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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 고려궁지는 고려시대 궁굴이 있던 장소입니다. 몽골의 침략시 무신정권은 강화로 수도를 옮긴 후 이곳에 궁궐을 건립하였습니다. 몽고와의 항쟁기간인 39년 동안 이 곳을 궁궐로 사용하였으나 몽골과 화친할 때 몽골의 요구로 궁궐과 성곽 등을 모두 파괴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이곳에는 국왕의 행궁이 있었으나 병자호란 이후에는 행궁을 짓지 못하고 단지 강화유수부 동헌과 부속 건물만이 이 곳에 지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북방 민족과의 항쟁에서 강화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방상의 요지였기 때문에 중국의 북방 민족이 세운 정권인 원나라와 청나라는 한반도 침략 이후 강화도의 군사/행정 시설들을 모두 파괴하였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도 말만 지방 관청이지 건물의 규모나 형태로는 서울에 있는 궁궐과 비슷한 형태로 지어져 있습니다.


대몽항전의 중심이었던 강화고려궁지입니다. 최근에 발굴이 시작되고 있습니나.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당시 건물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고려궁지 발굴 현장입니다. 고려시대 궁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계단과 건물의 초석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발굴현장의 고랑입니다.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열심히 땅을 파고 있습니다.

아직 발굴이 진행되지 않은 구역입니다. 나무만 베어 놓고 있습니다.

강화 고려궁지의 출입문인 승평문입니다. 이 곳은 고려시대에도 북방민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국왕의 행궁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병자호란 이후에는 행궁도 없어지고 강화부 유수의 동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고려궁지 내에 자리잡고 있는 강화 유수부 동헌입니다. 말만 지방관청의 동헌으로 정해져 있지 건물의 모양이나 크기가 국왕이 업무를 볼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지은 행궁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강화 고려궁지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외규장각입니다. 원래의 건물은 병인양요때 소실되고 최근에 복원한 건물입니다. 외규장각 주변으로는 유적지라서 그런지 공터로 비워 놓고 있습니다.
강화 고려궁지의 강화 동종이 있던 자리입니다. 보물로 지정된 강화동종은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복제품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고려궁지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고목입니다.

안내표지판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 19년(1232)에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1234년에 세운 궁궐과 관아건물이다. 정궁 이외에도 행궁·이궁·가궐을 비롯하여 많은 궁궐이 있었다. 정문은 승평문이었고 양쪽에 삼층루의 문이 두 개가 있었으며 동쪽에 광화문이 있었다. 39년동안 사용되었고 1270년 강화조약이 맺어져 다시 수도를 옮기면서 허물어졌다. 조선시대에도 전쟁이 일어나면 강화도를 피난지로 정했다. 조선 인조 9년에 옛 고려 궁터에 행궁을 지었으나 병자호란 때 청군에게 함락되었다. 그후 다시 강화유수부의 건물을 지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거의 불타 없어져 지금은 동헌과 이방청만이 남아있다. 이 곳은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과 국난 극복의 역사적 교훈을 안겨주는 곳이다. <출처: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