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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산성_읍성)

[고창읍성(高敞邑城)]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읍성

younghwan 2009. 12. 1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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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읍성은 우리나라의 특징적인 성곽의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이나 일본의 성곽은 지역 유력자의 저택을 중심으로 견고한 성곽을 쌓는데 비해 우리나라의 읍성은 주민이 거주하는 지역을 성곽으로 쌓고 있습니다. 이런 일반적은 읍성의 성격과는 달리 고창읍성은 동쪽으로 반등산(半登山)을 둘러싸고 있는 산성과 비슷한 형태를 보입니다. 동문·서문과 정문격인 북문이 있고, 성문사에는 방어를 위한 6개의 치(雉)가 있습니다. 성문은 일반적인 성곽의 성문처럼 견고해 보이지는 않지만 앞에 튼튼한 옹성을 쌓아놓고 있습니다. 고창읍성의 전체적인 구조를 보면 장기적인 농성을 할 수 있는 견고한 산성이나 지역중심지의 성곽이라고는 보기는 힘들고, 며칠정도 농성이 가능한 읍성과 비슷한 규모입니다.

※ 고창읍성 탐방
 1. 고창읍성 성벽            2. 성문, 옹성, 치           3. 읍성내 관청         4. 신재효 고택

고창읍성의 정문격인 북문입니다. 옹성을 통해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옹성의 크기가 전주 풍남문의 옹성보다 크게 보입니다.

고창읍성 북문의 옹성과 출입로, 북문의 성루인 공북루입니다.

북문 주위의 성벽입니다.

북문과 동문사이의 성벽입니다.

고창읍성의 동문입니다. 옹성으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성의 또다른 방어시설인 치(雉)입니다.

고창읍성은 지역민이 거주하던 장소는 아니고 산성의 형태와 비슷한데 지방관청 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생각됩니다.  남강변에 자리잡은 진주성이 고창읍성과 비슷한 형태입니다. 읍성내 제일 높은 곳에는 중앙정부를 상징하는 객사가 있고 그 아래로 동헌, 작청 등이 있습니다. 읍성의 가운데에는 연못과 누각이 있어 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성문 입구에는 감옥이 있고 서쪽편으로는 지방토호들이 모여서 수령을 보좌하고 논의할 수 있는 향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복원된 건물처럼 보입니다만 지방관청의 배치와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관청에서 제일 중요한 건물인 객사입니다. 임금의 전패와 궐패를 안치하고 문안을 드리는 주사(主舍)와 온돌방을 두어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한 익사(翼舍)로 구분된다고 합니다.


하급관리들이 근무하는 작청을 비롯하여, 향청 등 여러 관청 건물이 있고 성문입구에는 감옥이 있습니다.

읍성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누각입니다. 연회를 베풀거나 전시에 지휘부 역할을 하는 장소로 생각됩니다. 그 앞으로는 전시에 식수를 공급할 수 있는 연못입니다.


고창읍성 배치도

안내표지판

고창읍성 입구에 위치한 이 집은 동리 신재효가 살면서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 조선 철종때 세워졌다고 합니다. 일자형의 초가집으로 농촌마을의 주택은 아니고 고창읍내에 위치한 지방도시의 주택이라고 생각됩니다. 초가로 지어졌지만 나름대로 격식을 갖추고 있는 양반집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주변의 물을 끌어 마루 밑을 통해 서재 밖 연못으로 흘러가도록 만든 운치 있는 집이었으나, 지금은 모두 파묻혔고, 연못만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옛 고창 고을의 읍성으로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는데, 백제 때 고창지역을 모량부리로 불렀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나주진관, 입암산성 등과 더불어 호남대륙을 방어하는 요충지로, 단종 원년(1453)에 세워진 것이라고도 하고 숙종 때 완성되었다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최근 보수공사를 하여 원형에 가깝도록 복구하였다. 성 둘레는 1,684m이며, 동·서·북문과 옹성이 3개소, 장대지 6개소와 해자들로 된 전략적 요충시설이 갖춰져 있다. 성 안에는 동헌·객사를 비롯하여 22동의 관아건물들로 되어 있었으나 대부분 손실되었다. 이 성은 조선시대의 읍성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주초와 문짝을 달던 홈이 파인 누문(樓門)을 가지고 있어, 평양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성문, 보은의 삼년산성이나 강화읍성 등에서 볼 수 있는 양식과 비교되어 성곽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여성들의 성벽 밟기 풍습으로 유명한데, 한 해의 재앙과 질병을 쫓고 복을 비는 의식의 하나로 좋은 민속자료가 된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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