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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289

[중앙박물관 통일신라실] 문자와 지방 생활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경주를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인 국가를 세우기는 했지만, 조선시대처럼 지방관을 파견하여 행정적으로 완전히 지방을 장악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제도적으로는 신문왕때 전국을 9주로 나누고 그 아래 군현을 두는 체제를 완성하였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 백제의 수도인 한성, 웅진, 사비가 국제적인 도시로 발전했지만 통일 이후에는 모든 경제력이 경주로 집중되어서 지방은 그 면모를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문헌적으로나 발굴된 유물에서 통일신라시대에는 지방도시들이 큰 번성을 누리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며, 신라의 귀족들이 이주한 소경을 비롯한 일부 도시에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당시 지방의 모습을 보여 주는 유물들은 주로 군사적인 성격을 지닌 산성에서 출토..

중앙박물관 2011.06.08

[중앙박물관 통일신라실] 신라 왕경인의 생활

한반도 동남부 작은 도시에서 출발한 경주는 신라 천년 왕국의 심장이 되는 도시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국가의 수도로 존재했던 도시이다. 세계적으로도 천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수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던 도시는 그리 많지는 않다. 신라의 흔적은 삼국시대의 고분과 불교를 받아들인 이후에 세워진 수 많은 사찰 등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고분의 나라', '황금의 나라', '불교의 나라' 등 신라를 수식하는 많은 말들에서 신라는 경주를 지칭하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한 왕국의 수도였던 경주는 한반도 문화유산의 보고라고 할 수 있으며, 그 곳에서는 누구나 신라인의 흔적을 몸으로 느끼면서 화려했던 옛 도시의 발자취를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경주는 삼국시대에 조성된 수많은 고분에서 출토된 화려한 유물들을 통해..

중앙박물관 2011.06.06

[중앙박물관 통일신라실] 불교조각과 십이지신상

삼국시대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종교였던 불교가 전래된 이래로 삼국은 다양한 불교 관련 예술을 꽃피웠다. 통일신라는 삼국시대의 전통에 이어서 불교 예술의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그 중 불교 조각은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세련되고 뛰어난 조각수법과 예술적인 완성도를 자랑했던 시대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불국사 석굴암으로 대표되는 통일신라의 불교조각은 서역의 간다라 미술의 사실적인 묘사가 그 절정을 이루었던 시기로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석탑을 중심으로 화려하고 뛰어난 유물들을 남겨 놓아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로서 자부심을 갖게 해주고 있다.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조각가로는 사천왕사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서역출신 사람으로 추정되기도 하는 양지를 들 수 있다. 신라의 조각은 석굴암 불상처럼 전..

중앙박물관 2011.06.01

[중앙박물관 신라실] 불교와 사찰건축

신라는 당시 동아시아의 보편적 사상인 불교를 받아들여 국가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불교가 받아들여진 이후 신라 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는데, 대표적인 현상이 크고 화려한 고분을 조성하는 대신에 전국적으로 불교 사찰을 건축하게 되었다.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는 경주의 신성한 천경림을 베어낸 자리에 세웠는데, 귀족들의 반대로 이차돈의 순교 이후 진흥왕 때에 완성되었으며, 신라 최대의 사찰인 황룡사는 선덕여왕 때 궁궐이 들어설 자리에 세워졌다고 한다. 국립 중앙박물관에는 불교 건축과 관련된 문화재를 많이 소장하고 있지는 않으며, 신라 사찰 건축과 관련된 유물들은 경주박물관에 많이 전시되어 있다. 중앙박물관에서는 신라 불교 건축과 관련하여 황룡사 등에서 출토된 수막새와 암막새 몇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불교 ..

