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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목관아 2

충주 관아공원, 도심공원으로 변모한 옛 충주목 관아터

충주 지역은 삼국시대에 중원경이 설치되었고 고려 태조 23년(940) 충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984년(성종 2)에 전국에 12목이 설치되면서 충주목이 설치되어 구한말 행정구역개편때까지 그 지위를 유지했다. 조선시대 행정단위인 목(牧)은 정3품의 외직문관이 고을 수령으로 있었던 큰 고을로 고려시대에는 전국에 12목을, 조선시대에는 전국의 20목을 두었으며, 감영인 설치된 지역에서는 관찰사가 겸직하기도 했다. 충주지역은 남한강 중류에 위치해 있으면서 한강조운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었으며, 조령과 죽령을 통해 영남지방과 한양을 연결해주는 육상교통로의 중심이기도 했다. 충주 관아공원은 충주시 성내동 옛 충주읍성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터에 조성한 도심공원으로 충주목 동헌인 청령헌과 영빈관으로 사용했던 제금당이 남..

조선 관아 2011.11.03

충주 제금당, 조선시대 관아 건물 중 영빈관으로 사용했던 동헌 별관

충주 도심에 위치한 옛 충주목 관아공원에 동헌인 청령헌과 함께 남아 있는 별관 건물인 제금당이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지방 관아 건물 중 동헌 별관으로 지어진 건물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건물은 앞면 7칸, 옆면 3칸으로 규모가 큰 편이며, 팔작지붕을 하고 있고,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는 새날개 모양의 익공양식이다. 영빈관이 관아 건물로서는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라서 동헌이나 객사와는 다른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앞면 7칸 중 가운데 2칸은 대청마루로 사용하고 있으며, 오른쪽 2칸과 왼쪽 3칸을 온돌방과 마루방으로 꾸며 손님들이 묵었던 것으로 보인다. 충주목은 고려시대에 처음 전국에 지방행정단위인 목(牧)이 설치된 이래로 구한말까지 유지되었다. 남한강 조운, 영남 내륙..

조선 관아 2011.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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