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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선 유적_왕릉

세종대왕 능 (영릉) 전시물 - 정남일구, 적도의, 관천대

younghwan 2010. 9. 10.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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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남일구
 정남일구는 세종19년(1437년)에 제작한 해시계의 하나로 지남침이 없이도 남쪽 방향을 결정하고 동서로 움질일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축 끝에 추를 달아 정남일구의 수평을 잡도록 하였다. 지평환에는 24방위와 24절기가 표시되어 있으며, 사유환 양 측면에 눈금이 새겨져 있어 정오에 태양의 남중고도를 측정할 수 있다. 사유환 안쪽에는 직거와 남북방향으로 움직이는 규형이 있어서 일 년 동안의 24절기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하루의 시각을 알 수 있다. 시각을 알아보려면 사유환을 좌우로 움직이면서 규형을 남북방향으로 움직여 규형의 남쪽 구멍을 통과한 태양 광선이 시각선과 절기선이 그려져 있는 시반면에 닿을 때 정사각형으로 뚫린 구멍의 중앙에 나타난 시각을 읽으면 된다.




☞ 적도의
 조선후기, 남병철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천문관측기기인 간의와 혼천의의 천체관측 부분만 따로 떼어 적도의를 제작하였다. 이는 세종시대로부터 꾸준히 변화 발전해 온 혼천의와 간의를 충분히 검토하고 연구한 끝에, 가장 손쉽고, 편리하게 관측할 수 있도록 고안된 천문기기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존하는 유물은 없어서, 기록에 남아있는 그림을 바탕으로 문헌을 참고하여 적도의 복원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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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천대
 관천대는 조선시대 천문관측대로 일명 간의대 또는 첨성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조선 초기에는 왕립 천문기상대인 서운관을 2곳에 두었는 데, 특히 세종대왕은 경궁궁 안 서운관에 대간의대, 북부 광화방 서운관에 소간의대를 설치하고, 관원들로 하여금 하늘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끊임없이 관측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임진왜란 때 모든 관측시설이 불타버려 숙종 14년 (1688년)에 다시 관측대 2개를 세웠는 데, 그 중의 하나가 창경궁 관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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