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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박물관 특별전 공지지역 명가전에 전시된 유품들 중 만경노씨와 의령남씨 가문에서 출품한 유품들이다. 만경노씨는 조선초기부터 공주에 자리잡은 가문으로 임진왜란때 삼형제가 금산전투에 참가해 순절하고, 이괄의 난때 공을 세워 지역 유력가문으로 자리잡은 가문으로 사당과 관련된 유품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는데 그 중 노혁왕지라 하여 노혁이란 사람이 진사에 급제하고 받은 교지이다. 의령남씨는 조선중기 병자호란때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를 잘 보필하여 공신으로 봉해진 남이웅의 후손으로 영정과 일기류 중심으로 유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중 남이웅이 중국사신으로 가서 그려온 남이웅 영정이 가장 의미가 있어 보인다.

<만경노씨>

노혁왕지. 노혁이라는 사람이 진사로 합격하고 받은 교지로 과거 합격증과 같은 의미를 갖는 공문서이다.

조선초기 진사(進士) 급제 교지로 노혁이 진사 23인으로 입격한 교지이다. 족자형태로 되어 있으며 하단에 숭정삼갑술춘(崇禎三甲戌春, 1754년)에 광산 김진상(金鎭商)이 쓴 발문이 적여 붙어 있는데 이 교지를 받게 된 연유와 이후 역임하였던 관직들이 적혀 있다. <출처:공주박물관>

교지와 여러사람이 서명한 문서로 정부에 제출한 탄원서와 비슷한 성격의 문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서적류

사당에 걸린 편액과 현판. 글자체가 재미있게 생겼다.

<의령남씨>

남이웅 영정. 중국화가가 그린 영정이라고 한다. 인조때 인질로 잡혀간 소현세자를 잘 모셔서 공신이 된 남이웅 선생의 영정이다.

남이웅 선생이 중국을 다녀오면서 쓴 기행문인 시북노정기.

인조대 좌의정을 지낸 춘성군(春城君) 남이웅(南以雄)의 영정이다. 본영정의 좌측상단에 “大明天啓七年歲在丁卯上弦日寫於玉河官舍 武英殿中書參邦禎製”라되어 있어 1627년에 중국 명나라 수도 북경에 조선의 사신들이 머물던 옥화관에서 중국화가가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옥화관에서 본 초상화를 그린 화가는 위 인용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武英殿 中書 秦邦禎”이라 화가이다. 실제로 남이웅은 1626년(인조 4) 6월 28일에 동지사(冬至使)로 해로를 통해 사행을 다녀왔고, 이 과정에서 시북노정기를 남기기도 하였다. <출처:문화재청>

또다른 영정들

의령남씨 가문에서는 일기류로 보이는 다양한 문서들을 남겨 놓고 있다.

인장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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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 국립공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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