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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양화대교와 당산철교를 지나갈 때 볼 수 있는 양화나루.잠두봉 유적이다. 절두산 순교자 기념관으로로 불리는 이 곳은 구한말 천주교 박해때 숨진 순교자들과 외국인 선교사들이 이 곳에 묻히면서 천주교에서 중요한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기념관이 있는 잠두봉은 누에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잠두봉이라 불리며, 서양인들이 한국에 들어올때 이 곳을 통해서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주변의 외국인묘지와 함께 서구적인 분위기를 많이 주고 있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참수되었다고 해서 절두산이라고 불리는 이 곳은 서소문, 원효로와 함께 순교 성지로 불리며, 풍수가들은 그런 사실과 철도를 연결시켜서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한강변 양화진 나루터에 있는 잠두봉 정상에 조성된 천주교 절두산순교자기념관.



기념관은 잠두봉 경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지었기 때문에 잠두봉의 경관과 기념관 성당 망루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천주교 절두산순교자기념관. 미사를 올리는 성당과 기념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당 내부


기념관 성당 올라가는 길. 입구에 현대적인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이 있다.


기념관에 있는 동상들. 김대건 신부 동상이 큰 마당 한 가운데 있고, 양화나루 쪽에는 순교자 24인을 위한 현대 조각상이, 정원 한가운데에 교황 흉상이 있다.


최근 성당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십자가의 길. 정원에 있는 길에 조각상들을 세워 놓고 있다.



마당 한쪽에 있는 척화비(모조품)


많은 사람들이 찾는 성모마리아상





한국 천주교의 성지인 잠두봉과 주변에 있었던 양화나루터를 가리킨다. 잠두봉은 봉우리가 누에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66년 천주교에서 잠두봉을 중심으로 성당과 기념관을 세웠고 주변 지역을 공원으로 꾸몄다. 성당과 기념관 안에는 이벽, 이가환, 정약용 등 천주교와 관련된 조선시대 후기 학자들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광장 안에는 김대건, 남종삼의 동상과 사적비가 있다. 잠두봉 주변에 있었던 양화나루터는 잠두봉이 사적으로 지정된 뒤 추가로 지정된 유적이다. 지금은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조선시대 교통의 요지였으며 곡식을 분배하고 군사상 중요 기능을 맡았던 곳이다. 조선시대 후기 역사의 흐름과 함께 시대의 많은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가치있는 유적이다. <출처:문화재청>

일명 절두산 순교자 기념관으로도 불린다. 병인박해 100주년을 맞아 순교자들의 숭고한 신앙심을 받들기 위해, 병인순교 100주년 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한국 천주교회가 1967년에 건립했다. 양화진은 조선 말기 신·구 양 교파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성지(聖地)로 대원군이 병인박해 때 천주교에 대한 박해를 다시 시작함으로써 수많은 교도들이 순교했고, 한국 선교에 혼신을 다해 힘써왔던 외국 선교사들이 이곳에 묻히게 되어 한국 그리스도교의 성지가 된 곳이다. 1866년부터 대원군의 박해로 인해 그후 6년간 죽어간 이들의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천주교측에서는 1만 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대부분의 순교자들이 재판도 없이 즉결참수의 방식으로 죽어갔기 때문에, 그 행적과 이름을 알 수가 없다. 뮈텔(Mütel) 주교에 의해 24명만이 열복(列福)조사서가 꾸며졌고, 1968년에 로마 교황에 의해 순교복자로 시복되었고, 1984년 다시 성인으로 추중되었다. 이 기념관은 건평 460평에 3층 건물로 되어있고, 절두산 성지의 원형훼손을 우려해 원형보존에 각별히 신경을 써서 건립되었다고 한다. 소장품으로는 순교자들의 유품과 고문에 사용된 각종 형구(刑具)를 비롯 초창기 천주교 창설에 힘썼던 이들의 유물·유품·사료 등을 전시함으로써 한국 천주교의 역사적 유래를 짐작케하고 있다. 또한 기념관 앞뜰에는 김대건 신부의 동상과 순교자들과 관련된 비석 석상이 있고, 건물 지하에는 24인의 순교 성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출처: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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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 절두산 순교자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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