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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289

[중앙박물관 중국실] 고대 중국의 도용, 불교 생활

도용은 중국에서 죽은이와 함께 묻는 인물.동물의 상을 말하며 명기의 일종으로 흙으로 빚어서 만든 것을 말한다. 이는 현실의 사람이나 가축 등을 본 떠 만들어 죽은이를 저승으로 호종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고대 사회에서 순장의 풍습이 없어지고, 그 자리를 차지한 도용은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 토기의 형태로 많이 전해져 내려오며 예술적으로 우수한 작품들을 많이 남겨놓고 있다.중국 도용 중 대표적인 것이 진시황의 능에서 발견된 수많은 병사들이 대표적인 도용이라 할 수 있다. 전한시대에는 진시황의 것과 비슷한 형태의 것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며, 북조에서는 조형미가 풍부한 도용들이, 당대에서는 귀족생활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당삼채로 만들어진 도용들이 있다. 고대 중국인의 생활 - 명기와 도용 중국은 전국시대 경제와..

중앙박물관 2012.05.11

[중앙박물관 중국실] 선의 예술, 중국회화

중국에서 회화가 언제부터 그려졌는지는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전국시대 고분에 출토된 비단그림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중국 후한시대에 신화전설을 주제로한 그림들이 고분의 석실에서 그려지면서 중국 미술의 원형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후 불교가 성행하면서 석굴사원의 벽화를 그리는 전통이 수.당시대까지 이어진다. 처음에는 인물화를 그리기 시작하였으며 당대후기부터 자연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실제 중국회화는 송대초기에 아름다운 경치를 묘사하는 수준높은 산수화를 그리기 시작했으며, 북송후기에는 화면을 단순화하여 느낌을 묘사하는 중국회화의 전통이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명.청대에는 송대의 회화전통을 계승한 화풍이 황실과 민간에 주류를 형성하였으며, 원대의 문인화를 계승한 화풍 또한 성행하였다고 한다...

중앙박물관 2012.05.10

[중앙박물관 중국실] 흙의 신비, 중국 도자기

'China'는 중국의 영문국가명이자, 도자기를 의미하는 단어로 이는 비단과 함께 도자기가 중국을 대표하는 상품이자 문화임을 말해주공 있다. 도자기는 점토을 빚어 모양을 만들고 유약을 발라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낸 것을 말하는데, 중국에서는 고대국가인 상나라때 도자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회유도가 제작되었다고 한다. 한나라말에는 원시적인 도자기의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녹유도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당나라때에는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당삼채가 제작되었다. 송나라때부터는 중국은 전국 각지의 가마들에서 특색있는 도자기들이 생산되면서 국제교역에 있어서 중요한 거래품목이 되었으며, 원대에는 대량생산을 통해 선박을 이용한 교역이 활성화되면서 '도자의 길'이라는 해상실크로드가 생겨났다. 이는 신안앞바..

중앙박물관 2012.05.09

[중앙박물관 신안해저문화재실] 용천요와 경덕진요를 비롯한 다양한 중국 도자시기 생산지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들

고려시대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신안선에는 2만8천여점에 이르는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상당수가 중국에서 만들어진 청자이다. 신안선에 출토된 목간들을 비롯한 자료들과 생활용품 등을 분석해 볼 때 이 배에 실린 화물은 일본 사원의 승려들의 주축이 되고 상인들이 출자하여 중국에서 도자기류를 비롯한 다양한 물품을 싣고 한반도 연안을 따라 항해하여 일본 교토지방으로 운행하던 선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안선에서는 청자빛깔의 대명사인 중국 저장성 룽취안에 위치한 용천요에서 생산된 청자들을 비롯하여, 고려청자, 회색빛의 청백자가 특징인 푸젠성 민칭에 위치한 민청요, 흑색항아리의 푸젠성 홍탕촌에 위치한 홍당요, 광동성 스완에 위치한 석만요, 장시성 간저우에 위치한 감주요, 흑유잔으로 유명한 푸젠성 지엔양에 위치..

