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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 권율장군을 모신 사당, 충장사(忠莊祠)

younghwan 2010. 2. 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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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주산성에는 권율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충장사가 있습니다. 충장사는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전통적인 형태의 사당은 아니고 70년대 성역화 사업때 만든 콘크리트리로 지은 사당입니다. 그래서 전통전인 사당의 모습은 아니고 전형적인 70년대 풍의 건물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현판은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쓴 글씨라고 합니다.

행주산성 내에 있는 권율 장군을 모신 사당인 충장사입니다. 70년대 성역화 사업때 만든 사당으로 당시에 만든 많은 사당들과 유사한 모습입니다.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 내부에 권율장군의 영정을 모시고 있습니다.

권율장군 영정을 모신 충장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홍살문입니다. 초록빛으로 물든 숲속길이 정겨운 곳이기도 합니다.

충장사 입구인 삼문입니다. 전통적인 사당은 통영 충렬사 처럼 외삼문, 내삼문이 있는데 이 곳은 그런 구분이 없이 삼문만 있습니다. 물론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입니다.

충장사에서 내려다 본 입구인 삼문입니다.

행주산성 충장사 입구에 있는 행주대첩비입니다. 행주산성 정상에 있는 행주대첩비의 글씨가 닳아 없어져 조선후기 헌종때 새로 만들에 세운 비석이라고 합니다.

권율장군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충장사입니다. 현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쓴 글씨라고 합니다.

행주산성 충장사 내부에 보셔진 권율 장군 영정입니다.


충장사는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원래는 행주 나루터 안마을에 정면3칸, 측면 1칸의 규모로 행주기공사가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1970년 행주산성 정화공사 때 이 곳에 충장사를 다시 지었다. 구조는 정면3칸, 측면3칸의 콘크리트 건물이다. 충장사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이며 사당 안에 봉안된 장군의 영정은 장우성 화백이 그린 것이다. <출처:고양시청>

안내표지판



충장사는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원래는 행주 나루터 안마을에 정면3칸, 측면 1칸의 규모로 행주기공사가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1970년 행주산성 정화공사 때 이 곳에 충장사를 다시 지었다. 구조는 정면3칸, 측면3칸의 콘크리트 건물이다. 충장사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이며 사당 안에 봉안된 장군의 영정은 장우성 화백이 그린 것이다. <출처:고양시청>

권율 장군: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대파한 명장.
권보의 9세손으로, 할아버지는 강화부사를 지낸 권적,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권철이며, 어머니는 적순부위 조승현의 딸이다. 명신 이항복의 장인이다. 1582년(선조 1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예조좌랑·호조정랑·전라도도사·경성판관을 지냈다. 1591년에 의주목사로 발탁되었으나 이듬해 해직되었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에 제수되어 활약하였고, 행주대첩 후 도원수로 승진되었다. 1596년 한성부판윤에 기용되었으며, 호조판서·충청도관찰사를 거쳐 재차 도원수를 지냈다. <출처:문화원형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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