문화를 배경으로 등장한 국가는 철기의 사용과 함께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기원 전후로 부여.고구려.삼한 등 여러나라가 성장했으며, 특히 서울지역에서는 마한연맹체에 속한 백제국이 성장하였다. <출처:한성백제박물관>

최초의 국가, 고조선
청동기문화를 배경으로 한국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성립하였다. 고조선의 세력범위는 청동기문화를 대표하는 고인돌.돌무지무덤과 비파형동검.미송리식토기 등의 분포범위로 보아 랴오허강을 중심으로 한 랴오닝 지역과 한반도 서북지역으로 추정된다. 랴오허강을 중심으로 전개된 비파형동검문화는 기원전 5세기 무렵 한반도 청천강 이남을 중심으로 하는 세형동검문화로 교체되었다. 이후 고조선사회는 철기문화의 영향으로더욱발전했으며, 고조선문화는 남쪽의 마한.진한.변한의 삼한문화형성에 바탕이 되었다. <출처:한성백제박물관>


세형동검.칼자루끝장식(청동기시대, 서울 상암동, 복제), 청동투겁창(청동기시대, 서울 응암동, 복제), 청동꺾창(청동기시대, 평택, 복제)


세형동검,


간돌검, 간돌창, 간돌검,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만든 청동기시대 무기이다. 검몸과 자루가 한몸으로 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베거나 찌르는데 사용하거나 지배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도구로 이용하였다.


뼈화살촉, 돌화살촉


돌화살촉(청동기시대, 경기 화성 천천리)

철기의 제작
철기를 제작할 때는 철의 원료인 철광석이나 사철에서 철을 뽑아내는 제철과정이 필요하다. 먼저 점토로 만든 용광로에 철 원료와 숯을 넣고 불을 지펴 철을 뽑아낸 뒤,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또 다른 용광로에서 철을 녹여낸다. 이렇게 생산된 철로 철기를 만드는 방법은 주조와 단조가 있다. 주조는 녹인 쇳물을 거푸집에 주입하여 모양을 만드는 금속가공법이다. 주조는 단조에 비해 같은 모양의 철기를 복수로 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이 방법으로 제작한 철기는 강도가 높지 않아 깨지기 쉽다. 주로 도끼나 솥 등을 만들 때 쓰인다. 단조는 고체인 강철을 달궈 망치로 두드려 일정한 모양을 만드는 금속가공법이다. 망치.집게.끌.모루돌 등의 연장을 사용한다. 단조는 주조에 비해 비교적 강도가 높은 철기를 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같은 모양의 철기를 대량으로 생산하기는 어렵다. 주로 검과 창을 만들 때 쓰인다. <출처:한성백제박물관>


가락바퀴


청동호랑이모양 허리띠고리, 청동말모양 허리띠고리


구슬(철기시대, 경기 오산 수청동, 중앙박물관), 대롱옥, 구슬(철기시대, 1,2. 경기 가평 대성리, 겨레문화유산연구원, 3. 경기 용인 신갈, 중앙박물관)


철경동촉(철기시대, 1,2,3. 인천 영종도, 복제, 4,5,6, 경기 가평 대성리, 경기문화재연구원)


오수전(철기시대, 인천 영종도, 복제)

가평 대성리 유적, 북한강유역에서 확인된 철기시대 유적으로 많은 집자리가 확인되었다. 유적에서는 청경동촉과 화분모양 토기 등이 발견되어 이 지역 집단이 선진기술을 가진 집단과 교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락바퀴(철기시대, 경기 가평 대성리, 겨레문화유산연구원)


가평 대성리유적 출토토기(경기문화재연구원)


단지(철기시대, 경기 가평 대성리)


경질무문토기(철기시대, 경기 가평 대성리, 경기문화재연구원), 사발(철기시대, 경기 가평 대성리), 단지(철기시대, 경기 가평)


