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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보물 185호), 정림사지오층석탑을 닮은 고려초기 석탑

younghwan 2010. 12. 25.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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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 무량사는 조선 세조때 생육신인 매월당 김시습이 만년을 보낸 사찰로 사찰경내에 보물로 지정된 김시습 초상화와 사찰 바깥쪽에 그의 부도탑이 모셔져 있는 사찰이다. 부여 서쪽편 만수산 아래에 있는 이 사찰은 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임진왜란 때 사찰 건물 전체가 불타버린 것을 인조 때 중창한 것이라 한다. 사찰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2층 건물인 무량사 극락전이 있는 금산사 극락전보다는 작지만, 꽤 큰 건물로 통일신라시대 금당(장륙전)의 모습이 남아 있는 건물이다.

 무량사 극락전 앞에는 웅장한 모습의 오층석탑이 남아 있는데,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과 그 모양새가 비슷하다. 기단은 단층인 것처럼 보이며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을 세워두고 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층마다 그 높이가 다르다는 점에서 정림사지오층석탑과 닮았다고 하고 있다. 익산 왕궁리오층석탑과 함께 고려전기에 만들어진 오층석탑으로서 백제 석탑의 양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 석탑이다.


무량사 오층석탑은 그 앞쪽에 석등이 함께 온전히 남아 있어 그 가치가 높아 보인다. 뒷편에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가장 많았던 것으로 보이는 금당인 장륙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미륵전이 있다. 삼국시대 가람의 배치가 남아 있는 많지 않은 사찰 중의 하나이다.


무량사 오층석탑은 기단과 1층 탑신의 몸돌이 함께 기단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으로 보이며, 전체적으로 웅장하면서도 안정감이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단층으로 이루어진 기단부. 탑신 1층의 몸돌과 합치면 정형화된 통일신라 3층석탑의 기단부와 비슷한 형태로 보인다.


오층으로 이루어진 탑신은 위로 올라갈수록 그 높이가 낮아져서 안정감을 주고 있다. 근처에 있는 정림사지오층석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탑신의 지붕돌은 다른 석탑에 비해서 얇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지붕돌에 장식물을 달았던 구멍이 많이 보인다.


무량사 사찰경내에 들어서면 석탑과 금당이 있는 전형적인 사찰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불전인 극락전에 비해서 주위의 다른 전각들은 그 규모가 크지는 않다.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무량사 극락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웅장한 모습의 5층석탑이다. 기단은 다듬은 석재를 층단으로 괴임을 만들고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을 세웠다. 탑신은 지붕돌과 몸돌을 한층으로 하여 5층을 이루고 있다. 네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있는 몸돌은 지붕돌에 비하여 높이가 낮은 편이나 전체적으로 알맞은 비례를 보이고 있어 우아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석탑의 부분재료들이 따로 만들어진 점이나 지붕돌이 얇고 넓은 점, 1층 몸돌에 비해 2층부터는 그 높이가 점차 줄어드는 모습들은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과 많이 닮았다. 백제와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조화시켜 만든 고려 전기의 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1971년 해체수리를 할 때 1층에서 금동제 아미타여래좌상, 지장보살상, 관음보살상의 삼존상이 나왔고, 3층에서 금동보살상, 5층에서는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출처:부여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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