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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당종마목장 바로 옆에 있는 희릉은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의 능이다. 사극 '여인천하'에 나오는 중종과 명종때의 수많은 사건과 정쟁들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능이다.
 
 원래 서초구 내곡동에 있던 능을 당시 정쟁의 결과로 이 곳 서삼릉으로 옮겼다고 하며 중종의 능도 이 곳에 있었으나, 명종때 문정왕후가 강남의 선정릉으로 능을 옮겼다고 한다. 사극에서 슬픈모습으로 많이 등장하던 장경왕후는 죽어서도 홀로 자리를 하고 있으며, 다만 그 옆쪽에 자신의 아들인 인종은 능인 효릉과 함께 있다는 것이 위안일 것이다.


중종 계비인 장경왕후의 희릉. 중종의 능과 함께 있을때는 정릉이라고 불렸으나, 선정릉으로 이장후에는 희릉으로 불린다. 근처의 자신의 아들인 인종의 능이 있다.


입구의 홍살문. 그 옆에 판위가 있다. 수복방과 수라방은 원래부터 없었는지 그 흔적이 없다.


정자각으로 연결되는 참도.


제사를 지내는 제향.전이 공간인 정자각.


희릉 정자각 월대와 전각 내부. 월대의 높이가 약간 낮아 보인다.


희릉 봉분과 석물들


비각과 비석



희릉은 조선 11대 임금 중종의 첫 번째 계비 장경왕후의 능이다. 병풍석 없이 난간만을 두른 단릉(單陵)으로 단아한 느낌이다. 배치나 수법은 조선 전기 양식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문석인과 무석인은 기둥 같은 몸체에 큰 머리를 올려놓았으며 목이 거의 없어 어깨가 약간 굽어보인다. 무석인은 큼직한 이목구비와 당당하고 위엄 있는 자세로 칼을 쥐고 있으나 그 갑옷의 조각 수법을 보면 작고 섬세한 문양들을 촘촘히 새기고 있다.  희릉은 처음에는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릉(獻陵)의 서쪽 언덕에 조성하였다, 그런데 중종의 부마가 된 김안로가 세자인 인종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자기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옥사를 일으켰다. 그 옥사의 구실 중 하나가 희릉 천릉 사건이다. 김안로는 희릉의 입지가 불길하니 당시 능 조성에 관련되었던 자들을 처벌하고 능을 천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1537년(중종 32) 희릉을 현재의 고양시 서삼릉으로 옮기고, 그와 동시에 당시 능을 조영하는데 관련되었던 자들을 처벌하였다. 그 뒤 중종의 정릉(靖陵)이 희릉의 곁에 안장되면서 동원이강 형식의 능을 취하고 능호를 정릉으로 하였다. 1562년(명종 17) 문정왕후에 의해 정릉은 현 강남구 삼성동의 선릉 곁으로 옮겨지고 장경왕후의 능은 다시 희릉으로 부르게 되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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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신동 | 서삼릉 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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