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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_현대 건축

옛 서대문형무소, 일제강점기 애국지사들이 투옥되었던 감옥

younghwan 2010. 4. 1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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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평양, 의주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가는 출발지라고 할 수 있는 안산과 인왕산 사이의 고갯길인 무악재에 위치한 옛 서대문형무소이다. 일제가 구한말 한일합병 직전에 이 곳에 설치한 근대적인 감옥으로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알 수는 없지만 독립문과 독립협회가 있던 이 곳에 형무소를 설치하여 일제강점기 동안 수많은 애국지사들을 투옥한 곳이다. 해방후 서대문형무소로 불리다가, 1967년부터 1987년까지 서울구치소로 사용되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형무소이자 구치소였던 까닭에 해방후부터 군사정권 시절까지 이 곳에는 민주화 운동 관련 인사를 비롯하여 각종 정치적 사건에 연루된 많은 사람들이 투옥되었던 역사적인 장소로 그 역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여 문화재로 지정된 것으로 보인다.


서대문 형무소를 대표하는 장면이자, 한국의 형무소를 상징하는 서대문 형무소 정문, 감옥을 묘사하는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했던 장소이며, 아마도 앞으로도 많이 등장할 것으로 보이는 명소이다.



서대문 형무소 출입문을 지금도 공원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매표소는 옛날 형무소시절 입구를 지키던 안내창구를 그대로 사용중이다.


서대문 형무소 입구의 망루


서대문 형무소 전경. 사무실로 쓰던 건물과 5개의 옥사 건물을 남겨두고 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제일 유명한 장소인 일명 '유관순굴'로 알려진 여성수감자 지하감옥.



서대문 형무소 역사 기념관으로 쓰이는 건물. 원래는 사무실 용도의 건물이었을 것으로 보이며, 붉은 벽돌로 지었다.


사적으로 지정된 일제시대에 지어진 옥사 건물


서대문 형무소를 공포스럽게 만드는 사형장


서대문 형무소 뒷쪽편 담장.


담장 아래로는 한센인들을 수용하는 옥사가 남아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을 본격화하기 위해 1907년 인왕산 기슭에 일본인이 설계하여 건립한 근대적인 감옥이다. 약 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560여 평의 목조건물을 짓고 ‘경성감옥’이라 불렀다. 종로의 감옥에서 500여 명을 데려와 수용하고 광복을 맞이하는 1945년까지 독립운동가들을 가두고 고문과 박해를 하고 심지어 목숨을 빼앗은 곳이다. 애국인사들이 늘어나자 1912년 일제는 마포구 공덕동에 감옥을 또 지어 경성감옥이라 하고, 원래의 경성감옥은 서대문감옥이라 불렀다. 1923년 서대문감옥은 서대문형무소로 바뀌었고 1944년에는 2,890명이 수용되었다. 18세 미만의 소녀들과 10년 이상을 선고받은 자, 그리고 무기수까지 수용하였으며, 김구선생·강우규·유관순 열사 등이 이곳에 수감되었었다. 유관순 열사는 이 곳에서 목숨을 다하였다. 1946년 광복 직후에는 경성형무소·서울형무소로 바뀌고, 반민족행위자와 친일세력들이 수용되었다. 1961년에는 서울교도소로, 1967년에는 서울구치소로 바뀌었고, 4·19혁명과 5·16군사쿠데타와 같은 정치적 변동으로 인해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었다. 1988년에 사적지로 지정되었다. 일제시대엔 민족독립의 역사를 지니며 그후로는 민주화와 정치적 변화의 모습을 간직한 곳으로서 후손들에게 민족의 자존과 자주정신을 일깨워주는 산 교육장으로 매우 뜻깊은 곳이다. <출처:문화재청>

이 곳은 1907년 일제가 자신들의 본격적인 한국 침탈에 저항하는 애국지사들을 투옥하기 위하여 만든 곳이다. 이곳의 처음 이름은 경성감옥이었는데,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 경성형무소,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67년 서울구치소가 되었다. 이 곳에는 일제시대에 독립운동가를 비롯하여 애국시민, 학생들이 투옥되었으며, 광복 후에는 반민족행위자와 친일세력들이 대거 수용되었다. 이후 4.19, 5.16, 군사정권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기도 하엿다. 1987년 서울구치소를 경기도 의왕시로 옮길 떄 옥사는 모두 15개동이었다. 이 가운데 역사성과 보존가치를 고려하여 제9, 10, 11, 12, 13옥사와 나병사, 사형장을 남겨 두었다. 이 건물들은 모두 붉은 벽돌 조적조 구조다. 1988년부터 주변에 공원을 만들기 시작하여 1992년부터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부르고 있다. <출처:서울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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