중앙박물관 2011.05.29

[중앙박물관 신라실] 신라문화의 확산

삼국시대를 이야기 할 때 지방에 대해서는 기록으로만 남아 있고, 그 유물들은 그리 많이 남아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신라에서도 지방통치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보은의 삼년산성, 여주의 파사산성, 파주의 칠중성 등 남한강 유역을 비롯한 주요 교통로에 쌓은 견고한 산성이나 진흥왕 순수비나 각종 비석에서 지방통치에 대한 여러 흔적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산성 이외에는 지방통치와 관련된 유물로는 경주를 비롯하여 각지에서 산성을 쌓을 때 지역별로 축성책임을 할당하면서 이를 기록으로 남긴 남산신성비에서도 지방의 이름들이 등장하며, 함안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목간에서도 각 지역의 조세납부와 관련된 기록들을 볼 수 있다. 중앙박물관에서는 지방통치와 관련하여 많지는 않지만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중앙박물관 2011.05.24

[중앙박물관 신라실] 문자로 보는 신라, 북한산 진흥왕순수비 (국보 3호)

신라는 6세기에 국가체제를 갖추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고구려와의 경쟁에서 조금씩 이기면서 진흥왕때는 영토가 한강유역과 함경도 동해안 일대를 장악하게 되었다. 이 기간 신라는 율령을 제정하고 불교를 공인하는 등 국가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기간에 국가로서의 모습은 신라가 남겨놓은 여러 흔적에서 볼 수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문자를 새겨놓은 비석들이다. 특히, 진흥왕 순수비와 단양 적성비는 진흥왕이 화장된 영토를 순수하면서 기념으로 새겨놓은 비석들로 당시의 관직체제, 인물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신라의 영역을 보여주는 유물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진흥왕순수비 이외에도 신라는 국가정책 등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글자를 새겨놓은 비석을 많이 활용했는데, 그 내용은 법의 시행, 국왕..

중앙박물관 2011.05.22

[중앙박물관 신라실] 신라의 토기, 신라 유물 걸작 '말 탄 사람 토기(기마인물형토기)'

신라의 토기는 항아리, 굽다리접시, 그릇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그 중 인상적인 부분은 동물.배.수레 등을 본 떠 만든 상형토기라 할 수 있다. 토기는 실생활에 사용되었던 것도 많아보이지만 지금까지 전해지는 토기 중 상당수는 무덤의 부장품으로 묻혀진 것이 많다. 신라의 토기 겉면에는 무늬를 새기거나 토우 등을 붙여서 꾸미기도 하는데 이들 토우들은 신라시대 사람들의 생활모습이나 동물이 형태를 간략하면서도 특징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어서 현대적인 관점에서 그 묘사가 뛰어난 점이 많아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토기들 중 그 작품성이 상당히 뛰어난 국보 91호로 지정된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말탄 사람 토기(기마인물형)'가 있다. 이 토기는 간략하면서 중요한 특징들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중앙박물관 2011.05.19

[중앙박물관 신라실] 신라의 금속그릇

신라의 고분에서 출토된 신라의 금속그릇이다. 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금속 그릇들은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것들을 위주로 전시되어 있으며, 대부분 실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을 모방하여 만든 부장품이나 청동제 제기인 것으로 보인다. 사발이나 합은 지금 사용하는 것들과 형태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는 않고, 신라나 가야에서 많이 사용한 굽다리접시가 특징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 청동으로 만든 제기처럼 보이는 초두를 비롯한 그릇들은 중국과 교류가 있었던 고조선 이래로 다양한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는데, 초기의 청동그릇들은 중국에서 수입된 것으로 추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라의 청동그릇은 아마도 신라에서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청동 그릇에는 다양한 내용의 글자를 새겨넣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금속그릇 신..