중앙박물관 2012.05.08

[중앙박물관 신안해저문화재실] 신안선 발굴로 드러낸 '해상실크로드'를 통한 교역품인 도자기

1976년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는 2만8천여점에 이르는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주 교역품이었던 청자를 비롯하여, 각종 생활용품, 무역거래와 화물운송에 필요한 물품표인 목간 등 당시 해상무역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신안선이라고도 불리는 이 선박은 일본 불교 사원과 상인들이 출자하여 중국각지에서 구입한 물품들을 일본으로 운송하다가 침몰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 실린 화물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은 사치품에 해당되는 청자들로 청자의 대명사로 불리는 용천요를 비롯하여 경덕진요, 길주요 등 중국 각지의 주요 청자생산지에서 수집한 청자들이 실려 있었으며, 그 중 고려에서 만든 청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신안선이라 불리는 배가 침몰한 1232년 중국은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를 중심으로 육상과 해상을..

중앙박물관 2012.05.07

[중앙박물관 신안해저문화재실] 신안선 물품의 주인과 선원들의 생활

신안해저유물은 전남 신안군 도독도 앞바다에서 1976년에 발굴된 유물들이다. 이곳 어부의 그물에서 중국 용천요에서 만든 청자가 발견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으며, 1984년까지 8여년간에 걸처쳐 발굴이 진행되었다. 이곳에서는 2만8천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청자가 가장 많이 발견되었다. 유물들은 이곳에서 침몰한 거대한 목선에 실려 있었는데, 주요 수입품이었던 청자 이외에도 선박의 주인을 알려주는 화물 물품표인 목간을 비롯하여, 선원들이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주방기, 놀이기구, 칼 등과 이물건의 주인이 사찰과 관련되었음을 보여주는 불교용품과 함께 14세기까지 중국에서 사용되었던 대부분의 동전들이 포함되는 28톤에 이르는 동전도 함께 발견되었다. 신안해저유물에서 발견된 물품표인 목간에 적혀있는 일본 ..

중앙박물관 2012.05.03

[중앙박물관 특별전] 타임갭슐을 열다 - 색다른 고대 탐험, 창녕 말흘리 절터에서 출토된 유물

중앙박물관에서 2012년에 개최 중인 "타임캡슐을 열다 - 색다른 고대탐험" 특별전은 옛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들을 보여주는 유물들을 고고학적인 방법론 측면에서 분류하여 전시하고 있다. 옛사람들이 살았던 특정한 시기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유물의 특징을 보여주는 타임캡슐의 흔적들은 선사시대 이후 사람들이 촌락을 이루면서 살기 시작하면서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당시 사람들이 버렸던 쓰레기 등이 모여 있는 형태인 조개무지(패총)을 비롯하여, 많은 부장품들이 묻힌 고분 등이 있다. 이번 전시에는 이런 타임캡슐을 성격을 갖는 신라의 수도 경주의 궁궐인 월성 부근 4개의 우물제사 유적과 창녕 말흘리 절터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창흥 말흘리 절터에서는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해당하는 건물터와..

중앙박물관 2012.05.02

[중앙박물관 특별전] 타임갭슐을 열다 - 색다른 고대 탐험, 경주박물관 부지 우물2에서 발견된 유물

우물은 청동기시대부터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우물벽은 나무, 돌, 토기 등 다양한 자재들로 만들어졌지만 현재 확인되는 우물은 대부분 내구성이 뛰어난 돌을 쌓아서 만든 우물들이다. 우물에서는 고대 이래로 풍요를 기원하는 제례의식이 행해졌던 것으로 보이며, 이와 관련된 많은 유물들이 전국 각지의 우물에서 출토되고있다. 경주에서는 신라의 궁궐인 월성 부근에 우물제사가 크게 행해졌던 4곳의 우물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 2개는 월성 동남쪽 경주박물관 부지에서, 무열왕의 아들 김인문과 관련된 인용사지와 큰 연못인 안압지가 있었던 동궁터에서 발견되었다. 우물에는 많은 항아리를 비롯한 많은 토기류와 제물로 바쳐졌던 것으로 보이는 짐승의 뼈, 복숭아을 비롯한 식물의 씨, 각종 생활용구 등이 출토되고 있다..

