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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후기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을 모신 충렬서원입니다.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에 자리한 전형적인 소규모 경기지역 서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충렬서원이 있는 곳은 경기도 광주에서 수원으로 가는 국도 변으로 근처에 정몽주 선생의 묘소가 있는 지역이며 우리나라에서 명당으로 알려져서 많은 묘지들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충렬서원은 강당과 사당, 그리고 내삼문/외삼문으로 이루어진 아주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제사 위주의 기능만 하는 곳으로 생각됩니다.
 


경기도 용인 모현면에 포은 정몽주 선생 묘소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충렬서원의 전경입니다. 사당과 강당 2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경기도 지역의 소규모 서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충렬서원의 출입문인 외삼문입니다. 경기지역의 서원이라서 중앙정부 간섭때문에 건물이 아주 소박하게 지어졌습니다.

충렬서원 외삼문에 걸린 현판


안쪽에서 본 충렬서원의 외삼문


충렬서원 외삼문을 들어서면 교육기능을 담당하던 강당이 있습니다. 원래 교육기능을 할려면 강당이 이 건물보다는 크고 여러동의 건물이 있어야 하지만, 현재의 충렬서원은 제사를 준비할 때 머무는 장소로서의 기능만 하고 있습니다.


외삼문을 들어서서 계단을 따라서 올라가면 사당을 들어가는 출입문인 내삼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삼문을 들어서면 포은 정몽주 선생을 모시는 사당이 있습니다. 건물의 규모가 매우 작고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충렬서원 뒷동산에서 내려다 본 서원의 전경입니다. 사당과 강당, 내삼문/외삼문으로 이루어진 조그만 경기지역 서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충렬서원 옆 길에서 본 모습입니다.


충렬서원을 들어가는 길입니다. 길 중간에 홍살문이 놓여있습니다.


 고려 후기 충신이자 동방성리학의 시조인 포은 정몽주(1337∼1392) 선생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서원이다. 조선 선조 9년(1576)에 처음 지었으나 임진왜란(1592)으로 불타 없어져 선조 38년(1605)에 다시 지었다. 이때 정보와 이시직을 같이 모셨다. 광해군 원년(1608)에 임금이 이름을 짓고 현판을 하사하여(사액), 나라의 공인과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선현배향과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담당하였으나 고종 8년(1871)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으나, 1924년에 복원하였다. 마을 뒤쪽의 야산 기슭에 남서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공부하는 강당을 앞쪽에 배치하고 사당을 뒤쪽에 배치한 전학후묘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입구의 홍살문과 내삼문·외삼문·사당이 거의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지만, 강당이 축에서 벗어나 사당과 나란히 보이는 점이 특이하다. 또한 재실이나 장경각·교직사 등 부속건물이 없이 사당과 강당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8세기 이후에 서원이 교육적 기능은 사라지고 제사 기능 중심의 시설로 바뀌어 갔음을 보여 준다. 강당도 교육공간보다는 제향 때 모임 장소로 쓰였다. 전하는 유물로 『유한집』과 『단심가』등을 서원에서 보존하고 있다. 강당과 사당만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서원의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축물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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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 충렬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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