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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유적_고분

경주 서악동고분군 (사적 142호), 무열왕릉 뒷편에 있는 신라 귀족의 무덤

younghwan 2011. 9. 2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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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적 142호로 지정된 서악동고분군은 경주시 서악동 선도산 남쪽으로 뻗어내린 구릉의 능선에 위치한 대형 고분으로 태종무열왕릉 뒷편에 나란히 놓여 있다. 이 고분들의 입지는 경주로 향해서 뻗은 능선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앞쪽으로는 경주를 관통하는 큰 강인 형산강이 흐르고 있으며 남쪽 계곡 건너에는 벽도산이 있는 점 등으로 볼 때 당나라와 교류가 많았던 삼국시대 말기의 풍수사상이 반영된 입지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긴장관계에 있던 백제.고구려 등 외부세력의 침입이 예상되는 교통로에 능을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선도산 능선을 따라 조성된 4기의 고분에 대해서는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공식적으로는 태종무열왕과 관련이 깊은 왕족이거나 왕의 무덤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뒷편 언덕에 있는 진흥왕릉, 진지왕릉 등에 비해 규모가 크고 무열왕릉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이 4기의 고분을 법흥왕릉, 진흥왕릉, 진지왕릉, 문흥대왕릉 등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봉분의 형태는 원형봉토분으로 높이 25m, 직경 40m 정도이며, 내부는 삼국시대 말기의 형식인 돌방무덤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분에 올라서면 경주시가지를 비롯하여 멀리 토함산, 가까이는 남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경치가 아주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이 곳에 올라서면 황룡사목탑, 경주 월성, 주변의 고분과 시가지의 전경이 경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을 것으로 보인다.



경주를 남북으로 흐르는 형산강 서쪽편 선도산 능선을 따라서 4기의 대형 고분이 나란히 있는 경주 서악동고분군. 문헌기록에 무열왕릉 뒷편에 있던 진흥왕릉, 법흥왕릉, 진지왕릉, 문흥대왕릉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현재는 삼국통일기 무열왕과 관련된 귀족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가 서악동 고분군에 있는 고분을 진흥왕릉이라고 추정하고 있지만, 진흥왕릉에 대한 공식적인 위치는 이 곳으로 되어어 있다. 삼국통일의 기초를 마련한 진흥왕릉의 무덤이고 하지만, 서악동 구분군에 비해서 그 규모가 상당히 작은 편이다.


서악동고분군 입구에 있는 태종무열왕릉비.


우거진 송림속에 위치한 태종무열왕릉


태종무열왕릉을 지나면 멀리 선두산 정상이 보이고, 선두산 능선이 형산강 방향으로 뻗어내린 능선에 4기의 큰 고분이 자리잡고 있다.


서악동 고분군 중 제일 앞쪽에 위치한 고분. 이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주시가지의 전경이 상당히 빼어나다.


서악동 구분군 앞에서 내려다 본 경주시가지. 지금은 하얀색의 아파트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통일신라시대에는 보문단지 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우뚝 솟아 있던 황룡사목탑이 상당이 인상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멀리 경주시가지에 있는 대형 고분이한눈에 들어온다. 통일신라시대 경주의 도시규모가 지금보다 컸다는 것을 생각하면 내륙에서 경주로 들어오는 방문객들이 경주시가지의 분위기에 압도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멀리 경주 월성과 토함산이 한눈에 보인다. 왼쪽편 아래쪽에 보이는 경주월성은 지금은 작은 동산처럼보이지만, 통일신라시대에는 웅장한 궁궐이 솟아 있던 곳으로 황룡사목탑과 함께 경주의 랜드마크가 되었을 것 같다.


경주 남쪽편에 있는 경주남산.


4기의 고분 중 제일 앞쪽에 위치한 고분. 문흥대왕릉으로 추정하도 한다고 한다.


가운데 2기의 고분. 진흥왕릉과 진지왕릉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무덤으로 법흥왕릉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경주 서악동고분군 (사적 142호), 경주시 서악동 750
경주 서악동 무열왕릉 바로 뒷편의 구릉에 분포하는 4개의 대형 무덤을 가리킨다. 이곳의 무덤들은 경주분지의 대형 무덤과 비슷한 형태로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이다. 아직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내부구조 시설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봉분이 거대한 점, 자연돌을 이용해 둘레돌을 두른 점 및 무열왕릉보다 높은 곳에 있는 점으로 보아 안에는 나무로 된 네모난 방을 만들고 그 위와 주변에 돌무더기를 쌓은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 형식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들 무덤이 분포한 지형은 선도산에서 서남으로 뻗은 능선상에 있고, 뒷산과 동서의 계곡 건너에 있는 능선 등을 종합해 볼 때, 풍수지리사상의 영향하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무덤의 주인에 대해 첫 번째 무덤은 법흥왕릉, 두 번째 무덤은 진흥왕릉, 세 번째 무덤은 진지왕릉, 네 번째 무덤은 문흥대왕릉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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