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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독립관(모화관), 중국사신을 맞던 곳에서 독립협회 사무실로 변했던 건물

younghwan 2010. 9. 20.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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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대문 독립공원에 있는 독립관은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던 옛 독립협회 사무실로 쓰던 독립관을 고증에 따라 복원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원래 중국 사신 방문시 접대를 하던 공간인 영빈관으로 사용하던 모화관 건물을 청.일 전쟁 이후 독립협회에서 사용하던 건물이다. 앞면 6칸, 옆면 4칸의  규모가 큰 건물로 옛날 사진과 비교해 보면 원형에 가깝게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현 건물 자체로는 문화재로 큰 의미는 없으나, 조선시대 중국과의 사신교류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독립협회의 발자취도 같이 느껴볼 기회도 주고 있다. 독립문이나 영은문과 함께 원래 위치는 도심쪽 영천시장 부근이었다고 한다. 주변에 수행원들이 머무는 숙소인 한옥도 여러채 있었다고 한다.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옛 모화관 건물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복원된 독립관 건물. 전면 6칸의 규모가 큰 건물로 연회를 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현재는 독립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순국선열들의 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사용하고 있다.

독립관은 조선시대 중국사신들의 영접연과 전송연을 베풀던 영빈관의 하나인 모화관 건물을 1894년 이후 서재필이 발의하고 독립협회에서 주도하여 개수한 수, 독립관으로 개칭하고 이곳에서 애국토론회를 개최하여 자주.민권.자강 사상을 고취하는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독립문과 함께 독립 사상을 표현하였으나, 일제에 의하여 철거되었다. 독립관은 지상1층 한식 목조건물로서 정면 6칸 측면 4칸 7량 팔작지붕 구조였으며, 원래 위치는 동남쪽으로 약 350m 지점이었다. 서대문독립공원 조성사업계획에 의거 전문가의 고증 자문에 따라 지상층은 당초대로 한식 목조건물로 복원하여 순국선열들의 위패봉안 및 전시실로 사용하고, 지하층은 행사 및 유물 보관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1996년 서울시에서 건립하였다. <출처:서울시청>


여러 방향에서 본 독립관


벚꽃이 만개한 4월의 독립관. 독립관은 현재 서대문독립공원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1407년(태종 7) 송도(松都 : 개성)의 연빈관(延賓館)을 모방해 서대문 밖에 건립하고 모화루(慕華樓)라고 했다. 1430년(세종 12) 모화관으로 개칭하고, 1433년 개축했는데 남쪽에는 연못이 있고 주위에는 버드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또 입구에는 영조문(迎詔門)이 있었는데, 중국 사신 설정총(薛廷寵)이 "맞이하는 것에 조서(詔書)도 있고 칙서(勅書)도 있으며, 상을 내리기도 하는데 이름을 영조(迎詔)라 하는 것은 한군데로 치우친 듯하다"고 해 영은문(迎恩門)으로 바꾸었다. 중국 사신이 오면 원접사(遠接使 : 2품 이상)를 의주에 보내고 선위사(宣慰使 : 2품 이상)를 5곳에 보내어 연회를 베풀어 위로했다. 사신이 모화관에 들어가면 왕세자가 그 앞에 나아가 재배례를 행하고 백관도 재배례를 행한다. 그리고 백관은 반을 나누어 먼저 관(館)에 가서 기다린다. 사신이 돌아갈 때는 백관이 모화관 문 밖 길의 왼쪽에 순서대로 늘어섰다가 일시에 재배례를 행하고 전송했다. 청일전쟁 이후 폐지되었다. 1896년(건양 1) 서재필 등이 모화관을 독립관으로 개칭하고 독립협회 사무실로 사용하는 한편 영은문 자리에는 독립문을 세웠다. <출처: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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