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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_종묘

[경복궁, 조선의 법궁] 공목재, 영사재 등 태원전 부속 전각들

younghwan 2010. 10. 31.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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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원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시는 건물이지만, 원래 목적은 조선 왕실에서 발생하는 국상을 위해서 세워졌다고 봐도 무방한 건물이다. 조선시대 국장이라는 것이 대상은 왕과 왕비라서 많지 않은 것 같지만, 국장 기관이 3년상에 이르기때문에 기존 궁궐전각을 이용할 경우 번거로운 점이 많고 국장기간동안 운영되는 관청들이 있었기때문에 많은 업무공간이 필요해서 경복궁 중건시에는 이 곳에 태원전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연유로 해서 조선시대에는 경복궁과는 별도로 창덕궁을 두고 있었으며, 경복궁이 불타버린 조선후기에는 창덕궁 옆에 있던 창경궁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왕이나 왕비가 승하한 경우 국장의 사유가 발생하고, 제일 먼저 하는 일 중의 하나가 국장을 준비하는 임시관청인 도감을 설치하는 것이다. 도감에는 빈전을 유지관리하는 빈전도감, 국장행사를 주관하는 국장도감과 왕릉을 조성하는 산릉도감이 있으며, 국장기간인 3년동안 유지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많은 관헌들이 국장에 참여하기 때문에 그들의 업무공간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이며, 태원전 옆에는 많은 사람들이 근무할 수 있는 상당히 칸수가 많은 행각들이 들어서 있다.


경복궁 태원전 일원에는 재실 성격을 갖는 영사재와 공목재를 비롯하여 임시관청 관헌들이 근무할 수 있는 많은 부속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현재의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철거된 것을 최근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상주하는 인원이 없었던 건물인 까닭에 먼저 건물이 헐리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태원전 바로 옆에 있는 건물로 재실 역할을 하는 영사재. 태원전을 비롯하여 많은 전각들과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국상 기간 중에 고종이 신하들을 알현하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태원전 영사재.


영사재 행각들. 창고와 방들로 이루어져 있다.


태원전 입구에는 별도로 재실 용도인 공목재가 있다. 앞면 5칸의 궁궐 건물 형태를 하고 있는 건물로 아마도 왕비나 대비 등이 머물던 곳이 아닐까 생각된다.????


국왕이 머물던 재실 건물인 영사재는 관헌들이나 국상 진행 인원들이 머물던 부속행각과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이는 구한말 창덕궁에 많이 반영되어 있는 건축양식이 아닌가 생각된다.


공목재 부근에 당호가 붙어 있는 작은 방.


공목재 출입문


태원전 동쪽편으로는 분리된 두 동의 행각 건물군이 있다. 남쪽 건물은 복도로 영사재와 연결되어 있고, 북쪽 건물은 독립적으로 건물군이 형성되어 있다. 그냥 추론해 보면 남쪽건물은 영사재와 연결된 것으로 봐서 국왕을 모시는 내시나 궁녀들이 사용한 것 같고, 북쪽 건물은 국장을 진행하기 위해 설치된 행정기관에서 사용한 것 같다.


북쪽편 건물 내부. 길게 늘어선 행각은 방들과 창고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별한 의미글 갖도록 꾸며진 방은 없다.


남쪽편 행각또한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남쪽편 건물에는 담장을 두른 마당과 출입문을 두고 있다.


행각 동쪽편에 있는 우물



왕과 왕비가 죽으면 빈전에 관을 모시고, 교외에 마련된 산릉에 시신과 관을 묻은 후에는 혼전에 신주를 모셔 정해진 장례 기간을 치른 후에 종묘로 신위를 옮겨 모시게 된다. 태원전은 경복궁의 빈전으로, 문경전은 혼전으로 건립되었다. 주변에 공목재.영사재 등 상례용 건물들도 들어서 일곽을 이루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철거를 겪고 한때 청와대 경호부대가 주둔하는 등 변화를 겪었다. 2006년 이 일원의 복원 공사가 마무리되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출처:경복궁>

삼도감의 설치
왕이 승하하면 조정에서는 국장을 준비하는 임시관청인 도감을 설치하고 업무를 담당할 관리를 뽑았다. 국장을 담당하는 도감은 빈전도감, 국장도감, 산릉도감이 있으며 삼도감의 총괄은 충효사가 맡았다. 국장이 종료되면 의궤청을 설립하여 국장의 진행 절차와 국장에 소요된 품목, 참여한 인원을 상세히 적은 의궤를 제작하여 왕실 행사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출처:조선왕릉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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