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사는 전남 강진 월출산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아마 그래서 이름도 월남사가 아닌가 생각된다. 고려중기 진각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으나,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근처 수 km에 무위사가 있고 무위사 너머로 월출산 도갑사가 있다. 아마도 좁은 지역에 2개의 사찰이 동시에 존재하기 힘들어서 폐사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월남사지에는 현재 삼층석탑과 진각국사비만 남아 있고, 나머지 절터는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지금은 문화재 정비 등의 이유로 시골집들을 없애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석탑 뒷편으로는 새로지은 작은 사찰인 월남사가 자리하고 있다.
월남사는 고려 중기에 진각국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창건 이후의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진각국사의 성은 최씨이고 이름은 혜심(慧諶)으로 24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어머니의 죽음으로 출가를 하게 되었다. 출가 후 보조선사 밑에서 수도를 하였고 고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대선사(大禪師)가 되었으며, 고종 21년(1234)에 57세로 입적하였다. 월남사 터에 서 있는 이 비는 절을 창건한 진각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올린 형태이다. 받침돌인 거북은 입에 구슬을 문 상태로 긴 목을 빼어들고 네 발을 단단히 짚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매우 강렬하고 사실적이다. 발톱에서 보이는 현실성이나 목과 머리조각의 세부표현 또한 전체적인 균형과 잘 어우러져 한층 돋보인다. 비몸은 원래 매우 컸다고 하나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아랫부분만 남아 있으며, 표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비문은 잘 보이지 않는다.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인 이규보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며, 비를 세운 시기는 고려 고종 때로 추정된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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