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신 중 유일하게 후손이 살아남은 박팽년 후손들이 모여사는 세거지인 달성군 하빈면 묘골마을 안쪽에는 사육신을 모신 육신사가 있다. 사육신을 모신 사당은 원래 낙빈서원에 있었으나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서원강당만 일제강점기에 복원되었고, 사당은 70년대 전국적인 '충효위인유적화사업'으로 현재의 위치에 세워졌다고 한다.
사육신을 모신 사당 동쪽편으로는 한옥건물 2동이 있는데, 하나는 보물 554호로 지정된 달성 태고정이라는 정자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재실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건물로 보인다. 달성 태고정은 조선 성종때인 1479년에 박팽년의 손자가 건립한 것이 임진왜란 때 불타버리고 1614년(광해군 6)에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일명 '일시루'라고도 불리는 이 건물은 보존이 잘 되어서 그런지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지만 한옥건물 중에는 상당히 오래된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앞면 4칸, 옆면 2칸의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는 건물로 2칸은 대청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대청에는 임진왜란 후 치찰사로 온 윤두수의 한시를 새긴 현판과 정유재란 후 명군 선무관이 남긴 액자들이 있다고 한다.
보물로 지정된 오래된 한옥인 달성 태고정. 원래는 박팽년 후손 종갓집 별당으로 사용된 건물로 현재는 육신사에 옮겨져 있다. 외관이 깨끗해서 오래된 건물이 아닌것처럼 보이지만 400년이 지난 오래된 건물이다. 한옥은 몇십년되지 않은 건물도 사람이 살지 않고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낡아 보이고, 오래된 건물이라도 사람이 살고 관리가 잘 되면 봉정사 극락전처럼 오래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명 '일시루'라고 불리는 이 정자에는 2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동쪽편 2칸은 대청마루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래된 건물의 흔적이 느껴진다.
대청에는 임진왜란 후 치찰사로 온 윤두수의 한시를 새긴 현판과 정유재란 후 명군 선무관이 남긴 액자들이 있다고 하는 원본은 아닌 듯 하다. (?)
마을에 민원이 있는지 보물인 태고정에 민원성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리 보기는 좋지 않아 보인다.
태고정 옆에 있는 'ㄱ'자형의 작은 한옥 건물. 사당을 관리하는 관리사 건물인데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태고정 앞에 있는 사당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마련한 건물인 숭절당이다. 앞면 6칸의 안채와 양쪽에 2동의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 가옥이라기 보다는 재실로 볼 수 있는 건물이다.
동쪽편 사랑채
서쪽편 사랑채
달성 태고정 전경
달성 태고정 (보물 554호),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638
이 정자는 1479년(성종10)에 사육신 중의 한 사람인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이 건립한 것이다. 원래는 종가 안에 붙어 있던 별당 건물이었으나 임진왜란때인 1592년(선조25)에 불타고 일부만 남아 있었다. 이를 1614년(광해군 6)에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의 일자형 건물로, 각각 2칸씩 대청마루와 방을 꾸몄다. 대청 앞면은 개방되어 있는데 대청 앞 기둥 사이에는 2층으로 된 난간을 설치하였다. 서쪽에는 온돌방과 부엌을 마련해 놓았는데 단순한 아궁이가 아닌 부엌을 둔 것은 흔치 않은 것이다. 태고정은 그 규모가 크지는 않으나 가구나 세부가공이 정교한 편이며, 조선 전기 건축의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어 건축사적인 가치가 크다. <출처:달성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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