쇠화살촉


쇠도끼, 쇠손칼, 자귀, 허리띠 장식


쇠끌, 쇠삽날, 쇠솥, 가평 대성리 출토 철기

백제국, 마한에서 성장하다
기원 전후 무렵, 한반도 중남부지역에는 삼한이 있었다. 삼한이란 마한.진한.변한을 말한다. 마한은 54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졌고 오늘날의 경기도.충청도.전라도 지역에, 진한과 변한은 각각 12개 소국으로 이루어졌으며 오늘날의 경상도 지역에 있었다. 한강유역은 마한에 속했다. 마한 소국의 하나인 목지국은 당시 한반도 서북부에 있던 낙랑군.대방군과의 교역을 주도하며 3세기 전반까지 많은 나라를 이끌었다.  이후 한강유역에서 성립한 백제국이 철기문화를 기반으로 성장하면서 목지국을 대신하여 점차 마한지역을 통합해 나갔다.


기록속의 마한(馬韓)

마한의 풍속
3세기 후반에 중국에서 편찬된 『삼국지』 「동이전」에는 마한의 풍속에 관한 기록이 있다. 저자인 진수가 중국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부수적으로 소개한 것인 만큼 당시 중국인의 선입견이 적지 않아 그 내용을 모두 그대로 믿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이방인의 눈에 비친 특이한 풍속 정도로는 이해할 수 있다.

마한문화의 특징
마한사람들은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를 사용하였다. 경질무문토기는 깊은 바리모양이 많으며 타날문토기는 항아리모양이 많다. 철기는 중국 한나라의 영향을 받아 청동과 철기를 붙여 만든 호살촉.검.창 등의 무기류, 삽날.낫.도끼 등의 농공구류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마한사람들은 땅을 조금 파고 지은 움집에서 살았다. 집모양은 철자 혹은 방형이며, 집 안에는 아궁이와 온돌이 있었다. 사람이 죽으면 주구토광묘.분구묘.토광묘.옹관묘 등에 묻었다. 백제국에서는 이 무덤들이 모두 만들어졌다.

2~3세기의 여러 나라들
2~3세기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는 여러 나라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북쪽에는 부여, 압록강유역에는 고구려가 이미 큰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한강유역과 서쪽 바다 근처 평야지대에는 마한, 남쪽바다 근처에는 변한, 동쪽 바다 근처 산간지역에는 진한이 있었는데, 모두 합해 삼한이라고 부릅니다. 삼한은 지금의 시.군 크기와 비슷한 작은 나라들이 각각 연합하여 세력을 유지했습니다. 지금의 서울지역에 자리잡은 백제는 마한의 작은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이 밖에 한반도 동해안 북쪽 지역에는 옥저와 동예가 있었습니다. 삼한.옥저.동예 등은 절대적 권력을 지닌 왕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고, 행정.세금.군대 등의 제도를 잘 갖추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한반도와 만주지역의 여러 나라들은 서로 경쟁하면서 고대국가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출처:한성백제박물관>


<출처:한성백제박물관>

삼한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마한은 한강유역을 비롯해 한반도 서남쪽에 위치한 50여개의 작은 나라들이 모여서 이룬 일종의 연맹체입니다. 큰 나라는 인구가 1만호(5만명 안팎)을 넘었지만 대개의 작은 나라는 2~3천호(1만명 안팎)였습니다. 처음에는 목지국(천안)이 마한의 맹주였으나, 한강유역의 작은 나라였던 백제국이 강성해 지면서 마한의 여러 나라를 통합하였습니다. 진한은 낙동강 동쪽에 있는 12개의 작은 나라들이 이룬 연맹체로서 사로국(경주)이 맹주였습니다. 사로국이 신라로 발전하면서 진한지역을 통일하였습니다. 변한은 낙동강 서쪽에 있는 12개의 작은 나라들이 이룬 연맹체로서 구아국(김해)이 맹주였습니다. 변한은 나중에 가야로 발전했는데, 철을 생산해 주변의 나라들로 수출했습니다. <출처:한성백제박물관>


고대 동서교통로와 경제무역


한성백제박물관 전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