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흥사지는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성거산(해발579m) 서북쪽 계곡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절터이다. 천흥계곡에 둑을 쌓고 저수지를 조성하면서 절터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천흥리 마을 입구에 남아 있는 천흥사지 당간지주(보물99호)와 저수지 둑 아래에 위치한 오층석탑(보물354호)이 이곳에 절터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천흥사 창건과 내력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중인 천흥사지 동종(국보280호)에 고려 현종 원년(1010)에 주조한 천흥사 종이라는 글이 남아 있다. 기록에는 없지만 당간지주나 오층석탑의 형태 등으로 볼 때 고려가 건국되었던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지역에 세웠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찰규모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사찰입구에 세웠던 당간지주와 주불전 경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오층석탑의 위치가 상당히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볼 때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흥사명 범종 또한 상원사동종, 성덕대왕 신종 다음으로 큰 종으로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범종이다.
천안시 성거산 북서쪽 천흥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천흥사 절터. 고려가 개국하던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천흥사 절터에는 고려시대 오층석탑과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석탑 부근에 주불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사찰입구에 해당하는 당간지주가 이곳에서 200m 떨어진 천흥리 마을에 남아 있어 사찰규모가 상당히 컸음을 알 수 있다.
사찰 전각들이 들어서 있던 건물터들은 대부분 과수원을 비롯한 농경지로 사용되고 있다.
천흥사지 오층석탑(보물354호), 절터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석탑이다. 2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고려초 석탑의 규모가 다시 커지던 시기의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는 석탑이다.
천안 천흥사지 당간지주, 보물99호,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천4길
고려 태조 4년(921)에 창건되었던 천흥사의 당간지주로 현재 천안시 천흥리 마을의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절에서는 의식이 있을 때 절의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동.서로 서 있는 두 지주는 60cm의 간격을 두고 있으며, 2단의 기단 위에 세워졌다. 기단은 흩어져 있던 것을 복원하였는데 기단 주위에 안상을 새겨넣어 당간지주의 장식화된 측면을 보이고 있다. 동.서 지주 사이로 깃대를 직접 받치던 받침은 남아 있지 않다. 안쪽면에 조각이 없으며 상단 꼭대기끝 한곳에만 깃대를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난 구멍이 있다. 지주의 바깥 면을 위에서 아래까지 중앙에 1줄의 선을 새겼다. 지주 각 부의 양식에서 통일신라시대의 형식을 지니고 있으나 퇴화된 기법으로 만들어져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특히 천흥사터에서 출토된 천흥사 동종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고려 현종 원년(1010)으로 되어 있어 이 당간지주도 절을 창건하면서 같이 세운 것으로 보인다. <출처:천안시청>
사찰 입구임을 말해주는 당간지주가 천흥리 마을에 남아 있다.
천흥사지 당간지주(보물99호). 2층이 기단위에 2개의 돌기둥이 세워져 있다. 조각수법 등에서 통일신라시대 형식을 지니고 있으나, 퇴화된 기법으로 만들어져 천흥사가 창건되었던 고려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단부에는 안상을 새겨 장식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천흥사지 당간지주
당간지주 뒷편에 건물터로 보이는 공터가 있다.
천흥사 절터 앞을 흐르는 천흥천. 사찰전각들은 하천 남쪽편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다리를 건너 사찰로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천흥사 절터 윗쪽에 둑을 쌓아 저수지를 조성하면서 옛모습과는 많이 다른 것으로 생각된다. 저수지 뒷편으로 성거산이 보인다.
천안 성거산 천흥사종(국보280호). 성덕대왕신종, 상원사 동종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종으로 그 크기나 제작 수법에 있어서 수준이 높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꿈틀거리는 용모양이 새겨진 종의 고리인 용뉴는 살아 움직이는 듯하고, 종의 몸통에는 성덕대왕 신종과 마찬가지로 비천상이 새겨져 있다. 유곽의 돌출된 연꽃 모양의 종유 또한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천흥사명 동종은 천안 성거산 천흥사에 있던 범종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남한산성에서 시간을 알리는 데 사용된 종이다. 서울의 보신각 종과 같은 역할을 했다.
절터 뒷편에는 최근에 창건한 것으로 보이는 작은 사찰인 천흥사가 있다.
천흥사 주불전인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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