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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화성 행궁] 북군영, 집사청, 느티나무

younghwan 2010. 3. 18.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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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화성행궁 입구인 신풍루 오른편에 위치한 건물군으로 수원 화성 장용외영 친군위가 숙직하던 북군영과 행궁의 잡무를 맡아 보던 집사청이 자리잡고 있다. 화성행궁에는 기병으로 구성된 장용외영의 핵심 병력인 친군가 수직근무하던 북군영과 남군영이 신풍루 좌.우에 자리잡고 있으며 각기 100명씩 주둔하고 있었다고 한다.


장용외영 기병들이 숙직근무하던 북군영. 지휘부가 숙식하던 건물로 보이며, 주위에 행각들로 둘러져 있다.


북군영 행각들

북군영
'화성성역의궤'에는 관아건물로 분류해 놓았다. 장용외영의 친군위(화성의 기병)는 처음 좌.우열로 각 100명씩 입직숙위하는 곳이 남.북군영이다. (화성행궁 전체는 동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방위로 볼때 남쪼과 북쪽방향에 군영이 있다.) 1789년 군영 24칸을 지은데다가, 정조 18년 좌우익랑 21칸을 증축하여 모두 62칸의 규모를 갖추었다. 1798년 장용외영 군영의 일대 개편에 따라 좌.우열은 파하고 1.2.3번의 입번을 정하여 각기 100명씩 양영에 나누어 방어하였다. <출처: 수원시청>


수원 화성행궁 집사청 건물. 두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도 화성행궁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숙소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집사란 주인을 모시고 그 살림을 맡아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행궁의 집사청은  궁궐의 액정서(국왕이 쓰는 붓과 먹.벼루 등을 보관하며 대궐안의 열쇠를 간수하고 여러가지 설비, 비품 등을 관리하는 관청)와 같이 잡다한 사무를 보던 집사들이 사용하는 건물이다. 좌익문 밖 동북 담 안에 있는데 1789년에 건립되었으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완전히 파괴되었다. <출처:수원시청>


화성행궁 집사청과 북군영의 출입문들. 출입문 앞에는 화성행궁을 지켜온 느티나무 고목이 우뚝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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