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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태안 경이정, 태안을 지나가던 중국사신이 잠시 쉬어가던 관아 정자

younghwan 2013. 3. 28.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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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안군 태안읍 사무소가 있는 동문리 일대는 조선시대 태안군(현) 관아가 있던 지역으로 관아건물로는 동헌과 관아에서 운영하던 누정인 경이정, 중등교육기관인 태안향교가 남아 있고, 객사를 비롯한 건물들이 있던 터에는 초등학교와 읍사무소가 들어서 있다. 조선시대 바다와 조운을 담당한 연안항로를 지키는 수군으로 남.서해안에는 주로 수영과 그보다 낮은 조직인 방어사가 설치되었는데 태안에는 그 중 수군 방어사가 설치되었다. 방어사는 무관으로 고을 수령을 겸하면서 주변지역 수군조직을 관장하는 직위로 종2품에 해당하는 고관이었다고 한다.

 태안읍사무소 앞 큰 길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정자인 경이정은 원래 중국사신들이 안흥항을 통해 조선을 방문하면서 태안을 지나갈 때 휴식을 취하던 장소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실제로 명나라 사신이 서해안을 통해 조선을 입국한 것은 명나라 초 몽골세력이 만주일대를 장악하고 있어 육상교통로가 불안했던 시절에 잠깐 있었으며, 실제로 이곳에서 명나라 사신이 머물렀던 일은 많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는 수영에 있던 객사인 여수 진남관, 통영 세병관처럼 방어사가 관할 수군조직의 장교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하거나 손님접대를 위한 연회장소로 사용했던 공간으로 보인다.



옛 태안군(현) 관아가 있던 태안읍 사무소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경이정. 중국 사신이 태안을 통해 잠깐 오가던 시절인 조선초에 처음 지어진 건물로 경치좋은 곳에 정자를 설치했던 다른 지방과는 달리 관아 앞에 위치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야학당, 경로당 등으로 사용하다가 1988년도 현재의 모습을 복원하였다고 한다.

태안 경이정,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
경이정은 조선시대 태안현 관청 건물의 일부로 행정청의 입구에 해당한다. 건립시기는 1399~1400년(정종 원년~2년) 사이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그 후 여러 차례 고쳐지었다. 경이라는 말은 멀리 항해하는 사신의 평안함을 빈다는 뜻으로 중국의 사신이 안흥항을 통하여 육지로 들어올 때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또 이곳 해안을 지키는 방어사가 군사에 관한 명령을 내릴 때도 이곳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조선후기에는 정월 보름날에 주민들의 안녕과 평안을 비는 재우제를 지냈으며, 오늘날에는 이 곳에서 중앙대제를 지낸다. 1925~1927년에는 야학당으로 사용되었다. 1987~1988년에 전면적으로 보수하여 복원하였다. <출처:태안군청>


태안 경이정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크지 않은 건물로 4면의 개방된 형태의 정자이다.


경이정 현판. '경이정'은 오랑캐를 경계한다는 뜻으로 멀리 항해하는 사신의 평안함을 빈다는 뜻이라 한다.


경이정 내부


경이정 천정 내부. 문화재청 설명으로는 우물천정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서까래 등이 노출된 연등천정으로 되어 있다. 천정아래에 글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태안 경이정


경이정 부근. 옛 관아가 있던 곳에 있던 집들을 허물고 지금은 공터로 남겨 놓고 있다.


경이정 뒷편 고목


옛 관아건물로는 동헌 건물인 목애당이 남아 있고, 내아가 있던 자리(?)에 읍사무소 건물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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