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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키타이는 기원전 6~3세기경 러시아 남부 초원지대를 지배한 최초의 기마유목민족으로 고분 등에서 발굴된 유골에 의하면 페르시아계 인종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 스키타이인들을 중심으로 한 문화는 초기철기시대 흑해 북안에서 중국 북방 오르도시지역까지의 북방유라시아대륙을 지칭하는데 중국 북방의 흉노족을 거쳐서 선비족, 한반도의 고조선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초원실크로드를 통해 상당히 광범위한 영역까지 그 영향이 남아 있다. 또한 북방유목민의 흉노족의 관련이 많은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의 황금문화도 그 원류의 일부를 스키타이문화와 관련짓는 의견도 많아 보인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스키타이 황금문명전(The gold treasures of Ukraine), 유라시아 초원에서 한반도까지>라는 주제로 2011.12~2012.2까지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 전시회는 고대 북방기마 민족으로 크게 번성하였던 스키타이를 중심으로 유라시아 초원지대에서 크게 번성했던 훈족, 고트족, 아바르족을 비롯하여 슬라브 최초의 국가라 할 수 있는 키에프루스공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물을 체계적으로 전시하여 이 지역에서 흥성했던 다양한 문화의 모습들을 볼 수 있는 전시회라고 할 수 있다.


스키타이 황금문명전(The gold treasures of Ukraine),
 - 유라시아 초원에서 한반도까지 -


동과 서를 하나로 통합하는 유라시아 초원
기마민족은 강한 기동성을 통해 북방 유라시아 대륙으 초원지대는 물론이고 이웃하는 삼림초원지대와 산악 지대의 일부도 순식간에 석권하면서 <유라시아 초원 문화>를 형성합니다. 유라시아 초원문화는 스키타이 시대에 들어와서 가장 크게 발전했고 흑해 북안은 물론이고 멀리 중앙아시아를 넘어 시베리아와 알타이, 그리고 한반도에까지 이어집니다. 이 전시는 스키타이 문화를 마구, 무구, 장신구 등으로 체계적으로 분류하였고 훈족, 고트족, 아바르족 등 중세 유라시아 초원의 유목부족문화, 슬라브지역의 최초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는 키에프루스 공국, '초원의 자유인'으로 등장한 코자키족과 러시아 정교의 문화를 통해 슬라브 민족의 원형을 만날 수 있도록 꾸며졌습니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유라시아 초원문화 유적 중 하나인 내몽고 영성현의 소흑석구 유적과 광대한 초원이 펼쳐진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세계의 고고학 문화들
'스키타이 세계'란 스키타이 문화의 요소들이 확인되는 기원전 8/7~3세기 초기철기시대 흑해북안에서 중국 북방 오르도스 지역까지의 북방유라시아대륙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 세계에는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문화, 볼가-우랄 강 유역의 사르마트 문화, 중앙아시아의 사카 문화, 알타이의 파지릭 문화,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 투바의 우육 문화, 서몽골의 울람곰 문화, 오르도스의 모경구 문화 등이 있다. 이 문화들은 기본적으로 초원지대에 분포하지만 파미르나 알타이 등 일부 산악지역에 위치하기도 한다.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문화와는 그리스 세계가, 중앙아시아의 사카 문화와는 페르시아 세계가, 오르도스의 모경구 문화와는 춘추 말-전국 시기의 열국들 및 고조선의 비파형동검 문화가 각각 인접하고 있었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기원전 7~4세기에 크기 번성한 스키타이문화는 유라시아대륙의 초원 실크로드를 따라 흉노, 선비족을 거쳐서 한반도의 고조선에 이르기까지 전해졌다.

스키타이족이 남긴 문화는 중앙아시아, 시베리아를 건너 중국 북방의 흉노, 선비족에 영향을 미쳤으며 우리 민족의 기원인 고조선, 부여에까지 전해졌어요. 그래서 초원의 길로 이어진 이 선사문화를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라고 합니다. 세계 4대 문명과는 또 다른 세계 제5대 문명이 있었던 셈이지요.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스키타이의 선주민 킴메르, 기원전 9세기~기원전 7세기 초
기원전 9세기부터 7세기 초 흑해 연안의 초원지대에는 킴메르인이 있었다. 그들은 앗시라와 같은 강대국을 위협하였다. 그들의 경제적 기반을 주로 말을 기르는 방목과 군사원정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수수께끼와 같은 민족을 연구하기 위한 주요한 고고학 자료는 무덤과 같은 '매장'이다. 그들의 생활 형태는 그들이 물질 문명에도 현저한 자취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무기와 마구가 매우 독창적이다. 킴메르 미술은 장식미술적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복잡한 무늬가 단검의 칼자루나 마구를 장식하고 있다. 장식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나선형과 덩쿨형 그리고 직사각형 등의 여러가지 기하학적 모양이고, 이것을 짜 맞추어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냈다. 기원전 8세기 킴메르의 호화로운 비녀와 목걸이와 같은 금제 장식품은 체르카스크 지역의 오르샤 부근의 고분에서 1984년 발견되었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핀, 기원전 8세, 킴메르족, 금. 스키타이의 유목문화가 흥성하기 전 선주민인 키메르족이 남긴 화려한 금세공품 유물.