중앙박물관 2012.04.30

[중앙박물관 특별전] 타임갭슐을 열다 - 색다른 고대 탐험, 경주박물관 부지의 신라 우물제사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들

중앙박물관에서는 "타입캡슐을 열다 - 색다른 고대탐험"이라는 제목으로 특별전을 2012년 봄에 열고 있다. 한반도를 대표한 고대 유적지인 경주의 우물터에서 발견된 다양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주요 유물만을 전시하는 일반 전시회와는 달리 고고학적 조사방법론 등을 소개하기 위해서 많은 유물들이 묻혀 있었던 삼국시대 우물제사와 관련이 있었던 경주의 국립박물관 부지에서 발견된 2개의 우물과, 인용사지 우물, 신라 왕경지구(안압지) 우물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우물은 고대 이래로 인간이 물을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인공시설이다. 옛 사람들은 이런 우물을 신성시하여 바닥에 병이나 항아리를 넣어두기도 하며, 토기와 기와, 동물의 뼈, 씨앗등도 넣어두기도 한다. 경주박물관 부지에서 발견된 우물에서는 ..

중앙박물관 2012.04.29

[중앙박물관 고려실] 저무는 고려 왕조

고려는 공민왕 사후에 극단적인 반동정치가 있었다. 반동세력은 신흥강국인 명을 적대시하고 원을 가까이하는 시대착오적인 정치를 하였으며,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 등을 극복하는데 큰 기여를 한 이성계, 최영 등의 세력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형국이 되었고, 새로이 등장한 신진사대부들은 이들고 힘을 합쳐, 토지제도 개혁 등을 통해 권문세가의 힘을 크게 약화시키고 조선 건국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저무는 왕조 공민왕이 피살되자 극단적인 반동 정치가 펼쳐졌다. 10살의 우왕을 즉위시킨 세력은 신흥강국인 명나라를 적대하고 명나라에 밀려난 북원과 교섭하는 시대착오적 외교를 펴는 한편, 폭력적 토지 겸병을 자행하며 정몽주 등 비판적인 신진들을 유배하는 전횡을 저지렀다. 이러한 가운데 왜구와 홍건적의 토벌로 민중의 여망을 한몸..

중앙박물관 2012.02.21

[중앙박물관 고려실] 개혁군주 공민왕

고려말 공민왕은 대표적인 개혁 군주로 원나라가 쇠퇴해자 친원파를 숙청하는 한편 영흥 일대를 회복하는 등 반원 정책을 추진하고 여러 제도적인 면을 개혁하였다. 물론 개혁은 실패로 돌아가고 고려는 멸망하게 되었지만, 그의 정신은 후대 사람들이 높이 사서, 그의 신당이 조선 종묘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이는 조선의 건국이 후손이 없었던 공민왕을 승계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원나라 노국공주와의 깊은 부부애로 인해서 그 초상화는 노국공주와 함께 그려져 있다. 또한 공민왕의 지원을 받은 목은 이색을 중심으로 한 성균관 학자들의 성리학에 대한 연구는 후에 조선 건국의 주체세력인 신진사대부들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개혁군주 공민왕 원나라가 정치 불안 등으로 쇠퇴해 가자 고려 공민..

중앙박물관 2012.02.20

[중앙박물관 고려실] 고려시대 성리학의 도입

고려시대 원의 간섭기을 대표하는 역사적인 유물로는 금속활자와 단군신화를 기록한 삼국 유사를 들 수 있고, 고려말 이후 우리나라의 정신 세계를 이끌어 온 성리학 또한 이 시기에 도입되었다. 성리학은 원나라에서 왕을 모시면서 오랜 기간 머물렀던 관료이자 학자인 안향.백이정 등이 관련 서적을 국내에 소개하였고, 충선왕과 함께 원나라에 간 이제현이 중국의 성리학자들과 학문적이 교류를 하면서 많은 학문적인 깊이를 더했다고 한다. 당시 초강대국 원나라를 중심으로 많은 교류가 있었기때문에 원나라 간섭하의 고려정권이었지만, 큰 영향을 미친 많은 학문적.기술적인 발전을 이루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성리학의 도입 원나라에서 왕(충렬왕.충선왕)을 모셨던 안향.백이정 등의 관료들은 주자성리학 관련 서적들을 가지고 귀국함으로써 ..

