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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공예품은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많은 금속공예품 중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사리엄장구와 불전에 공양을 드릴때 사용하는 공양구, 범종을 비롯한 범음구, 승려들이 소지하던 정병 등이 있다.
 
 동국대박물관에는 국보 176인 청화백자송죽문호와 보물 741호로 지정된 민애대왕 석탑사리호를 비롯하여 대표적인 불교 공예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 분류방식은 중앙박물관과 비슷한 것 같다. 그 중 국보인 청화백자송죽문호는 귀한 것이라 그런지 박물관에는 전시하지 않고 있었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많은 불교공예품들은 개인이 소장한 경우가 많은 것 같고, 사리함은 국립박물관에서 주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애대왕 석탑사리호(통일신라, 863년, 보물741호). 통일신라때 만들어진 사리항아리로 몸통에 새겨진 글자로 보아서 신라 민애왕과 관련된 석탑이라는 것을 추정하게 한다.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보물 제247호) 내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의 사리 항아리이다. 사리를 탑에 보관하기 위해 사용된 이 항아리는 높이 8.3㎝, 아가리 지름 8.0㎝, 밑지름 8.5㎝이다. 현재는 크고 작은 4개의 조각으로 깨졌고, 뚜껑도 없어졌으며 몸통도 완전하지 않은 상태이다. 이와 같은 손상은 도굴 당시에 입은 피해로 보인다. 아가리가 넓고 어깨가 부풀어 있으며, 아랫부분이 좁은 항아리 모양으로 작고 아담하다. 이러한 형식은 법광사 삼층석탑, 취서사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사리 항아리와 같은 것으로 9세기 중엽 신라에서 유행하던 양식이다. 항아리 표면 전체에 흑칠을 한 점이 특이하다. 어깨부분에는 꽃 구름무늬와 촘촘한 빗금 꽃무늬를 두 칸에 나누어 새겨 둘렀다. 몸통에는 가로, 세로로 칸을 내어 7자 38행의 글자를 음각하였다. 글 중에는 이 항아리가 신라 민애왕(재위 838∼839)을 위하여 건립된 석탑과 연관이 있으며,민애왕의 행적들이 꼼꼼하게 적혀있다. 또한 탑을 만든 시기가 경문왕 3년(863)임을 알 수 있게 하는 내용이 있다. <출처:문화재청>


청동사리함


'영태2년'명 탑지석 및 사리호 (통일신라, 766년)


은제사리합(고려)


청동현로(고려)와 '기축'명 청동향완(고려)


'부석사'명 철제은입사향완(조선,1719년)


'을사'명 청동금고 (고려)


청동소종(고려)


'묘향산'명 금강령, 경태4년명 금강령, 청동오고저


청동정병(고려)


卍자문 동경(고려)


지정원년명 옥등(고려, 1341년)



실상사동종 (통일신라)


청동소종(고려시대)


왕녀복란 태호와 태지석(조선, 1486년)


목조소통(조선)


목어

불교공예
동국대학교 소장 불교공예품은 사리엄장구, 공양구, 범음구로 구분되며, 특히 고려시대의 작품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사리엄장구는 납석제 사리호와 소탑등이 있는데, 사리호는 통일신라시대에 많이 제작되었으며, 소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조탑경인 '무구정광다라니경'의 장엄한 법식에 따라 제작된 것이다. <민애대왕 석탑사리호>는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것으로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공양구는 불전에 공양을 올릴때 사용하는 것으로 향로를 비롯해 화병, 촛대, 다기 등이 있다. 향로는 향공양을 올릴 떄 사용하며 대표적인 기형으로 향완을 예로 들수 있다. <지정4년명 청동은입사향완>은 고려시대 은입사기법의 정수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이밖에 조선시대의 향로인 <부석사명은입사향로>는 철로 제작되었고, 대좌에 팔괘가 나타나고 있다. 불단 위에 꽃 봉양을 올릴 때 사용했던 <국보176호, 홍치2년명 청화백자송죽문호>는 조선전기의 대표적인 화병이자 연대가 확실한 최고의 청화백자이다. <출처:동국대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