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를 건국한 시조인 박혁거세왕의 탄생설화가 있는 경주시 탑동에 위치한 사적 245호로 지정된 경주 나정이다. 최근에 발굴작업을 했고, 사적정비를 진행중이어서 현재는 빈터만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곳에는 조선 순조대에 세워진 유허비를 비롯하여 팔각건물지, 우물지, 담장지, 부속건물지, 배수로 등이 남아 있으며, 이곳에서 출토된 건물석재들도 볼 수 있다. 우물은 고대 이래로 인간이 물을 얻을 수 있는 인공시설로 사람들은 이런 우물을 신성시하였다.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는 당시 사람들에게 신성시되었던 우물제사 유적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들 우물들에는 토기와 기와, 동물의 뼈, 씨앗 등이 출토되고 있다. 이들 우물들은 식수를 얻기 위한 우물이라기 보다는 우물제사를 위한 공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라인들에게 우물은 시조가 탄생한 상징적인 공간이자 다른 세상 (특히 바다의 용왕)과 연결해 주는 이동통로이자 부정함을 씻어주는 신성한 장소였다. 이 곳 나정은 신라의 우물제사 유적 중 시조의 탄생과 관련된 대표적인 우물유적이라 할 수 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재위 기원전 57~ 기원후 4년)는 당시 이곳에 모여살던 6부촌 중 남산 북쪽편에 자리잡고 살던 고허촌장이 나정에서 가져온 알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가 13세 되던해 6부촌 촌장들이 그를 왕으로 옹립하고 국호를 서라벌이라고 하였다. 부인인 알영부인 또한 경주 오릉에 있는 알영정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무덤인 경주 오릉은 경주 도심 서남쪽 그의 근거지가 되었던 고허촌 부근에 자리잡고 있다.
경주 나정은 지금은 정비작업이 진행중이라서 그런지 소나무숲에 공터처럼 남아 있고, 이곳에 있던 유허비를 비롯하여 석재들은 한쪽편에 모아서 전시해 놓고 있다. 중앙에 팔각형이 건물이 있었던 건물터와 옛 우물자리가 있다.
나정 뒷편 소나무숲 아래에 부속건물이 있었던 자리가 남아 있다.
나정 부속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자리
배수로와 담장이 있었던 자리
나정 자리에 있었던 유허비와 석조유물들
경주 나정 전경
경주 나정 발굴 모습
경주 나정, 사적 245호, 경주시 탑동
이 우물은 오릉의 동남쪽 소나무 숲이 무성한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이 우물터에서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다. 기원전 69년 어느날 고허촌장 소벌공이 우물가에 흰말이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를 이상히 여겨 그 자리에 가 보았더니, 말은 간 곳이 없고 그 자리에 큰 알이 있었다. 그 알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13세 되던 해(기원전 57년)에 6부 촌장들이 그를 임금으로 뽑았으며 나라 이름을 서라벌이라 하였다. 이곳에는 지금도 우물이 남아 있으며, 조선 순조 3년(1803)에 시조 왕의 내력을 기록한 유허비가 있다. <출처:경주시청>
박혁거세왕과 후대 박씨로 왕위에 오른 왕들이 무덤이 있는 경주 오릉
경주오릉에 있는 박혁거세왕의 부인인 알영부인 탄성설화가 있는 알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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