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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낙안군 관아가 있었던 낙안읍성은 조계산 남쪽자락에서 남해안 순천만까지 이어지는 낙안벌판의 북쪽끝에 자리잡고 있다. 고려말에서 조선초 왜구의 침입이 극심할 때 처음 토성을 쌓았던 것으로 인조대 낙안군수를 역임한 임경업 장군이 현재의 모습처럼 석축성으로 중수하였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읍성 중 그 원형에 가장 가깝게 남아 있게, 실제 주민들도 당시의 초가주택에서 그대로 살고 있는 등 조선시대 지방 관아를 중심으로 읍성의 모습을 실제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마을이다. 낙안읍성에는 조선시대 관아를 이루고 있던 객사, 동헌, 내아가 원래의 모습대로 남아 있다.

 조선시대 객사는 외국 사신이나 왕명으로 지방을 방문하는 중앙의 관리들이나 귀빈들을 위한 숙소로 지어진 건물이다. 본래의 기능은 객사 중앙 대청마루에는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전패)를 안치하고 매월 궁궐을 향해 절을 올리며 충성을 맹세하는 장소라 할 수 있다. 낙안객사는 종4품 군수가 고을 수령인 낙안군의 규모에 걸맞는 규모의 건물로 앞면 7칸, 측면 3칸에 대칭구조를 하고 있는 건물이다. 가운데 3칸은 전패(궐패)를 모시는  대청마루로, 양쪽 날개채는 마루1칸, 온돌방1칸씩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방은 문인이, 서쪽방은 무인의 숙소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관아의 객사건물들은 1909년 초등학교가 세워질 때 대부분 학교건물로 전용되었는데, 낙안객사도 낙안초등학교 건물로 사용하면서 일부 구조에 변형이 있었으나, 1982년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객사 부속건물들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낙안객사, 전남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객사는 손님을 접대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곳으로, 외국이나 조정에서 파견된 사신의 숙소였을 뿐만 아니라,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셔두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 때 고을의 관리와 선비들이 모인 망궐례를 올리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이 객사는 세종 32년(1450) 군수 이인이 건립한 후 인조 9년(1631)과 철종 8년(1857)에 각각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는 객사본전만 남아 있어 전체의 모습은 알 수 없으나 1900년대 초까지는 모두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객사본전은 1909년 이후 낙안초등학교 건물로 사용되어 안팎으로 변조된 부분이 많으나 1982년에 다시 보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3칸으로 완벽한 좌우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다. 지붕은 본사의 경우 맞배지붕이고, 양쪽의 날개집은 팔작지붕이다. <출처:순천시청>


낙안읍성 객사. 객사는 관리들이 공적인 업무로 지방을 여행할 때 묵는 숙소로 가운데에는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전패)를 모시고, 양쪽 날개채에 숙소가 있다. 숙소는 대체로 지방수령이 중앙관리를 접대할 수 있도록 연회를 할 수 있는 넓은 대청마루와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객사는 주로 중국을 오가는 사신들이 묵을 수 있는 시설로 지어졌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런 형태의 시설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형태라 할 수 있다.


낙안객사 입구에 세워진 홍살문. 객사는 숙소의 성겨도 있지만, 원래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는 장소로 사당의 성격을 갖기도 하기때문에 홍살문을 세워둔 것으로 보인다.


낙악객사문. 일반 사대부 저택이나 동헌 등에는 솟을대문을 사용하지만, 객사문은 대체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삼문의 형식을 하고 있다.


낙악객사문. 지금은 가운데 출입문이 열려 있는데, 이는 객사문은 궁궐 출입문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는 출입문으로 가운데 문은 국왕이 출입하는 문으로, 닫아 두어야 하고, 양쪽 출입문으로 출입하는 것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출입문 천장은 서까래 등의 구조물이 노출되어 보이는 연등천장을 하고 있으며, 출입문 위에는 홍살을 설치해 놓고 있다.


객사문 양쪽에는 수행원들이 머물수 있는 행랑채가 있다.


출입문 사이로 보이는 낙안객사


앞면 7칸으로 되어 있는 낙안객사. 앞면 7칸의 관아건물 중에서는 가장 큰 건물로 궐패를 모신 가운데 3칸과 양쪽에 2칸씩 날개채를 두고 있다. 가운데 3칸은 맞배지붕 형태를 하고 있으며, 양쪽 2칸씩은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객사는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고 있는 건물로 궁궐과 같은 등급의 건물이라 할 수 있다. 궐패가 모셔진 가운데 대청마루 앞에는 월대를 조성해 놓고 있다.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전패)가 모셔진 객사 가운데 대청마루. 객사의 형태는 전국적으로 획일화되어 있지 않고, 고을 규모나 특색에 따라서 약간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 낙안객사는 그 규모나 형태에 있어서 가장 표준에 가까운 객사라 할 수 있다.


객사 가운데 대청마루에 모셔진 전패. 국왕을 상징하는 전패(궐패)에는 전(殿) 또는 궐(闕)자가 쓰여 있는데, 그 차이는 아직 잘 모르겠다.


궐패가 모셔진 대청마루 앞에는 홍살을 세워두고 있다.


'낙안지관'이라고 적힌 현판. 객사는 궁궐과 동급의 건물로 궁궐건물에만 사용하는 겹처마를 사용하고 단청을 입혀두고 있다.


온돌방 1칸과 3면에 마루를 두고 있는 동쪽편 날개채. 동쪽에는 문반이 머무는 숙소로 넓은 대청마루를 두어 숙소에 머무는 중앙관리가 외부 손님을 맞을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무반의 숙소로 사용되는 서쪽편 날개채


날개채의 마루는 상당히 넓은 편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연회를 가질 수 있는 공간이다.


날개채 마루의 천장


객사앞 마루와 기둥


낙악객사


낙안객사 전경


낙안객사 앞 마당.


원래 객사 주위로 관아 건물들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빈터만 남아 있다.


낙안읍성 성벽위에서 내려다 본 낙안객사


2012년 낙악객사


2008년 낙안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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