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을 대표하는 키워드를 꼽으라고 하면 많은 것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이 계백장군과 황산벌싸움, 그리고 논산훈련소일 것이다. 이는 황산벌싸움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계백이라는 인물이 후대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백제의 마지막 싸움이었던 계백장군이 이끌던 오천결사대의 황산벌 싸움과 관련된 유적은 실제로 거의 없고, 넓은 논산의 황산벌을 보면서 당시의 싸움을 상상할 뿐이다.
논산시 부적면 탑정호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계백장군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을 중심으로 계백장군 유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계백장군무덤과 사당인 충장사, 백제군사박물관, 체험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무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최근에 조성된 것들이다. 유적지 안쪽 양지바른 낮은 언덕에 계백장군의 무덤이 있는데, 원래 돌덧널이 노출된 채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70년대에 보수공사를 하였다고 한다. 이곳을 계백장군의 무덤으로 간주하는 이유는 옛문헌에 계백의 목이 잘렸다고 전하는 '수락산'과 시신을 가매장했다는 '가장곡'이 이 곳이라는 점과 계백 장군의 위패를 모신 충곡서원이 바로 뒷편에 있다는 점, 무덤 동남쪽이 황산벌이라는 점도 고려했다고 한다. 주변에는 조선후기 기호학파를 대표하는 유학자인 김장생의 세거지가 유적지 언덕너머에 위치하고 있으며, 계백장군을 모시는 서원인 충곡서원도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계백장군유적지를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백제군사박물관
박물관을 지나서 올라가면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충장사와 오른편 언덕에 무덤을 볼 수 있다. 대부분 최근에 조성한 것들로 유적지같은 느낌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계백장군 위패를 모신 사당인 충장사
충장사 입구 홍살문
계백장군 사당인 충장사
충장사 옆 언덕에 계백장군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곳에 조성한 무덤이 보인다.
계백장군 무덤으로 올라가는 길
계백장군무덤. 원래 무덤석실인 돌덧널 일부가 노출되어 있던 곳으로 1970년대에 현재의 모습으로 수리했다고 한다.
유적지 동쪽편 언덕에 세워진 기념관 비슷하게 보이는 건물.
서쪽편 언덕에 세워진 기념비.
계백장군 유적지 앞쪽으로 보이는 탑정호
논산 계백장군유적지, 논산시 부적면 충곡로
계백장군은 의자왕대에 성충, 흥수와 함께 백제의 3충신 중 한 명으로, 백제 역사에서 충절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의자왕 20년(660)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백제의 사비도성으로 쳐들어 왔을 때, 결사대 5천여 명을 이끌고 황산벌에 나아가 신라군 5만 여 명에 맞서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백제군은 지형이 험난한 요충지 세 곳에 진을 치고 신라군과 네번 싸워 모두 승리하였다. 그러나 화랑 관창 등의 죽음으로 전의를 가다듬은 신라군의 공격에 백제군은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하였으며, 계백장군도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계백장군과 5천결사대의 거룩한 뜻을 기리고 후손에게 올바른 국가관과 호국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1990년대 이후 계백장군유적지 성역사업을 추진해 왔다. 유적재 내에는 계백장군 묘소와 사당인 충장사가 위치하고 있다. 또한 문화교육공간으로 백제군사박물관과 야외체험장 등이 자리잡고 있다. <출처:논산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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