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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쿠가와 막부가 교토에 거주시 기거하던 성임.
니조성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
니조성 성벽 위에서 본 교토 시가지
☞ 니조성(二条城)
다른 일본의 성들은 웅대한 성채를 자랑하는데 니조 성은 유난히 화려한 실내장식과 나이팅게일 마루로 유명하다. 나이팅게일 마루는 침입자를 경게하기 위해 걸으면 새소리 같은 소리가 나게 만든 마루. 니조성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건조한 것으로 새로 옹립된 에도 막부의 부와 권력을 상징한다. 이에야스의 손자 이에미쓰는 천황이 방문에 대비해 당대 최고의 가노파 화가들의 그림으로 접견실을 꾸며 놨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867년 바로 그 자리에서 마지막 쇼군이 메이지 천황앞에 무릎을 꿇고 통치권을 넘겨주게 됐다.
* 가노파 화가들: 원래 하층 무사계급 가문인 가노파 화가들은 중국풍의 산수화, 인물 산수화, 화조화 등으로 15세기에 부상. 니조성의 그림들은 가노파 작품중 가장 큰 규모. 그림 주제는 대나무 숲에 웅크린 호랑이, 표범, 겨울 야생 거위, 해오라기, 소나무, 훨훨나는 제비, 노는 공작 등 다양함. (출처: 디키 해외여행시리즈 - Japan)
☞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니조 성
막부측에서는 니조 성(二条城)이라 부르지만, 조정에서는 니조 정(二条亭)이라고 부른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상경시 머무를 숙소로 오미야 오시코지(大宮押小路)에 성을 짓기로 결정한다. 1601년 음력 5월부터 주변 마을을 정비하고, 음력 12월에 서국[3] 여러 다이묘에 운영비와 노무를 할당한다. 총 책임자로는 교토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이타쿠라 가쓰시게, 작업 감독에는 목수의 우두머리인 나카이 마사키요에게 맡긴다. 1602년 음력 5월 착공하여 다음해 음력 8월 3일에 성을 완성한다. 단 천수는 1606년에 완성되었다. 1603년 음력 2월 이에야스는 후시미 성에서 세이이타이쇼군 교지를 받고 음력 3월 아직 완공도 되지 않은 니조 성에 입성한다. 이에야스는 무로마치 막부 이래 관례에 따라 [하이가의 예]를 거행하기 위해 어소로 발길을 돌린다. 계속해서, 니조 성에서는 중신과 구게를 초대해 연회를 배풀었다. 이 쇼군 취임 수순은 2년후인 1605년 제2대 쇼군인 도쿠가와 히데타다, 1623년 제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답습하지만, 제4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쓰나부터 거행되지 않았다. 1611년 니조 성의 어전 (현재 니노마루 어전)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회견이 있었지만, 이 때 이에야스는 히데요리의 성장에 놀라, 위기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도요토미 가문을 멸문하기에 이른다. 1614년 오사카 전투를 일으킨다. 이 때 이에야스는 니조 성을 본영으로 삼고 오사카로 쳐들어간다. 1615년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는 니조 성에 불을 지른 다음, 혼란한 틈을 타 이에야스를 암살하려 했다는 음모가 밝혀졌고, 후루타 시게테루의 가신이 포박되었다. 이 때문에 후루타 시게테루는 할복하였고, 전 재산은 몰수 되었다. 1616년 이에야스가 죽은 후, 1619년부터 도쿠가와 히데타다는 딸 도쿠가와 마사코를 고미즈노 천황에게 시집 보낼 준비로 니조 성을 수리하였다. 건물 배치는 히데타다와 도도 다카토라가 했다. 1620년 음력 6월 18일 마사코는 니조 성을 출발하여 천황의 거처인 어소로 향했다. <출처: 위키백과>
니조성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
니조성 성벽 위에서 본 교토 시가지
☞ 니조성(二条城)
다른 일본의 성들은 웅대한 성채를 자랑하는데 니조 성은 유난히 화려한 실내장식과 나이팅게일 마루로 유명하다. 나이팅게일 마루는 침입자를 경게하기 위해 걸으면 새소리 같은 소리가 나게 만든 마루. 니조성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건조한 것으로 새로 옹립된 에도 막부의 부와 권력을 상징한다. 이에야스의 손자 이에미쓰는 천황이 방문에 대비해 당대 최고의 가노파 화가들의 그림으로 접견실을 꾸며 놨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867년 바로 그 자리에서 마지막 쇼군이 메이지 천황앞에 무릎을 꿇고 통치권을 넘겨주게 됐다.
* 가노파 화가들: 원래 하층 무사계급 가문인 가노파 화가들은 중국풍의 산수화, 인물 산수화, 화조화 등으로 15세기에 부상. 니조성의 그림들은 가노파 작품중 가장 큰 규모. 그림 주제는 대나무 숲에 웅크린 호랑이, 표범, 겨울 야생 거위, 해오라기, 소나무, 훨훨나는 제비, 노는 공작 등 다양함. (출처: 디키 해외여행시리즈 - Japan)
☞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니조 성
막부측에서는 니조 성(二条城)이라 부르지만, 조정에서는 니조 정(二条亭)이라고 부른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상경시 머무를 숙소로 오미야 오시코지(大宮押小路)에 성을 짓기로 결정한다. 1601년 음력 5월부터 주변 마을을 정비하고, 음력 12월에 서국[3] 여러 다이묘에 운영비와 노무를 할당한다. 총 책임자로는 교토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이타쿠라 가쓰시게, 작업 감독에는 목수의 우두머리인 나카이 마사키요에게 맡긴다. 1602년 음력 5월 착공하여 다음해 음력 8월 3일에 성을 완성한다. 단 천수는 1606년에 완성되었다. 1603년 음력 2월 이에야스는 후시미 성에서 세이이타이쇼군 교지를 받고 음력 3월 아직 완공도 되지 않은 니조 성에 입성한다. 이에야스는 무로마치 막부 이래 관례에 따라 [하이가의 예]를 거행하기 위해 어소로 발길을 돌린다. 계속해서, 니조 성에서는 중신과 구게를 초대해 연회를 배풀었다. 이 쇼군 취임 수순은 2년후인 1605년 제2대 쇼군인 도쿠가와 히데타다, 1623년 제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답습하지만, 제4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쓰나부터 거행되지 않았다. 1611년 니조 성의 어전 (현재 니노마루 어전)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회견이 있었지만, 이 때 이에야스는 히데요리의 성장에 놀라, 위기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도요토미 가문을 멸문하기에 이른다. 1614년 오사카 전투를 일으킨다. 이 때 이에야스는 니조 성을 본영으로 삼고 오사카로 쳐들어간다. 1615년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는 니조 성에 불을 지른 다음, 혼란한 틈을 타 이에야스를 암살하려 했다는 음모가 밝혀졌고, 후루타 시게테루의 가신이 포박되었다. 이 때문에 후루타 시게테루는 할복하였고, 전 재산은 몰수 되었다. 1616년 이에야스가 죽은 후, 1619년부터 도쿠가와 히데타다는 딸 도쿠가와 마사코를 고미즈노 천황에게 시집 보낼 준비로 니조 성을 수리하였다. 건물 배치는 히데타다와 도도 다카토라가 했다. 1620년 음력 6월 18일 마사코는 니조 성을 출발하여 천황의 거처인 어소로 향했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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