토르크(Torque;목걸이), 기원전 8세기(킴메르족), 금

최초의 유목민 스키타이, 기원전 7~3세기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에 걸쳐 지금의 우크라이나의 거의 대부분 지역은 독자적인 특징을 가진 '스키타이유형'의 유목문화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 특징은 동종의 무기, 서로 닮은 마구, 그리고 소위 말하는 동물 양식인데, 이들은 대(大)스키타이의 독특한 특성이 되고 있다. 미술 공예품에서 주로 보여지는 것은 동물의 몸 전체 혹은 그 일부(머리, 다리, 발톱, 눈 등)의 표현이다. 그것은 강력한 힘, 예리함, 민첩함 등과 같은 특징을 포착하고자 했던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스키타이 동물양식은 상당히 사실적이고 약동감이 넘치는 표현에서 틀에 박힌 정형화된 장식으로 변해갔고, 주요한 모티브들이 시대의 흐름과 함께 줄어들었다. 동물양식이 군사력을 우위에 우선을 둔 사고방식이나 생활과 연관되어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유목민의 가치기준에 있어 황금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며 또한 상징적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전시된 훌륭한 금제품의 대다수는 스키타이시대의 것이다. 스키타이가 특히 중요하게 여긴 것도 목걸이와 가슴장식이다. 그것은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종교적.경제적인 차별화의 상징도 되었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스키타이 왕의 계보
15명 정도의 스키타이 왕이 알려져 있다. 기원전 7~3세기의 스키타이 왕은 이쉬파카 왕부터 아가르 왕까지 13명이 알려져 있고, 나머지 2명은 스키타이가 크림반도로 쫓겨 간 다음의 왕들이낟. 계보와 통치기간이 분명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1) 이쉬파카왕(Ishpaka), 근동 원정 중 메디아 및 만과 동맹, 기원전 7세기 기록에 나오는 첫번째 스키타이왕
2) 파르타투아왕(Partatua), 근동원정 중 아시리아와 동맹(이시파카의 후계자로 추정)
3) 마티아왕(Matya), 근동원정 중 기원전 7세기 50년대에 소아시에서 킴메르와 전투, 기원전 623~622년에 앗시라아의 수도 니네베를 메디아의 키악사레스왕의 포위공격으로부터 구원(파르타투아왕의 아들)
4) 아리안트왕(Ariant), 기원전 650년경에 스키타이의 인구를 파악하기 위해 모든 스키타이인들에게 화살촉을 하나씩 가져오게 하고 그 화살촉으로 거대한 구리 그릇을 만든 왕(계보와 연대가 분명하지 못함)
5) 스파르가피프왕(Spargapip), 근동에서 흑해북안으로 스키타이족을 이끌고 귀환한 왕으로 추정(그누르 왕의 할아버지)
6) 그누르왕(Gnur), 기원전 7세기말~6세기초의 스티타이왕(사블리왕과 하나하르시스의 아버지)
7) 사블리왕(Savlii), 스키타리의 현자 아나하르시스를 활로 쏘아 죽임(그누르의 아들)
8) 이단티르수스왕(Idanthyrsus), 기원전 514년 혹은 512년에 페르시아 다리우스 1세와 전쟁을 치룬 스키타이의 왕
9) 아리아피파왕(Ariapifa), 통치기간이 대략 기원전 480~460년
10) 스킬라스왕(Scylas), 기원전 5세기(아리아피파왕의 아들)
11) 옥타마사다스왕(Octamasadas), 내분으로 스틸라스 왕이 처형을 당한 다음에 왕이 됨. 기원전 446년까지 통치(아리아피파왕의 아들)
12) 아테아스왕(Atheas), 기원전 4세기 다뉴브 강에서 돈 강까지의 모든 스키타이르 통합한 왕. 기원전 339년에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전쟁
13) 아가르왕(Agar), 기원전 309년에 보스포르 왕국의 내분에 관여한 스키타이 왕(아테아스 왕의 후계자인지 혹은 크림반도 스키타이만의 왕이지 불분명)
14) 스킬루르스왕(Skilurus), 기원전 130~113년에 통치
15) 팔라카왕(Palaka), 기원전 113~111년에 통치(스킬루르스 왕의 아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그릇(Goblet,왼쪽),그릇(Vessel,오른쪽),  점토,기원전 7세기, 스키타이