중앙박물관 2011.05.16

[중앙박물관 신라실] 신라와 실크로드, 서역과의 교류

서기 5~6세기 신라 고분으로 알려진 황남대총을 비롯하여 여러 고분에서는 서역과의 교류관계을 보여주는 여러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그 중 유리그릇이나 유리잔 등은 서아시아지역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유물들은 비단길 또는 바닷길로 신라에 전해졌다고 한다. 당시의 바닷길로는 인도와 아라비아 상인들과의 교역을 통한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에는 여러차례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삼국시대의 바닷길 교류는 크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들 물품들은 신라가 서역과 직접 교류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불교의 전파와 함께 당시 실크로드를 통한 교류가 활발했던 중국을 통해 들어왔다는 견해도 있다. 고구려는 국방.외교상 서역과 직접 교류할 필요도 있었고, 교류의 흔적도 많이 남아 있어서 서역국가와 직접 교..

중앙박물관 2011.05.15

[중앙박물관 신라실] 신라의 꾸미개, 금귀걸이, 목걸이, 반지, 팔찌

신라는 '금의 나라'로 알려질 정도로 금과 은으로 수 많은 꾸미개들을 만들었다. 신라금관을 비롯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들 중 상당수는 신라에서 만든 금제 꾸미개들이며 특히 금관은 세계적으로 출토되는 사례가 많지 않다고 한다. 금관 외에도 신라의 꾸미개로는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이 많이 출토되고 있는데 주로 금, 은, 옥, 유리 등을 가공하여 만들고 있으며 출토된 유물의 양도 상당히 풍부하면서 그 세공기법 또한 상당히 뛰어나다. 주로 삼국시대에 중기에 만들어진 무덤부장품들이 현재까지 남아 있으며, 그 세공기술은 후대에서는 불상 등 불교관련 문화재들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꾸미개 신라의 꾸미개는 금관 및 허리띠를 비롯하여 관모, 관꾸미개,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반지, 신발 등이 있는데 재..

중앙박물관 2011.05.12

[중앙박물관 신라실] 신라의 금관, 황남대총 북분 금관 및 금제 허리띠(국보191,192호), 관꾸미개(보물630)와 관모

금의 나라로 알려졌던 신라의 고분에서는 금관총, 천마총, 황남대총 등 여러 고분에서 금관들이 출토되고 있다. 그 중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국보 191, 192호로 지정된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금관과 금제허리띠가 전시되어 있다. 이 금관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형태와 화려한 장식 등으로 미루어 왕관으로 추정하고 하고 있다. 신라의 금관에는 나무, 사슴뿔, 새 등의 요소가 담겨 있는데 나무는 왕을 상징하고, 사슴뿔은 시베리아지역 샤먼과 관련된 장식으로 보고 있다.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이 금관은 나무와 사슴뿔 모양의 세움장식에 푸른빛의 곱은 옥이 달려 있고, 전체적으로 금판으로 장식해서 상당히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금관이 실생활에 사용한 것인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전체..

중앙박물관 2011.05.10

[중앙박물관 가야실] 가야의 상형토기, 지역별 토기

한반도 동남부에 존재했던 가야연맹체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철을 기반으로 한.중.일 해상교역로의 이점을 적극 활용하여 상당하 수준의 경제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야가 남겨놓은 많은 고분들에서는 부장품으로 각종 유물들을 남겨 놓고 있는데, 철제무기류와 함께 가야를 상징하는 유물로 다양한 모양의 상형토기를 들 수 있다. 인물이나 기물 등을 본떠서 만든 토기인 상용토기는 가야와 신라지역에서만 주로 출토되는 유물로 수레.배.집 등의 토기에서는 당시 가야인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주며, 각종 동물모양의 토우에서는 그들의 사후관이나 정신세계를 추론해 볼 수 있게 해준다. 지금도 바퀴모양토기를 가야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각배라고도 하는 뿔모양의 잔에서는 중앙아시아와의 교류관계를..

