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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위대한 기록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이 모셔진 합천해인사입니다. 소박하면서도 단아하게 지어진 건물에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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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이 모셔져 있는 곳입니다. '팔만대장경'이라고 쓰여진 큼지막한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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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이 건물안 쪽에 보입니다. 어뜻 보기에도 귀한 곳임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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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들이 팔만대장경을 밖에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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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입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잘 만들어진 건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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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장경판  
고려대장경판은 그 경판의 갯수가 8만1258개나 된답니다. 그래서 팔만대장경으로 흔히 불리워지는 것입니다. 그럼 ‘경’이란 뭘까요? 경은 부처님의 말씀을 적어 놓은 글을 말하며 법문이라고도 합니다. 예를 들면 살생하지 말라, 욕심내지 말라 등의 교훈적인 것을 이야기로 엮어 놓은 거죠. 그리고 ‘대장경’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은 경장, 계율을 모은 율장, 불제자의 논설을 모은 논장 등의 불교 경전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경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어요? 제일 좋은 방법은 책을 많이 찍어서 사람들이 보게 하면 되겠죠. 그래서 나무판에 경을 새겨 넣었습니다. 이것을 경판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8만4천 법문이라고 하는데 그러고 보면 ‘팔만대장경’이란 이름 자체에서 당시 고려인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집대성했다는 자부심도 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고려 사람들은 몽고와의 전쟁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무슨 이유로 팔만대장경을 만들게 되었을까요?
☞  왜, 언제 만들었을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당시 고려인의 생활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고려는 왕, 신하, 백성 할 것 없이 모두가 불교를 믿는 나라였으며, 온 나라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절을 짓거나, 탑을 세우거나, 불상을 세우는 등의 일이었어요. 이런 일이 생길 때 조금이라도 도와주면 극락 왕생한다고 믿었던 것이죠. 돈이 있는 사람은 시주를 내고(대장경판에는 시주한 것으로 추측되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음), 못 내는 사람은 부역을 해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 했어요. 이런 당시의 분위기에서 몽고군의 침입과 초조대장경과 속장경의 소실(1232년, 고종19년)로 인해 나라에서는 전 백성의 뜻을 하나로 모을 필요가 생겼던 것이죠. 그래서 4년 후인 1236년(고종23)에 시작해 1251년(고종38)까지 16년에 걸쳐 교정도감이라는 전담기구를 통해 완성된 것이 팔만대장경입니다. 전 국토가 몽고와의 전쟁으로 인해 피비린내나는 상황에서 온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 바로 고려대장경판 제작이었던 것이죠.
☞  왜 썩지 않았을까요? 
고려대장경은 강화도의 선원사에 있다가 1398년(태조7) 5월에 해인사에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어요. 그럼 무슨 이유로 강화도라는 섬에서 깊숙한 내륙 쪽으로 오게 되었을까요? 강화도는 바다와 접해 있기 때문에 언제나 왜적의 공격이 많았어요. 이에 안전한 곳을 찾다보니 교통로와는 일정한 거리가 있고 해안가에서도 먼 곳을 찾게 되었던 것이죠. 그곳이 바로 해인사였던 것이죠.  대장경은 무려 750년이나 지난 지금도 썩지 않고 남아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경판에 쓰인 나무의 제작 과정과 이를 보관하기 위한 시설로 나누어 볼 수 있죠. 먼저 경판에 쓰인 나무의 제작 과정을 보면 산벚나무나 돌배나무를 바닷물에 3년 정도 담갔다가, 그늘에 말리는 과정을 되풀이해 뒤틀리거나 좀이 슬지 않도록 했으며, 경판의 장식과 보존을 위하여 옻칠을 하였어요. 옻칠을 하면 외부 습기를 흡수하거나 방출하여 항상 일정한 수분을 머금어 유지하며 표면에 견고한 막이 생겨 광택이 나고 오랫동안 사용해도 변하지 않어요. 옻칠 외에도 양끝에 구리로 만든 마구리를 대서 뒤틀림을 방지하였어요. 대장경은 현재 장경판전이라는 건물 안에 있는데 장경판전은 대장경의 보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건물이며 국보 제52호로 지정되어 있어요. 장경판전은 1488년(성종19)에 인수·인혜 대비가 세우기 시작했으며 1622년(광해군14) 수다라장을 중수하고 1624년에 법보전을 지었어요. 장경판전의 위치를 보면 해발 1,430m인 가야산의 중턱에 해당되는 약 655m 높이에 서남향으로 향해 있습니다. 장경각 주변 지형은 북쪽이 높고 막혀 있으며, 남쪽 아래로 열려 있습니다. 따라서 남쪽 아래에서 북쪽으로 불어 올라오는 바람은 자연스럽게 경판전 건물을 비스듬히 스쳐 나가게 되죠. 또한 서남향을 하고 있어 모든 곳에 햇볕이 들게 했죠. 나무를 썩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통풍· 습도·온도 등을 조절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판의 변형이 없고 벌레가 생기지 않습니다. 먼저 습도 조절을 보면 해인사 주변은 연중 인근지역에 비해 습도가 6∼10% 높습니다. 그럼에도 온전히 보존돼 온 것은 해발 655m에 있는 장경각이 지역적 특성상 3개의 계곡이 만나는 지점으로부터 1㎞쯤 북쪽에 위치하기 때문입니다. 통풍을 살펴본다면 창 구조가 특이한데 각 벽면에는 위·아래로 두 개의 창이 이중으로 있어 아래창과 위창의 크기가 서로 다르게 돼 있습니다. 건물의 앞면 창은 위가 작고 아래가 크며, 뒷면 창은 아래가 작고 위가 커요. 이것은 큰 창을 통해 건조한 공기가 건물 안으로 흘러 들어옴과 동시에, 가능한 한 그 공기가 골고루 퍼진 후에 밖으로 빠지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경판을 꽂아놓는 판가는 내부의 환기에 도움을 주는데, 두 장씩 포개 세워서 꽂혀 있는 경판의 독특한 배열방법이 굴뚝 효과로 대류를 촉진시키고 경판의 온도와 습도를 완충·조절하는 데 큰 기여를 합니다.
