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노적봉 아래에 있던 중흥사는 북한산성을 지키던 승군들이 머물던 사찰 중 가장 큰 사찰이었다. 중흥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려말 공민왕의 왕사였던 원증국사가 머물때 중수하면서 사찰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원래는 그리 크지 않았던 사찰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도성의 방어를 위해 숙종이 북한산성을 쌓으면서 산성을 지키고 수리하는 역할을 맡았던 승군들이 머물 수 있도록 크게 중수하였다고 한다. 사찰이 1915년 대홍수로 무너지기전까지 136칸에 이르는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중흥사에는 북한산성을 지키던 승군들이 머물던 11개의 사찰을 지휘하던 승대장이 머물던 승영으로 승대장은 전국 승병을 지휘하는 팔도도총섭을 겸임하였다고 한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이래로 호국불교로서 사찰은 왕실이나 지배층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자체적으로도 전란의 혼란기에 대비하고 사회적으로 영향을 갖기 위해서 무력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무술로 유명한 중국 소림사나 교토의 정치상황에 깊숙히 개입하면서 큰 영향을 미치다가 전국시대 오다노부나가에게 큰 화를 입은 엔라쿠지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 승군은 이런 역사적.사회적 배경 아래 고려말 막강한 재력과 인력을 보유했던 사찰세력의 힘을 없애기 위해 조선초에 승려들을 군사조직에 편입시켜 성을 쌓거나 배를 만드는 노역에 동원하면서 많은 승려들을 환속시켰다. 승군은 임진왜란 당시 국가에서 요청에 적극 전국 사찰들이 적극 참여하여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움으로써 그 역할을 인정받아 숭유억불정책으로 쇠락해가던 불교가 다시 중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지금도 큰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전국의 유명 사찰들은 임진왜란 이후 국가의 지원을 받아 불전들을 크게 중수하였으며, 문화재로 지정된 사찰 불전 중 상당수는 이 시기에 중건된 것들이다.
북한산 중흥사지
중흥사는 북한산 구암봉 아래에 있던 사찰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지만, 고려말기에 고승 보우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이 사찰은 본래 30여 칸 정도의 소규모 사찰이었다. 그 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숙종39년(1713) 도성 방어를 위해 북한산성을 축성하면서 136칸의 큰 사찰로 증축되었다. 북한산성 내에는 11개 사찰에 승군이 주둔했는데, 중흥사는 성내의 사찰은 물론 승군의 총 지휘자인 승대장이 머물던 북한산성의 승영이었다. 당시 대웅전에는 삼존불상이 봉안되어 있었고, 만세루, 산신당을 비롯한 많은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1915년에 발생한 홍수로 인해 파괴된 후 중건되지 못했지만, 남아 있는 주춧돌과 축대를 통해 웅장했던 중흥사의 면모를 살필 수 있다. <출처:고양시청>
북한산성내 중심지역이라 할 수 있는 행궁 아래쪽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중흥사 절터. 1915년 대홍수로 무너진 후 절터만 남아 있다가 최근에 불전들이 중수되고 있다.
북한산 계곡 중심에 해당하는 중흥사 절터와 태고사가 있는 계곡. 북한산성 대서문이 있는 서쪽편 계곡 입구에서 출발하여 가장 평탄하게 북한산을 오르는 계곡길을 따라 3 km 쯤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절터 입구 약수터
북한산 중흥사 절터 입구.
중흥사지 절터 입구 공터. 건물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많은 등산객들이 쉬고 있는 휴식장소이다.
중흥사를 오르는 계단과 석축
중흥사 절터 아래 건물터. 아마도 사찰 강당이자 출입문인 만세루 앞 공터였던 것으로 보인다.
중흥사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앞쪽에는 강당.누각인 만세루와 나한전이 있는데 지금은 축대만 남아 있다.
이곳이 절터임을 말해주는 축대
중흥사 절터 대웅전이 있던 자리에 중건 중인 불전.
중흥사 절터는 아직 사찰로서 모습를 갖추지는 못하고 있으며, 절터 한쪽편에 승려들이 기거하는 요사채건물이 있다.
만세루가 있던 자리에서 내려다 본 북한산 계곡
중흥사 절터에서 발굴된 석재들
활짝 핀 산수유
중흥사 맞은편 태고사를 오르는 언덕길에서 보이는 중흥사 절터
중흥사 앞을 흐른 계곡과 다리
중흥사 앞 북한산 등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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