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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 28

남원성, 정유재란때 왜군과 큰 전투가 있었던 읍성 (사적298호)

정유재란 당시 남원전투는 당시 왜군이 전북 남원성을 공격해 조.명 연합군과 전투를 벌린 것으로 각지의 의병들과 군민들이 합세해 벌린 큰 전투였으며, 결국 왜군에 패해 모두 살했당했으며, 그당시 살해당한 관민 일만명의 무덤이 남원에 있는 만인의총이다. 당시 왜군은 칠전량에서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을 격파하고 육군도 구례를 함락시키고 남원성으로 총진격하였으며 왜군의 수가 오만이 넘었다고 한다. 당시 남원성은 경상도에서 호남지역을 거쳐서 서울로 북상할 수 있는 길목에 해당되기 때문에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 3,000명이 파견되었고 각지제서 관군들과 의병들이 모여서 일만이 넘는 민.관이 왜군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었다. 5만이 넘는 왜군의 주력부대와의 싸움에서 작은 읍성으로는 지키기 어려웠기때문에 남원성에 있었던..

[서산 해미읍성] 읍성내 민가 가옥들

순천 낙안읍성과는 달리 해미읍성내에는 주민들이 살지 않는 텅빈 공간이다. 지금 읍성내에는 관청건물과 서산지역의 민가들을 재현해 놓고 있다. 서산지역 민가들은 대부분 ㅡ자형 주택을 하고 있으며, 이 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거나, 다양한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해미읍성 동헌 앞쪽에 재현해 놓은 서산지역 초가 주택들 시골마을 돌담길 부농의 ㄱ자형 주택. 조선시대 민가로 부농의 집을 재현하였다. 전형적인 서산지역의 민가로서 대청이 없는 것이 특징인데, 이런 ㄱ자형의 가옥은 ㅡ자형 가옥의 기본평면에서 발전된 것으로, 부억 1칸, 방 1칸의 기본적인 생활공간의 형태로 필요에 따라 칸이 덧붙여져 확대된 것이다. 이 가옥은 부유한 농가로 각종 농기구와 농산물을 저장하기 위한 창고와 부속채가 딸려 있는데 부..

고택_정원 2010.09.11

진해 웅천 읍성 - 남해안 왜인들을 위한 삼포중 하나

웅천읍성은 남해안의 작은 읍성으로 전형적인 읍성을 기능을 가진 것으로 보이며, 왜구의 침입시 주변의 주민들이 읍성에서 2~3일간 피신할 수 있는 소규모 방어기능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 적합한 규모로 축성되었습니다. 이 웅천읍성는 조선중기 삼포 중의 하나인 제포를 관리하던 읍성입니다. 아마 왜인들이 언제 말썽을 피울지 몰라서 읍성을 쌓고 관리하였던 것 같습니다. 일본도 네델란드와 무역을 할 때 나가사키 앞에 오란다마을을 만들어 거기에서만 네델란드 사람이 거주하게 하였고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는데 아마 이런 삼포의 사례를 적용한 것 같습니다. 웅천읍성은 오래된 읍성이기는 한데 관리가 잘 안된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읍성에 비해서 성벽이 좀 부실합니다. 삼포: 조선 초기 일본인들의 왕래와 거주를 허가하였던 ..

[나주목 관아] 나주읍성 남고문(남문)

나주 읍성의 남문에 해당하는 남고문은 나주 시내 중심가 도로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성문이다. 나주 도심부를 중앙을 가로지르는 대로가 끝나는 지점에 위치한 남고문은 읍성 성문 중 가장 먼저 복원된 성문으로 마치 서울의 숭례문을 연상시키다. 원래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동점문과는 달리 옹성이 없고, 도로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읍성 밖에서 본 나주읍성 남고문. 옹성은 없고 성문 위에 2층 문루가 있다. 읍성 안쪽에서 본 나주읍성 남고문 옆에서 본 나주읍성 남고문. 문루에 오르는 계단이 있고, 성벽은 남아 있지 않다. 나주읍성 남고문은 나주시대를 관통하는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나주읍성이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 이전 또는 고려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초..