솥(Cauldron), 동, 기원전 7세기, 스키타이. 청동솥은 기마술과 함께 스키타이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지금도 몽골초원의 유목민들 생활모습에서도 볼 수 있는 고기를 삶는 청동솥이다. 제기로서 역할을 했던 중국의 청동솥과는 달리 실생활에서 사용했던 생활의 필수품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가마솥은 스키타이 초기의 생활을 보여 줍니다. 이 솥에 제물로 바친 짐승의 껍질을 벗기고 고기를 발라내어 이 솥 속에 집어 넣습니다. 가마솥 아래 짐승의 뼈를 태워 고기를 익혀 먹었습니다. 초원에는 나무가 거의 없었답니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손잡이가 있는 그릇(Scoop), 점토,

말의 사육과 기마술의 습득
인류가 말을 길들인 최초의 증거는 청동기시대부터 나타난다. 볼가 강 유역의 흐발르인스크 고분군에는 가축화된 말의 뼈를 묻은 것이 발견되었고, 볼가강 유역의 서저고분군에서는 뼈로 만든 말의 형상이 발견되었으며, 우크라이나의 드네프르 강 유역에 위치하는 동기시대 스레드니 스토그 문화의 데레이브까 유적에서는 재갈멈치로 주장되기도 하는 뿔로 만든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유물이 정말로 재갈멈치라면 인류는 이미 기원전 4천년기 후반에 기마술을 습득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말이마 장식(Horse frontlet), 동, 기원전 5세기, 스키타이


재갈 고정구(Cheek-piece), 뼈, 기원전 6세기, 스키타이


재갈(Cheek-pieces), 동, 기원전 5세기, 스키타이. 스키타이인들은 초원에서 유목생활을 하였으며, 재갈을 비롯한 말을 길들이고 이용하는 다양한 도구들을 최초로 만들어 낸 민족이라고 한다.


말 이마 장식판 (Plaque for forehead), 동, 기원전 5세기, 스키타이


동제 재갈(Bit), 동, 기원전 5세기, 스키타이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은 인간이 말을 길들일 수 있었던 훌륭한 발명품 중의 하나입니다. 스키타이인은 철로 된 재갈에 돌기를 만들어 말이 자기 멋대로 달리면 그만큼 입이 아프게 만들었지요. 그리고 말 안장은 스키타이족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기마시대
전차의 시대는 기원전 12~10세기에 시작된 기마시대에 의해 대체되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기마시대는 기원전 8~7세기경에 시작된 것으로 간주된다. 이 시기 북방유라시아 대륙의 초원지대는 마침내 이동생활을 기본으로 하는 본격적인 유목경제로의 이행이 일어났다. 또한 전차는 전추에서 지형적 제약, 기동성, 유지비용 등의 문제로 인해 강한 기동성의 기마병으로 대체되었다. 기마시대로의 진입은 초원의 길을 통한 동.서 문명 교류의 전조였다. 마침내 기원전 8~3세기 북방 유라시아 대륙은 서쪽의 다뉴브 강에서 동쪽의 황하까지 1만km가 넘는 광대한 영역이 '스키타이 세계' 혹은 '선 흉노-스키타이 세계'라는 하나의 문화권으로 통합되었다.


마구장식 일괄 (Horse's bridle garniture),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금.은.철


말 안장 장식 일괄 (Horse's saddle garniture),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금.은


스키타이 마구장식으로 장식한 말

유목생활 - 키비트카
스키타이족은, 농경에 종사한 종족들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유목민으로서 말과 키비트카라고 불리는 수레를 타고 이동을 하였으며, 천막에서 생활을 하였다. 히포크라테스는 스키타이 인들에 대해 "그들을 유목민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에게 집이 없기 때문이다. 키비트카에서 사는데, 작은 것은 바퀴가 4개이고, 큰 것은 바퀴가 6개이다. 전체를 펠트 천으로 덮었고, 집과 비슷하게 만드렀다. 내부는 2개 혹은 3개의 공간으로 구분되며, 물도, 빛도, 바람도 통하지 못한다. 2쌍 혹은 3쌍의 뿔이 없는 황소가 끈다. 키비트카에는 여자가 지내고, 남자는 말을 타고 다닌다. 그들은 가축 떼가 먹을 풀이 부족해지면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한다. 삶은 고기를 먹고, 말의 젖을 마신다."라고 하였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

말의 젖
말의 젖은, 다시 말해서 마유는 스키타이 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식품 중의 하나였다. 때문에 헤로도토스는 스키타이 노예들이 어떻게 말의 젖을 짜는지 상세하게 묘사하였으며, 또한 말 젖 때문에 노예들을 모두 장님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스키타이에서는 암말에게서 젖을 짠 다음에 이것을 나무통에 부어 노예들로 하여금 저어 섞게 하였는데, 이 때에 위의 맑은 우유를 좋은 우유로 간주하여, 노예들이 구분을 하지 못하게 눈을 멀게 하였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드네프르 강 유역의 똘스따야 마길라 쿠르간에서 출토된 황금 펙토락에 보면 양의 젖을 짜는 장면이 있는데, 젖을 짜는 사람은 아마도 젖 때문에 장님이 된 노예일 것이다.  <출처:스키타이 황금문명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