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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철거 광화문 주요 부재와 북관대첩비

younghwan 2010. 9. 1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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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외조가 시작되는 흥례문 서쪽편에는 고궁박물관 마당에는 법천사지광국사 현모탑과 함께 얼마전까지 경복궁 정문 역할을 하다 철거된 옛 광화문 주요 부재들이 전시되어 있다. 경복궁 제모습 찾기의 일환으로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된 광화문이 옛날 콘크리이트로 지은 광화문과 그 모습이 비슷한 점으로 봐서 비록 콘크리이트로 지었지만 원형에 충실했음을 알 수 있다. 광화문의 옛날을 추억하는 단초로서 광화문을 이루고 있는 주요 요소들의 일부를 볼 수 있게 해주는 바람직한 전시라고 보여진다.

 북관대첩비는 일제에 의해 일본으로 옮겨진 임진왜란 승전비로 2000년대에 일본으로 반환받았다가 원래의 위치인 북한으로 다시 돌려준 것이라고 하며, 현재는 그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주심포. 광화문 문루의 기둥 상부에 있는 공포부분이다. 공포란 처마의 하중을 받아 기둥에 전달하는 부재로 장식의 역할도 있다. 전통건축의 가구적 구조 특징을 잘 보여주는 부재이다.


주간포. 광화문 문루의 기둥과 기둥 사이에서 수평으로 연결한 부재 위에 얹은 공포부분이다.


귀공포. 광화문 문루의 모서리 기둥 상부에 놓은 공포로 위에서 볼 떄 십자맞춤과 함께 45˚각도의 맞춤부재까지 있어 가장 복잡하게 꾸며진다.


추녀. 추녀는 모서리 기둥 상부에 대각선 방향의 경사진 부재로서 전통 건축의 곡선미를 잘 표현한 부분 중의 하나이다. 또한, 추녀의 귀솟음으로 인해 육중한 지붕이 처져 보이는 것을 시각적으로 안정감 있고, 가볍게 보이도록 하였다.


내부계단. 광화문 내부의 문루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계단이다.


우물반자. 반자는 지붕 또는 천장의 구조물을 가리기 위해 장식하여 꾸민 실내의 상부 구조물로 일반 살림집에서는 볼 수 없고 궁궐이나 사찰과 같이 격이 높은 건물에서 주로 사용했다.


여장. 성벽 위에서 전투시 공격과 수비를 위하여 규칙적으로 총구 등을 둔 낮은 담장을 여장이라 한다.




해체되기 전 콘크리이트로 지은 광화문


복원된 광화문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태조4년(1395년) 경복궁 창건당시 함께 지어졌으나,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다. 그 후 고종 2년(1865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다시 지었으나,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청사의 건립에 따라 1925~27년 사이에 건춘문 북쪽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시 광화문 문루가 파괴되었고, 1968년 12월 현재 위치에 철근콘크리이트 구조로 세워졌으나, 조선 총독부청사의 축에 맞추어 건립되면서 현재 위치에서 북측으로 11.2m, 동쪽으로 13.5m 떨어지고, 경복궁의 중심축에서 약 3.75˚ 반시계방향을 틀어지게 되었다. 이 곳에 전시된 부재는 2007년 해체된 철근콘크리이트 광화분의 일부분이다. 60년대 정부의 공업화정책으로 문화재 복원에도 철근 콘크리트가 자주 사용되었다. 철근콘크리트 광화문은 전체를 일체화하여 타설하는 일반적인 건축방식이 아닌, 각 부재별로 제작되어 조립하는 전통목구조의 방식으로 세워졌다. <출처:고궁박물관>


북관대첩비(복제품)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때 북평사 정문부 선생이 의병을 일으켜 함경도 길주, 백탑교 등지에서 가토 가요마사가 이끄는 왜병들을 격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승전비이다. 러.일 전쟁이 일어나자 이 지역에 주둔한 일본군 이케다 마사스케 소장이 이 비석을 읽어보고 자기네 조상들의 패전기록을 알게되자 이 비석을 뽑아 일본으로 보내버렸다. 그 후 이 비석은 일본 황실에서 보관하다 야스쿠니 신사로 옮겨졌다. 그후  정부와 민간단체들의 반환 요구로  2005년 10월에 이 비를 반환받았다가. 2006년에 북한의 원소재로 인도되었다. <출처: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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