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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화성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 능침을 화산 부근으로 이전하고 이곳에 있는 읍성을 현재의 팔달산 부근으로 이전하면서 조성된 당시 최대 규모의 신도시이다. 당대의 실학자 정약용, 채제공 등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로 하여 조성한 수원화성은 지금도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부분이 많고, 의궤 등에 수원화성 축성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 아주 독특한 성곽이다.
그 중 팔달문은 그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사통팔달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수원화성의 남문이자 정문의 역할을 했던 성문이다. 서울을 남대문인 숭례문 주변에 남대문 시장이 있듯이 이 곳 팔달문 주변으로는 지동시장이라는 재래시장이 꿋꿋히 자리잡고 있다. 팔달문은 아마도 북경에서도 제일 유명한 만리장성인 팔달령 만리장성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보이며, 수원화성을 축조할 때 청나라 수도 북경을 많이 참조했다는 것을 여러 곳에서 느낄 수 있다.
수원화성 남문격인 팔달문. 이 팔달문을 나서면 사도세자 능이 있는 화산의 융건릉으로 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팔달문은 성문의 규모에 있어서 상당히 규모가 크며, 중국 북경의 성곽처럼 벽돌을 쌓은 전성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수원화성 팔달문은 바깥쪽에 옹성을 쌓아 출입문을 보호하고 있다. 현재의 옹성은 1975년 복원공사때 고증을 통해서 원형 그대로 복원한 것이라 한다. 옹성은 주로 조선후기에 쌓은 성문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수원화성 팔달문 문루. 앞면5칸, 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우진각지붕을 하고 있다.
팔달문 편액과 잡상
팔달문 출입문.
팔달문 문루를 오르는 계단
여러 방향에서 본 팔달문
팔달문 서쪽 팔달산 능선에서 본 팔달문
팔달산 서장대에서 내려다 본 팔달문
수원성은 조선 정조 18년(1794)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수원으로 옮기면서 짓기 시작하여 정조 20년(1796)에 완성한 성곽이다. 중국성의 모습을 본뜨기는 했지만 과학적인 방법으로 성을 쌓아 훨씬 발달한 모습을 하며 한국 성곽을 대표하는 뛰어난 유적이다. 이 문은 수원성의 남쪽문으로 이름은 서쪽에 있는 팔달산에서 따 왔다. 문루는 앞면 5칸·옆면 2칸의 2층 건물이며,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문의 바깥쪽에는 문을 보호하고 튼튼히 지키기 위해 반원 모양으로 옹성을 쌓았다. 이 옹성은 1975년 복원공사 때 고증하여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또한 문의 좌우로 성벽이 연결되어 있었지만 도로를 만들면서 헐어버려 지금은 성문만 남아 있다. 수원성 안쪽에 있는 여러 건물 중 가장 크고 화려하며, 발달된 조선 후기의 성문 건축형태를 고루 갖추고 있는 문화재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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