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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유적_고분

부여 능안골 고분군, 백제 후기 귀족들의 무덤

younghwan 2010. 9. 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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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 마지막 왕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산리고분군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볼 수 있는 백제 후기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안골 고분군이다. 이 고분들의 모양새를 보면 최근의 무덤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기때문에 지나가다 보면 어느 집안의 선산이 아닌가 생각들 정도로 고분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는 무덤들이다. 모두 60여기의 고분이 있다고 하며, 많지는 않지만 유물들도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 고분군 앞에 있는 안내표지판을 보면 겉모양은 비슷해 보이지만 내부는 다양한 형태의 석실들로 이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능안골 고분군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평이하게 생긴 무덤처럼 보인다. 약간 시대가 앞선 가야나 마한지역의 경우 귀족들이나 왕이나 큰 구분이 없이 거대하게 봉분을 조성하고, 부장품도 풍부한 경우가 많지만, 이 곳 능안골 고분군은 중국의 영향을 받고, 왕과 귀족간의 계급질서가 잡힌 사회여서 그런지 봉분의 크기도 작고 부장품도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제일 아래쪽에 위치한 봉분은 어떤 의미인지는 잘모르겠지만 별도로 분리되어 있다.


능안골 봉분을 조사 발굴했을때 본 내부 모습들.


발굴시 특별히 의미가 있었던 고분에는 안내표지판이 있다.


평지에 조성된 신라 경주나 서울 석촌동, 또는 구릉 능선에 조성된 가야고분과는 달리 능산리고분군과 능안골고분군은 요즘의 봉분 조성 방법과 비슷하게 산을 등지고 있는 경사진 언덕에 봉분을 조성하고 있다.


부여 능안골 고분군의 봉분들

이 고분군은 능산리 산 75-7번지 일대에서 조사된 고분군을 말한다. 사비시대 백제 왕릉지구로 추정되는 능산리 고분군에서 동쪽으로 약 1.5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 이 지역에는 부여 공설운동장이 신축될 예정이었는데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고분이 발견되어 조사한 것이다. 조사는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모두 60여기의 고분이 조사되었다. 조사된 고분의 수량도 많을 뿐만 아니라 형태 역시 상당히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백제 묘제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마련하였다. 즉, 조사된 고분 중 적어도 5기 정도는 처녀분으로 판단되는 만큼 이들 처녀분의 존재를 통해 웅진시대와 사비시대 백제 묘제의 변천과정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능안골 고분군에서는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았던 관모의 삼각형 철제심과 부착된 직물 중 라(羅)가 조사됨으로써 백제시대 관모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합장묘에서 출토된 허리띠 장식의 하트형 순은제품은 그것이 4개씩 출토됨에 따라 결국 개인당 4개씩 하트형 장식을 부착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하트형 장식과 관모의 존재는 백제 복식사연구에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밖에도 석실 내에서 출토된 인골의 존재는 백제시대 장례풍습 및 체형 연구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으로 믿어진다. <출처:부여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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