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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포 대곶면 염하 해안가에 자리잡고 있는 덕포진이다. 덕포진은 조선시대 해안가 진영으로 포대와 파수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강화해안가 염하 초입에 자리잡고 있는 초지진, 덕진진, 남장포대와 함께 서울로 들어가는 뱃길을 지키는 군사전략상 아주 중요한 요새로 특히 포대를 구성하여 강화 덕진진의 남장포대와 함께 협공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곳이다. 서울에서 가까운 포구인 김포 대명리 포구 인근에 위치한 덕포진은 언제나 소풍을 온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는 조용한 역사 유적지로 역사체험과 소풍을 겸할 수 있는 좋은 명소라 할 수 있다.


김포 덕포진은 염하를 지나가는 선박을 향해 포를 발사할 수 있는 중포가 설치된 포대를 중심으로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염하 건너편에 설치된 남장포대와 함께 가장 많은 포가 배치되어 있는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요지이다.


덕포진에는 2군데에 포대가 설치된 것으로 보이며, 남쪽에는 약 10여문의 포를 설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덕포진 포대 안쪽 모습


덕포진 포대 바깥쪽. 모든 포대는 곡선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거의 같은 방향에서 일제 사격과 연발 사격이 가능하도록 포가 배치된 것으로 보인다.


안쪽의 두번째 포대는 첫번째의 절반인 5문의 포를 설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덕포진 건너편 강화도 해안의 남장포대와 덕진진돈대가 설치된 지역. 안쪽으로 들어간 지형이 남장포대이고 해안가로 나와 있는 곳이 덕진진 돈대이다.


강화해협 염해 입구 평지에 설치된 초지진 돈대가 있는 지역.


덕포진 포대 앞 해안가. 멀리 초지대교가 보인다.


가족 소풍 오기에 좋은 덕포진 풍경



조선시대 진영으로, 이곳은 서울로 통하는 바닷길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대였던 곳이다. 처음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현종 7년(1666)에 강화에 포함되었다. 높직한 평지에 세운 포대인 돈대와 대포를 쏘는 포대, 그리고 포를 쏠 때 필요한 불씨를 보관하고 포병을 지휘하는 파수청이 있다. 돈대는 중요한 전략지에 있어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함대와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함대와 싸웠다. 1980년에 행한 발굴조사 결과 7개의 포탄과 2개의 상평통보 등이 출토되었고 주춧돌과 화덕자리를 발견하였다. <출처:문화재청>

조선시대의 진영으로 포대 및 파수청이 있던 곳이다. 처음 세워진 연대는 조선 선조 시기로 추정되지만 기록에 의하면 현종 7년(1679년)에 광성보.덕포진 용두돈대와 함께 새롭게 진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덕포진 돈대가 위치하는 곳은 한성으로 통하는 바닷길을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 함대와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함대와 싸웠던 격전지이다. 1980년 발굴조사 당시 고종 11년에 만들어진 중포 4문과 소포 2문이 포대에 걸려 있는 채 발굴되었으며, 포탄과 상평통보가 같이 출토되었다. 건물터에서는 주춧돌과 화덕자리가 발견 되었는데, 건물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둘레에 맞담을 쌓듯이 둘러친 석벽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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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 김포 덕포진 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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