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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_종묘

흥선대원군 사저 운현궁, 솟을대문과 수직사

younghwan 2011. 11. 27.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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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한말 역사와 정치의 중심지였던 흥선대원군의 거처였던 운현궁이다. 이름은 운현궁이지만 궁궐 건물은 아니고 민간인들이 사는 사가(私家)에 이름만 궁(宮)이라고 붙혔다. 구한말 고종이 등극하기 전에는 이렇게 크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며, 아마도 계속 확장 한 것으로 보인다.
 
 운현궁 출입문인 솟을대문을 통해서 들어서면, 정면에 대원군이 거처했던 사랑채인 노안당을 들어가는 출입문이 보이고 오른쪽편에 운현궁에 소속돤 관리들이 거처했던 수직사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수직사는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당시의 운현궁은 상당히 넓었을 뿐만 아니라 고종이 왕으로 즉위하면서 흥선대원군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 궁에서 파견된 경관들과 관리하는 인원이 많았다고 한다. 솟을대문 북쪽으로는 물품을 보관하던 광으로 쓰였던 긴 행랑채와 넓은 마당을 두고 있다. 지금은 이곳에서 각종 문화행사를 하기 위한 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구한말 역사의 중심지로 흥선대원군이 거처했던 운현궁 입구 솟을대문. 이름은 궁궐이지만 사실상 민가의 형태이고 궁궐의 격식은 없는 건물이다. 세도가의 상징인 솟을대문을 통해 들어가게 되어 있다.


운현궁 마당에서 본 출입구인 솟을대문. 솟을대문 양쪽으로 지금은 매표소로 사용하고 있는 문간방이 양쪽에 있다.


솟을대문 북쪽으로는 물품들을 주로 보관하던 광들로 이루어진 긴 행랑채가 있다.


이들 행랑채는 휴식공간과 물품을 보관하는 장소로 지금 이용되고 있다.


도로쪽에서 본 행랑채. 일반적인 서울지역 사대부 저택의 행랑채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운현궁에 소속된 관리들이 거처했던 수직사 건물. 구한말 고종의 아버지인 대원군의 권세가 막강해서 상당히 많은 관리들이 운현궁에 파견되어 근무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앞면 8칸에 우진각 지붕을 하고 있으며, 일반적인 궁궐이나 관청의 행랑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수직사는 관원들이 거처하던 공간으로 방과 마루로 이루어져 있으며, 앞쪽에 툇마루를 달아내어 놓고 있다.


수직사 내부 마루방


수직사 내 온돌방


수직사 앞에 있던 우물


운현궁 수직사


솟을대문이 있는 입구 행랑과 운현궁 건물들 사이에는 넓은 마당이 있다.


마당 한쪽 끝에는 상설공연이나 문화행사를 위한 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운현궁에서 대원군이 주로 거처했던 노안당의 행랑채


사랑채격인 노안당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운현궁 사랑채인 노안당과 안채인 노락당과 이로당을 들어가는 입구. 커다란 고목이 입구를 시원하게 해 주고 있다.



가을 단풍이 든 고목



운현궁의 안채인 이로당으로 들어가는 출입문과 담벼락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이 살았던 집으로, 고종이 태어나서 왕위에 오를 때까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1863년 12월 고종이 왕위에 오른 후부터 부근의 고개이름(운현(雲峴)) 또는 관현(觀峴)를 따 운현궁으로 불려지게 되었다.매표소를 통과해 오른쪽으로 수직사가 있고 여기를 지나 정면으로 솟을대문을 통과하면 운현궁의 사랑채가 보이는데 이 건물이 노안당이다. 정문 우측에 위치한 수직사는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당시의 운현궁은 상당히 넓었을 뿐만 아니라 고종이 왕으로 즉위하면서 흥선대원군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 궁에서 파견된 경관들과 관리하는 인원이 많았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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