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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학정은 조선시대 인왕산 아래 있던 다섯군데의 활터 중 하나였던 등과정에 있는 정자이다. 이 정자는 구한말인 1898년 고종의 명으로 경희궁 뒷편 언덕에 세웠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경희궁을 헐고 서울고등학교를 비롯하여 여러 건물들을 그 자리에 세울때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의 정자 건물로 구한말에 지어진 많은 정자 건물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활쏘기는 역사이래로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중요한 무기로 여겨졌으며,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대표적인 명궁이었다고 한다. 이는 북방초원에서 활약한 기마민족을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활쏘기는 지도자의 필수 덕목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정조가 당대의 명궁이었다는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조선시대 활쏘기는 무과의 기본으로 중시되었으며, 성균관 유생들을 비롯한 선비.학자계층에서도 정신적 소양으로서 중시되었다. 이런 까닭에 조선시대에는 전국적으로 많은 활터가 있었다. 서울에서도 여러곳에 활터가 있었는데, 경복궁 후원 경무대, 창경궁 후원 춘당대, 지방관아가 있었던 지역에 남아 있는 연무대, 관덕정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정자 등 국가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운영한 활터이다. 민간에서도 수도 한양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 활터를 운영하였는데 대표적인 곳이 인왕산 아래에 있었던 '서촌오사정'이다. 구한말을 거치면서 무기로서 활의 중요성이 없어지면서 활쏘기를 위한 활터는 대부분 없어지고 서울에서는 황학정만이 활쏘기 전통을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서울 황학정, 서울 종로구 사직동
이 정자는 1898년 경희궁 회상전 북쪽에 궁술 연습을 위해 지은 사정이다. 황학정은 1913년 경희궁이 헐리고 1922년 총독부 전매국 관사가 황학정 자리에 지어지면서 현재의 사직동으로 옮겨졌다. 원래 이곳은 조선시대 인왕산 아래 서촌에 있던 다섯 곳의 사정 가운데 하나인 등과정이 있었던 터다. 1894년 갑오경장 이후 군대의 무기에서 활이 제외되면서 전국의 사정이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고종이 국민들의 심신단련을 위해 궁술을 장려해야 한다는 어명을 내려 궁궐 안에 황학정을 지었고, 이를 이를 일반 국민들에게 개방하였다. 고종은 그곳을 자주 방문하여 직접 활쏘기를 즐겼다고 전해지며 고종이 사용하던 활 호미와 화살을 보관하는 전통이 황학정에 보관되어 오다가 1993년에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으로 옮겨졌다. 황학정은 사정 건물의 예로서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의 궁술을 게승하기 위해 궁술행사가 열리는 역사적인 장소이다. <출처:서울시청>


사직단 뒷편 인왕산길 아래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활터 정자인 황학정. 원래는 구한말 고종이 경희궁 뒷편 활터에 세웠던 정자로 일제강점기에 민간 활터가 있었던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구한말 정자형식을 보여주는 황학정. 앞면 4칸에 사방이 개방되어 있는 형태를 하고 있으며, 한칸은 누마루 형태로 약간 높게 만들어 놓고 있다.


황학정 현판


내부에는 고종의 어진이 걸려 있다.


활터에서 활쏘기를 위한 정자로 유학자들이 세운 일반적인 정자와는 달리 온돌방을 두고 있지 않다.


황학정에서 보관했던 고종의 활과 화살. 지금은 육군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과녁


활을 나르는 장치


황학정 뒷편 사무실


황학정 뒷편 작은 육모정


황학정 들어가는 길. 사직단에서 연결된 도로를 통해서 황학정으로 갈 수 있다.


활터에서 놀고 있는 토끼


황학정으로 들어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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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 | 황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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