중앙박물관 2012.02.19

[중앙박물관 고려실] 고려 시대, 원나라 간섭기

몽골의 침입으로 무신정권이 붕괴된 이후 고려는 80여년간의 원나라 간섭기를 보낸다. 몽골과의 투쟁, 일본 원정 등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지만, 팔만대장경을 제외하고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유물.유적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그린 당시 고려.원 연합군의 전투그림, 원나라 도자기 등이 당시의 모습을 전해주는 유물로 볼 수있다. 원간섭 하의 고려 무신정권이 붕괴된 후 개경으로 천도한 고려는 이후 80여년간 원나라의 간섭을 받았다. 고려국왕은 어린 세자 시절을 원나라의 대도에서 보내고 원나라 공주와 혼인해야 했다. 원나라의 부마국이 된 고려는 국왕의 호칭을 비롯한 각종 관제가 격하되었고, 왕위 교체에 대해서도 원나라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그러나 원 간섭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일반 백성들이었..

중앙박물관 2012.02.18

[중앙박물관 고려실] 고려시대 도교, 풍수지리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크게 융성하였고, 국가의 행정체계는 유교를 중심으로 운영된 국가였다. 도교는 중국에서 크게 번성하여 지금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식인들의 수신 측면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국가적인 의례 측면을 제외하고는 개인 생활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힘들다. 도교와 함께 풍수지리설도 비슷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도교관련 유적,유물은 중국에 비해서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풍수지리설 고려시대에는 풍수지리설이 크게 유행하였다. 풍수지리설이란 땅속에 흐르는 기운이 사람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준다는 이론으로서, 산천의 형세를 잘 살펴 도읍이나 사찰, 주거, 분묘 등의 위치를 정할 때 많이 활용되었다. 백제 온조왕이 한산에 올라 지세를 살피고 도읍을 정했다고 한 ..

중앙박물관 2012.02.16

[중앙박물관 고려실] 고려시대 무덤 출토 유물과 고려인의 내세관, 서천 추동리 무덤

서천 추동리지역은 금강하구의 충적평야지대로 농업생산력이 풍부했던 고장이다. 최근 이지역을 지나는 고속도로 건설과정에서 고려시대 무덤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는데, 약 345기에 이르는 돌덧널무덤과 움무덤이 발굴되었다. 이 무덤들에서는 고려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그들의 내세관을 보여주는 생활용품을 비롯한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로는 젓가락, 숟가락, 동전, 자기그릇 등 생활용품이 주를 이루는데 삼국시대 고분의 껴묻거리와는 달리 실제 무덤의 주인들이 평소에 사용하던 것을 함께 묻은 것으로 보인다. 내세관 고려인들은 죽은 이를 축복할 때 특정한 종교나 신앙에 얽매이지 않았다. 불교 승려를 장례지내면서 도교의 신선들과 하늘 신, 땅의 신 등의 권위를 빈다든가, 원래 도교적 존재이던 천녀를 토..

중앙박물관 2012.02.16

[중앙박물관 고려실] 고려의 불교 문화, 팔만대장경

우리나라에서 고려를 대표하는 유물을 꼽으라고면 누구나 주저없이 대몽항쟁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팔만대장경과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경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같이 불교가 흥성했던 고려에서 불경과 인쇄문화는 밀접합 관계가 있었으며, 최초의 대장경 인쇄본을 비롯하여 많은 불경을 유물로 남겨 놓고 있다. 그 중 팔만대장경은 거란을 물리쳤던 경험을 바탕을 대몽항쟁기간 16년동안 다양한 계층의 참여로 만들어진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팔만대장경과 대몽항쟁 13세기에 들어 중국 대륙의 새로운 강자가 된 몽골이 무리하게 고려를 압박해오자 최씨 무신정권은 전쟁을 불사하며 강화도로 천도하였다. 백성들은 강화도 정권을 떠 받쳐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치열하게 몽골군에 맞서 싸웠다. 전쟁과정에서 약 2세기 ..

