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선림원지는 강원도 동해안 양양과 속초지역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이자 지금은 56번국도가 지나가는 구룡령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큰 사찰이었다. 통일신라시대에 9세기에 홍각선사가 지었다는 이 사찰은 수행사찰로서보다는 고려시대에 이 곳을 지나서 구룡령을 넘기전에 잠시 머물던 숙박지로 유명했던 것으로 보이며, 많은 승려들과 여행객들어 묵어서인지 쌀씻은 물의 끝없이 흘러내린다고 해서 미천골로 불리는 지역이다. 지금은 주변에 민가가 있지만, 옛날에는 민가가 거의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선림원지 옛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은 이중기단 위에 건립된 높이 5m의 신라 석탑의 전형적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기단석에는 각면에 2매씩 8매의 판석으로 구성하여 8부중상을 새겨 놓고 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의 하나의 돌로 만들어 졌으며, 다른 삼층석탑에 비해서 특징적인 모습은 보여지지 않고 정형화된 형태를 하고 있다. 전체적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형태를 하고 있어, 기단부와 탑신, 상륜부의 비례가 잘 구성되어 있으나, 각 구성부의 조각수법이 떨어지는 편이며, 재료인 석재 또한 좋은 것이라고는 볼 수 없기때문에 통일신라말기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양양 선림원지 절터 가운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 2층으로 된 기단부 위에 3층의 탑신과 상륜부를 올려 놓고 있다. 경북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삼층석탑의 형태로 기단부에 팔부중상을 새겨놓고 있다.
양양 선림원지삼층석탑
2층으로 이루어진 기단부.
기단부 몸돌에 새겨놓은 팔부중상
3층으로 이루어진 탑신. 탑신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장식을 하고 있지는 않다.
석탑 앞에는 안상을 새겨놓은 배례석이 놓여져 있다.
양양 선림원지삼층석탑
1948년에 명문(銘文)이 있는 신라 범종이 발견되어 주목되었던 선림원터에는 석탑을 비롯하여 석등·홍각선사탑비·석조부도 등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들 석조유물들은 대부분 쓰러져 있었으나 모두 복원되었다.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석탑으로, 법당터 남쪽의 원래 위치에 복원되었다. 여러 장의 돌로 탑의 토대를 만들고, 아래층 기단을 올려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다. 위층 기단 역시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는데, 한 면을 둘로 나눈 뒤 8부중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은 높은 편이며, 2층 몸돌은 반으로 체감되고 각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넓은 편이고, 지붕의 경사가 급하게 내려 오다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약간 들려 있다. 밑면의 받침은 5단이다. 탑의 머리장식으로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이 있고, 철제찰주을 꽂았던 구멍이 있으며 그 위에는 보주(寶柱: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모양의 돌이 있으나 원형이 아닌 듯하다. 외형상 정제된 비례를 보여주지만 8부중상의 조각은 섬약하고 석재의 구성도 규율성을 잃고 있다. 신라 석탑의 양식을 충실히 이어받고 있으나 기단부의 짜임이나 각 부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조성연대는 9세기경 신라 후기에 가까운 것으로 짐작된다. 복원공사가 진행되기 전 기단부에서 소탑(小塔) 60여 기와 동탁(銅鐸) 1개가 발견된 일이 있다. 탑 앞에는 안상(眼象)을 새긴 배례석(拜禮石)이 남아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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