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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화성행궁] 화성유수 거처인 복내당, 대장금 촬영지

younghwan 2010. 3. 17.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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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행궁 복내당은  행궁의 내당이자 실제 이 곳을 집무를 보던 화성유수 가족이 거처하던 내아이다. 화성행궁의 성격자체가 국왕이 잠시머무르는 행궁의 성격과 수원화성을 책임지던 화성 유수의 집무공간이었던 까닭에 이 곳 화성행궁 복내당은 화성유속 가족들이 거처하던 주택과 행궁을 방문하는 국왕을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의 숙식을 지원해야하는 역할이 있었다. 그래서 복내당은 행각들이 상당히 많고, 국왕이 잠시 거처하던 봉수당과 장락당이 바로 붙어 있다. 아마도 정조대왕 시절에는 화성유수부 가족들이 거처하는 공간이었지만 실제로 거처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많은 국왕을 보필하는 인원들이 이 곳 복내당에 머무러면서 행사를 준비했을 것으로 보인다.


화성유수 내아인 복내당. 건물자체로는 커지 않고 일반 저택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나, 행궁에서 거행되는 행사를 지원해야 하는 까닭에 복내당을 중심으로 많은 행각들이 붙어 있고, 각 행각마다 많은 출입문을 두고 있다.


복내당에서 드라마 '대장금'이 많이 촬영된 까닭에 복내당 마루에는 대장금 장면을 연출해 놓고 있다.


복내당 부엌은 상시의 부엌 살림들이 연출되어 있어 수원부 유수의 생활상을 엿볼수 있다.


복내당 출입문과 건물사이 골목길

복내당의 이름은 '복은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복내당은 행궁의 내당으로 1789년에 건립되었으며, 1794년에 증축되었다. 평상시에는 화성유수의 가족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이곳의 현판은 정조가 직접 썼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판은 남아 있지 않으며 1997년에 복원된 것이다. <출처:수원시청>


복내당 뒷쪽편 행각들. 복내당과 작은 출입문으로 구분되어 있다. 아마도 뒷쪽편에는 국왕을 수행하던 내시(?)들이 머물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화성행궁 복내당 뒷쪽편. 상당히 많은 행각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정조대왕 행차시 많은 사람들이 머물 수 있도록 지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화성행국 복내당 앞쪽편 행각들. 이곳에도 대장금 장면을 연출해 놓고 있다.

대장금의 어린 시절 수락간 생각시 훈련장과 어선경연이 벌어졌던 곳, 의녀가 되기 위해 장금이 교육을 받았던 전의감 교육장, 궁궐안에서 보여지는 내의원의 모든 모습과 그 밖의 대장금의 주요 장면이 이 곳 수원화성에서 펼쳐졌다. <출처:수원시청>


화성행궁 복내당에는 건물 규모에 비해서 상당히 많은 출입문을 두고 있는데, 이는 복내당이 화성유수 내아로서의 역할보다는 궁궐 내당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점을 말해준다. 좁은 공간에 국왕을 수행하는 많은 수의 상궁, 내시들이 머물러야 했고 그들을 신분, 역할에 따라 구분해야 했기때문에 출입문이 많았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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