중앙박물관 2011.05.08

[중앙박물관 가야실] 가야의 꾸미개

경상도 지역에서 분포하고 있는 많은 가야의 고분들에서는 상당히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이들 고분들에 대한 발굴작업은 일제강점기에 상당히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일본인들에 의해 상당히 많은 부장품들이 밀반출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상당히 많이 남아 있으며, 상당수의 유물들은 국립김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가야의 상형토기, 철제무기와 더불어 무덤의 부장품으로 많이 묻혀 있던 유물이 금.은.옥으로 만든 꾸미개이다. 가야의 꾸미개로는 많지는 않지만 금동관이 있고, 귀걸이.팔찌.목걸이 등도 많이 출토되고 있다. 가야의 관은 신라의 것과는 다르게 풀꽃모양의 세움장식을 하고 있으며, 왕이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귀족계층에서 사용한 것인지는 알려지고 있지는 않는 것으..

중앙박물관 2011.05.06

[중앙박물관 가야실] 가야의 철생산과 대외교류

고조선 시대 삼한 중 변한지역이었던 가야는 철생산이 많았던 지역이었으며, 일본.중국과 해상교통로의 주요한 위치에 있었기때문에 다른 지역과 무역거래가 상당히 많았던 지역이다. 이런 지리적인 잇점과 당시 철생산이 많았던 지역적인 특성으로 가야는 상당한 경제력을 축적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제력을 바탕으로 가야지역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서 상당히 크고 많은 고분들을 남겨놓고 있으며, 그 고분들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부장품들이 출토되고 있다. 특히, 중국.일본과의 해상교류의 거점이기도 한 금관가야 지역의 근거지인 김해 대성동 고분과 창원 다호리에서는 이른 시기부터 수준높은 청동기와 철기 문화를 이루고 있었으며, 대외 교류와 관련된 많은 유물들을 남겨놓고 있다. 가야 연맹체가 성립된 이후에는 지역에서 생..

중앙박물관 2011.05.02

[중앙박물관 가야실] 가야의 철제 무기

한반도 동남쪽 낙동강 중하류에 위치한 가야는 고대국가로 오랜기간동안 존재해왔으며, 연맹체국가로서 김해지역의 금관가야, 고령의 대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창녕의 비화가야 등 여러지역에 근거지를 두었고, 지배계층의 고분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기때문에 오늘날 상당히 많은 유물들을 남겨놓고 있다. 주로 고분의 부장품으로 묻어둔 유물들이 대부분인데, 그들의 사후세계관을 반영하는 많은 토기류와 철제무기, 장신구 등이 있다. 가야지역은 고조선시대 이래로 중국.한반도.일본과의 해상무역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지역에서 생산되는 철을 기반을 상당한 부를 축적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배계층의 권위를 나타내는 무덤의 부장품으로 철제무기류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상당한 수준의 금속가공기술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

중앙박물관 2011.04.30

[중앙박물관 백제실] 백제의 무늬벽돌(보물343호)과 기와, 산수문전을 비롯한 8종류 그림이 새겨진 벽돌

삼국시대 건축을 대표하는 유물이자 회화의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는 부여 외리 절터에서 출토된 여덟 종류의 무늬벽돌이다. 보물 343호로 지정된 이 네모모양의 벽돌은 크기가 일정하고, 네 귀의 측면에 홈이 파여 있어서 서로 연결하여 고정시킬 수 있다. 벽돌에 새겨진 무늬들은 회화성이매우 뛰어나 당시의 예술과 건축, 종교와 사상적인 측면까지 살펴 볼 수 있다. 산수문전.산수봉황문전,연대귀문전.반용문전.와운문전.연화문전의 8매로 이루어진 벽돌에 새겨진 그림은 사비기 백제인을 사로잡았던 도교적인 풍경이 잘 그려져 있으며,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도깨비 그림 또한 벽돌에 새겨져 있다. 무늬벽돌 부여 외리에서 출토된 여덟 종류의 무늬벽돌이다. 네모모양의 벽돌은 크기가 일정하고, 네 귀의 측면에 홈이 파여..

