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군 연산면 고정리마을은 지금은 황산벌참살이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작은 마을로 조선중기 이후 조선사회의 주류세력이었던 기호학파를 대표하는 사계 김장생의 세거지이기도 하다. 김장생은 율곡 이이의 제자이자, 노론의 영수인 우암 송시열의 스승이기도 한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로 이이를 모신 자운서원을 비롯하여 논산의 돈암서원 등 그를 모시는 서원이 전국각지에 있다.
연산 고정리마을은 김장생의 선조이 김약채가 조선초에 이곳에 자리잡은 마을로 세조대의 김국광에 이르러 많은 공을 세워 훈구공신의 반열에 오른 집안으로 대대로 높은 벼슬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충청지역을 대표하는 유력 가문의 세거지이지만, 후손들이 주로 서울에서 벼슬을 많이 해서 그런지 마을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편이며, 안동 하회마을처럼 후손들이 살았던 큰 규모의 저택들은 많이 보이지는 않고, 대신에 조상들을 모시기 위한 재실이나 사당들이 많이 모여 있는 마을이다. 마을에는 김장생을 비롯하여 집안사람들이 묘소들과 종가 재실, 김국광을 모시는 사당, 김장생의 할아버지 김호와 아버지 김계휘를 모시는 재실인 모선재, 이 곳에 터를 잡은 김약채를 모시는 사당과 재실인 숭원재, 김약채의 며느리인 양천허씨를 모시는 재실인 영묘재와 정령 등 많은 문화재들이 모여 있다. 마을 서쪽편 구릉너머에는 황산벌싸움에서 전사한 계백 장군의 묘역이 있고, 북쪽편에는 김장생을 모신 대표적인 서원인 돈암서원이 자리잡고 있다.
논산 고정리 마을 입구에는 이 마을의 오랜 내력을 말해주는 오래된 고목이 우뚝 서 있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정려각. 김장생의 선조로 이 마을에 터를 잡은 김약채의 며느리인 양천허씨의 정절을 기리기 위한 정려가 걸려 있다.
정려각 내부에 걸려 있는 정려
고정리 양천 허씨 정려,
김장생의 7대 조모인 양천 허씨의 정려문이다. 양천 허씨는 대한 허응의 딸로 사인 김문에게 출가하였는데 17세에 남편을 잃었다. 이에 부모가 불쌍히 여겨 개가시키려 하자 유복자인 김철산을 업고 개경에서 시댁인 연산 고정리로 돌아와 아들을 훌륭히 키웠다 한다. 1455년에 허씨가 사망하자 정절이 조정에 알려져 1467년에 정려가 내렸다. 정려각은 팔각형의 긴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웠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정.측면 각 1칸의 건물이다. 정려각 안에는 정려가 걸려 있으며, 그 앞에는 '양부허씨지려'라고 음서 되어 있는 명정비가 세워져 있다. 조선시대 정려각의 화려하고 특이한 건축양식의 일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마을 입구 근처에는 김장생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모시는 재실인 모선재와 5대조인 김국광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김장생의 할아버지 김호와 아버지 김계휘를 모시는 재실인 모선재. 앞면 4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단촐한 규모의 재실이다.
모선재 뒷편으로는 5대조인 김국광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김국광은 세조대에 이시애의 반란을 진압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워 훈구대신의 반열에 올랐던 인물이다. 사당 건물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고하나 현재의 건물은 최근에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의정공 김국광 사당
이 사당은 조선 성종 13년(1483)에 건립된 불천위 사당으로 종중에서 관리하여 왔으나 수차례에 걸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통적인 민족고유의 가묘형식을 갖추고 있는 이 건물은 전면 3칸, 측면 3칸으로 전면에는 퇴칸을 둔 사당으로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후벽면에 감실을 두어 위패를 모시고 매년 음력 10월9일과 12월 10일에 제사를 모시고 있다. 의정공 김국광(1415~1480)은 조선시대의 문신으로 자는 관경, 호는 서석, 본관은 광산으로 김철산의 아들이다. 세조 6년에는 함경도 경차관으로서 오랑캐를 회유하여 물러나게 하였으며, 세조 13년에는 이시애의 난 때 병조판서 남이장군과 함께 난을 평정하였다. 성종 2년에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세조때 경국대전편찬에도 공이 많았으며, 좌리공신 1등에 광산부원군에 봉해졌다.
사당에서 내려다 본 모선재
마을 뒷편에는 이 마을에 터를 잡은 김장생의 선조 김약채를 모시는 사당과 재실인 숭원재와 무덤들이 있다.
숭원재 재실과 사당. 건물의 형태나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최근에 새로 지은 건물로 보인다.
마을 안쪽에 있는 영사재. 김장생의 고조 김극뉴의 처 의령남씨를 모시는 재실이다.
연산 영사재(永思齋),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김극뉴(1436~1496)의 처 의령 남씨를 제향하는 곳으로 200여년전에 세워졌다고 한다. 재실(제사를 지내는 집)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건물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뭉이다. 삼문과 동재.서재 등은 최근에 세웠다. 재실의 뒷쪽 50m 정도 떨어진 구릉의 동향 사면에 의령 남씨의 무덤이 있다. 묘역에는 묘비, 문인석, 석등, 상석 등이 배치되어 있다. 호패형의 묘비는 1689년에 세워졌고, 높이 109m, 너비 46m 정도로 앞면에 '유명조선정부인의령남씨지묘'라고 새겨져 있다.
마을 뒷편에서 본 영사재
마을 전경
김장생을 모시는 돈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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