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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_향교_사당

양주목 관아, 양주향교

younghwan 2010. 9. 2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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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주목은 조선시대 수도 한양의 동북쪽 관문으로 지금은 경기북부지역에 있는 작은 도농복합시이지만 현재의 양주시, 동두천시, 의정부시, 구리시, 남양주시, 서울 동북쪽 노원구, 강북구, 중랑구, 도봉구 일대를 포함하는 상당히 큰 고을이었으며, 정3품에 해당하는 목사가 고을의 수령이었던 곳이다. 양주목의 규모에 맞게 양주목 관아는 서쪽편 객사자리가 있었던 유양초양학교부터 시작하여 동쪽편 양주향교까지가 관아가 있었던 지역으로 그 넓이가 상당히 넓다.

 양주목 관아지 동쪽편에 자리한 양주향교는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것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양주목 관아를 구성하던 건물 중 제일 먼저 복원되었는데, 고을 규모에 걸맞게 향교 또한 넓고 규모가 있어 보인다. 양주향교는 앞쪽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뒷편에 대성전을 두고 있는 전하후묘의 건물배치를 하고 있다. 양주향교의 특이한 점은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는 없고 대신에 대성전 앞에 우리나라 성현들을 모시는 동무.서무를 두고 있는 점으로 제사기능을 중요시한 향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주향교는 양주목 관아터 동쪽편 언덕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양주목 고을 규모에 걸맞게 큰 규모를 하고 있다.


양주향교 외삼문 앞에 있는 향교의 역사를 말해주는 고목


양주향교 외삼문


양주향교 강학공간인 명륜당. 명륜당은 앞면 5칸의 규모가 큰 건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양주향교는 외삼문으로 들어갈 수는 없고 명륜당 동쪽편에 있는 쪽문을 통해서 출입할 수 있다.


양주향교 강학공간인 명륜당 앞에는 유생들이 기거하던 기숙사인 동.서재가 없고, 건물 양쪽편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양주향교 명륜당


양주향교 제사공간인 대성전 출입문으로 일반적인 삼문을 두지 않고, 3개의 작은 출입문을 두고 있다.


양주향교 제사공간인 대성전. 앞면3칸, 옆면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큰 건물이다.


대성전 앞 마당에 있는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동무.서무. 양주향교는 전체 공간에서 대성전과 동.서무가 차지하는 공간이 상당히 크며, 이는 제사기능을 중시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향교 입구의 공덕비



향교는 공자 등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국립교육기관이다. 양주향교는 태종원년 1401년에 처음 지었으며,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958년 다시 지었다. 건물의 전체적인 배치를 보면 입구인 외삼문을 지나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이 있고, 그 뒤 내삼문 안쪽에 제사지내는 공간인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는 전학후묘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안쪽에는 공자와 중국 4대 성현의 위패가 있으며, 대성전 좌우에 있는 동무와 서무에는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명륜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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