중앙박물관 2011.04.28

[중앙박물관 백제실] 백제의 문자, 관료의 성장과 꾸미개, 무기

백제는 중국 남조와의 교류를 통해 관료화가 진전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관모를 비롯하여 각종 꾸미개에서 관직체계를 표시하는 관료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백제의 꾸미개로 대표적인 것이 금.은제 관꾸미개와 허리띠 장식이 많이 출토되고 있으며 이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관복에 대한 기록을 확인해기도 한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 역사는 고려시대에 적은 내용이지만, 비석이나 목간 등에 기록된 문자로 그 내용을 보완하거나 확인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백제의 문자기록은 무령왕릉의 묘지석과 부소산성에서 발굴된 사택지적비를 비롯하여 다양한 유적지에서 발굴된 목간, 기와 등 건축자재에 그 흔적들이 남아 있다. 백제의 문자 문자는 인류가 축적해 온 지식과 정보를 후대에 전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금석문.목간.토기.기와 ..

중앙박물관 2011.04.25

[중앙박물관 백제실] 사비기, 충남 부여를 도읍으로 하던 시기의 유물

백제는 성왕때인 538년에 현 부여지역인 사비로 도읍을 옮겨 새로운 중흥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백마강이라 불리는 금강 남쪽해안 부소산성을 중심으로 도성을 쌓았으며, 현재 부소산성 입구에 해당되는 관북리에 왕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제의 옛 도읍이었던 부여에는 중앙의 정림사지와 도성 바깥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궁남지와 부소산성을 제외하고는 유적지라고 느낄만 곳은 실제로 많지는 않다. 하지만 도성 동쪽편 왕릉이 있었던 능산리를 비롯하여 도심과 외곽에 여러 절터들이 있으며, 이들 절터에서 상당히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사비기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인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의 높은 문화와 기술 수준을 잘 보여주는 유물로 백제는 물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유물이다. 웅진에서 사비로 무령..

중앙박물관 2011.04.24

[중앙박물관 백제실] 백제문화의 중흥, 무령왕릉 출토유물

백제가 한강유역에서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밀려서 도읍을 웅진으로 옮긴 시기는 약 70년(475~538) 정도이며, 송산리 고분군에서 무령왕릉이 1971년 송산리고분군에서 발굴되기 이전까지는 공산성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유물이 없었다. 송산리고분군 중 하나인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고분 중에서 유일하게 무덤의 주인공이 밝혀진 왕릉으로 관꾸미개를 비롯하여 약 4,600여점에 이르는 많은 유물이 이 왕릉 한곳에서 출토되었다.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왕릉 중 보기 드물게 벽돌로 쌓아서 만든 무덤으로 중국 남조와의 문화적 교류를 잘 보여주는 무덤이다. 비슷한 형태의 무덤이 중국 남조의 귀족층 무덤으로 여러 곳이 발굴되고 있다고 한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대부분은 현재 공주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으며 국보로 지정된 유물 ..

중앙박물관 2011.04.23

[중앙박물관 백제실] 백제의 지방세력 (영산강 유역 출토 유물)

한강유역 하남위례성에서 출발한 백제는 삼한시대 마한의 영역이었던 한반도 서남부지역을 장악하면서 고대국가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의 영역 중 수도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영산강 유역은 옛 마한의 근거지이자, 한.중.일 해상교통로에서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으며, 넒은 평야를 끼고 있어서 오랫동안 강력한 지방세력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마한의 근거지였던것으로 추정되는 나주 반남면 일대 자미산성 주변으로는 신촌리, 덕산리, 대안리에 상당히 규모가 크고 많은 수의 고분이 존재하고 있으며, 영산강 이북에는 나주 복암리를 비롯하여 여러지역에 지방유력세력의 근거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산강 유역의 고분들은 마한시대의 것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백제시대 지방 유력자들의 그 고분이다. 이들 ..

중앙박물관 2011.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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