장경판전의 습도와 청결 유지를 위해 경판전 내부의 흙바닥에 숯과 횟가루, 소금을 모래와 함께 사용했습니다. 습기가 찰 때는 습기를 내보내며 자연적으로 습도를 조절해 경판의 변형을 줄일 뿐만 아니라 해충의 침입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럼 숯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숯에는 공기와 물을 정화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바로 기체와 액체의 분자가 숯에 달라붙는 강력한 흡착력 때문입니다. 소금은 공기 중의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따라서 습기가 높은 때는 공기 중의 수분이 소금에 흡수됩니다. 반대로 건조한 날에는 소금 속에 있던 수분이 밖으로 증발하여 내부의 습도를 조절합니다. 또한 소금은 바닥을 단단하게 하며 균을 죽이는 작용을 합니다. <출처:문화재청> 합천 해인사에는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기록문화 유산인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다. 고려시대에 만든 팔만대장경이 지금도 잘 보관되고 있다니 선조들의 지혜가 묻어나는 것 같다. 실제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법보전은 해인사에서 가장 높은 곳이 위치하고 있고, 아주 통풍이 잘되고 시원한 곳에 설치되어 있다. 가서보니 팔만대장경의 목판들은 눈으로 보기에도 갯수가 아주 많고, 건물밖에서 약간의 틈으로만 볼 수 있었는데도, 팔만대장경 전체를 다 읽은 느낌이 든다.

  해인사 대장경판은 고려시대에 판각되었기 때문에 고려대장경판이라 하며, 또한 판수가 8만여판에 이르고 팔만 사천 번뇌에 대치하는 8만4천 법문을 수록하였다하여 팔만대장경이라고도 한다. 몽고의 침입으로 현종 때의 초조대장경판이 불타버려 다시 새긴 대장경이므로 재조대장경판이라고 하며, 현재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해인사 대장경판이라불리고 있다. 이 대장경판은 해인사 법보전과 수다라장에 보관되어 있다.이 대장경판은 현재 없어진 송나라 북송관판이나 거란판 대장경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유일한것일 뿐 아니라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대장경판이다. 또한 이 대장경은 대장경 간행 역사에 있어 내용이 가장 정확하고 완벽한 대장경판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일본에서는1614년에 이 대장경을 바탕으로 하여 대장경 <종존판>을 새기다가 중도에서 포기한 일이 있고 그후 신연활자로 대일본교정숙쇄판대장경:1880~1885, 대일본속장경:1902~1912, 대정신수대장경:1924~1934의 바탕이 되었으며 중국에서 불교대장경:1979과 현재 간행하고 있는 불광대장경:1983~현재의 바탕을 삼고 있을 정도로 그 내용이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간행기록을 조사해 보면 고려 고종 24년(1237)부터 35년 (1248년)까지 12년 동안 새겼음을 알 수 있다.고려사에 16년이 걸린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은 준비기간을 합산한 것이며,고려대장경판각 사업은 초조대장경이 불타버린 이듬해인 고종20년(1233)경에는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 새긴 대장경판은 모두 1496종 6568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대장경판의 특징은 무엇보다 이 사업을 주관했던 당시 개태사 승통인 수기대사가 북송관판, 거란본,초조대장경 등을 참고하여 내용을 비교하여 오류를 바로 잡은 데에 있다.이때 수정한 내용은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에 수록되어 있다.강화도 성 서문 밖의 대장경판당에 보관되었다가  신원사를 거쳐 태조7년 (1398) 5월에 해인사로 옮겨져 오늘까지 보관되고 있다. 대장경판의 수는 일제 때 조사한 81258장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여기에는 대장경판이 아닌 조선조 때 판각된 것도 포함된 통계이다. 경판의 크기는 세로 24cm내외, 가로70cm 내외이고두께는 2.6cm 내지 4cm이다. 무게는 3kg내지 4kg이다. 대장경의 판각을 위해서는 국가에서 대장도감이란 임시기구를 설치하여 총괄하고 실제적인 판각은 경상남도 남해에 설치한 분사대장도감에서 담당하였다. 이러한 것은 경판의 간기와 경판에 새겨져 있는 각수를 조사하여 얻어낸 결론이다. 대장경판의 권말에는 을묘해 고려국가대장도감봉칙조조등으로 간기가 기록되어 있고 각 경판의 권두제나 권미제 아래의 광곽밖에 각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해인사 대장경판은 수천만개의 글자가 하나같이 그 새김이 고르고 정밀한 서각 예술품으로 우리 민족이 남긴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이다.<출처: 합천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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