중앙박물관 2012.02.14

[중앙박물관 고려실] 고려의 불상, 불사와 발원

고려는 불교가 크게 흥성한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통일신라와는 달리 불상, 석탑 등은 화려한 문화재를 남겨 놓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신앙의 중심이 탑이나 불상 같은 상징물에서 불경 같은 것으로 변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고려시대에는 지방의 호족들이나 향리들을 중심으로 거대한 철불상을 제작하거나 사찰을 건립하는 등 많은 불사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경주 중심의 통일신라와는 달리 지방적인 색채가 강한 투박하면서도 지역색이 강한 토속적인 불상들이 많이 제작되면서 고려적인 특징을 갖는 많은 불교 유물들을 남겨 놓고 있다. 고려의 불상 국가와 왕실의 후원 속에서 성장한 고려시대의 불교는 민간에서도 현세적인 기복 신앙으로서 크게 융성하였다. 불상은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불교 예술품으로써 불화와 ..

중앙박물관 2012.02.13

[중앙박물관 고려실] 고려시대 무신정권, 불교 결사 운동

고려시대 중기 이후에는 무신정변으로 인해서 내부적으로 상당기간의 혼란기를 보내다 최충헌이 혼란을 종식시키고, 독재체제를 확립하였다. 무신 정권기의 혼란을 종식한 최씨정권은 이전에 비해서 유학자들을 발굴하여 행정능력을 갖춘 문신들도 과거를 통해서 등용되기도 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는 불교 개혁 운동인 불교 결사운동이 활발히 진행되어 지눌을 중심으로 수선결사 운동과 무신집권층의 후원하에 백련결사 운동이 일어났으며 선종의 성격이 수선결사 운동은 오늘날 불교의 주도세력인 조계종의 성립으로 나아갔다. 무신정권 12세기 들어 고려사회는 귀족적인 문화가 무르익는 한편의로 농민의 유망과 이자겸의 난,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등이 이어지며 그 모순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문벌을 견제하려던 의종이 측근에 치우쳐..

중앙박물관 2012.02.12

[중앙박물관 고려실] 무덤에 담긴 고려 왕실의 문화

조선왕조의 오백년의 왕릉과 신라천년의 왕릉은 대체로 체계적으로 관리되어 있는 반면에 고려 왕조의 왕릉은 주로 북한지역에 개경부근에 위치하고 있어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형편이다. 현재 남한에는 주로 개경과 가까운 파주지역과 고려의 대몽항쟁기 수도였던 강화에 일부 왕릉들이 남아 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강화 지역의 왕릉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일부 실시되었는데 수차례의 도굴에도 불구하고 당시 고려 왕실의 문화와 생활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어 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고려 왕릉은 통일신라 고분 방식과 유사하게 앞트기식 돌방무덤을 하고 있으며, 통일신라 왕릉에 비해서 강화지역의 왕릉은 봉분은 약간 작게 조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덤에 담긴 고려 왕실의 문화 몽골과 항쟁하던 시기에 고려는 왕도를..

중앙박물관 2012.02.11

[중앙박물관 고려실] 고려시대 거란, 여진과의 관계

거란은 고려와 비슷한 시기인 10세기 초에 일어난 북방민족으로 요나라를 건국하였다. 거란은 우리나라 남북국시대의 발해를 멸망시키고, 그 세력범위을 중심으로 국가를 형성하였으며, 송나라 및 고려와 상당 기간의 투쟁기와 평화시기를 거친 후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에 멸망하였다. 금나라는 거란을 멸망시켰으며, 중국 대륙에 진출하여 북송을 멸망시킨후 상당 기간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다 몽골에 멸망하였다. 거란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로 국보로 지정된 초조대장경 인쇄본이 있으며, 거란에서 만든 청동거울이 많아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나라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유물로 함경도 지역에 금나라인들이 세운 비석이 있으며, 다양한 도자기들 또한 남아 있다. 거란과의 관계 10세기 초 내몽골의 시라무렌 강 유역에서 일..

중앙박물관 201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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