[고창읍성(高敞邑城)]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읍성

읍성은 우리나라의 특징적인 성곽의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이나 일본의 성곽은 지역 유력자의 저택을 중심으로 견고한 성곽을 쌓는데 비해 우리나라의 읍성은 주민이 거주하는 지역을 성곽으로 쌓고 있습니다. 이런 일반적은 읍성의 성격과는 달리 고창읍성은 동쪽으로 반등산(半登山)을 둘러싸고 있는 산성과 비슷한 형태를 보입니다. 동문·서문과 정문격인 북문이 있고, 성문사에는 방어를 위한 6개의 치(雉)가 있습니다. 성문은 일반적인 성곽의 성문처럼 견고해 보이지는 않지만 앞에 튼튼한 옹성을 쌓아놓고 있습니다. 고창읍성의 전체적인 구조를 보면 장기적인 농성을 할 수 있는 견고한 산성이나 지역중심지의 성곽이라고는 보기는 힘들고, 며칠정도 농성이 가능한 읍성과 비슷한 규모입니다. ※ 고창읍성 탐방 1. 고창읍성 성..

[고창읍성(高敞邑城)] 겨울 읍성 성벽길

서산의 해미읍성, 순천의 낙안읍성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읍성입니다. 이 성의 명칭은 고창읍성이라고 불리는데 형태로는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았던 산성의 형태와 비슷합니다. 그렇지만 성벽을 쌓은 형태를 보면 읍성의 형태와 비슷해 보입니다. 내부에는 관청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면에서 보면 진주 남강변에 있는 진주성과 형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창읍성은 반등산을 중심으로 산성과 비슷한 형태로 성벽을 쌓아놓고 북문, 동문, 서문에는 옹성을 쌓아 방어의 기능에 충실했던 성으로 보입니다. 고창읍성의 정문이자 북문입니다. 옹성으로 정문을 막고 있는데 다른 지역의 읍성보다 튼튼해 보입니다. 정문인 북문 왼쪽편 성벽입니다. 북문의 옹성안에서 본 옹성 입구와 서쪽편 성벽입니다. 북문 옹성성의 외벽입..

[고창읍성(高敞邑城)] 성문, 옹성, 치(雉), 연못

고창읍성은 동쪽으로 반등산(半登山)을 둘러싸고 있는 산성과 비슷한 형태를 보이는 읍성이다. 동문·서문과 정문격인 북문이 있고, 성문 사이에 방어를 위한 6개의 치(雉)가 있다. 성문은 일반적인 성곽의 성문처럼 견고해 보이지는 않지만 앞에 튼튼한 옹성을 쌓아놓고 있다. 고창읍성의 전체적인 구조를 보면 장기적인 농성을 할 수 있는 견고한 산성이나 지역중심지의 성곽이라고는 보기는 힘들고, 며칠정도 농성이 가능한 읍성과 비슷한 규모이다. 고창읍성의 정문격인 북문. 옹성을 통해서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옹성의 크기가 전주 풍남문의 옹성보다 크게 보인다. 옹성 출입통로. 통로 길의 넓이가 일반적인 읍성의 옹성보다 크다. 옹성 성벽 북문의 성루인 공북루 성안에서 본 공북루 성의 또다른 방어시설인 치(雉) 고창읍성으 ..

[서산 해미읍성] 진남문(鎭南門), 읍성의 정문

서산 해미읍성의 정문인 진남문(鎭南門)이다. 60년대 해미읍성이 복원될때 남아있던 유일한 성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미읍성은 뒤로는 수덕사, 개심사 등이 있는 가야산 산자락이 있고, 앞으로는 서산지역의 넓은 평야가 펼쳐진 곳으로, 조선시대까지 연안 해상 교통의 중심인 태안반도를 관장하던 군사적 중심지였다. 해미읍성은 평지에 쌓은 전형적인 읍성으로 만주지역으로 부터 들어오는 북방기마부대를 중심으로한 대규모 군사의 침입에 대비한 방어시설은 아니고, 고려시대에서 조선중기까지 우리나라를 괴롭혔던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쌓은 읍성이다. 그래서인지 성문에는 옹성이 없는 단순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서산 해미읍성의 정문인 진남문. 단순히 왜구의 기습에 대비하기 위해서 지은 읍성이기 때문에 옹성이 없고, 성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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