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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양주목 관아, 목사가 근무하던 동헌

younghwan 2010. 9. 26.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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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수도 한양의 동북쪽 관문에 있었던 양주목은 양주시, 의정부시, 동도천시, 남양주시, 구리시와 서울의 강북구, 도봉구, 중량구, 노원구 지역을 포함하는 아주 큰 고을로 외관직인 정3품의 양주목사가 다스리던 지역이다. 지금은 경기북부의 도농복합시인 양주시의 작은 시골마을에 옛 양주목 관아지가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 양주군의 행정기관이 경원선 철도역이 있는 의정부로 옮겨가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옛 관아 건물들이 모두 불타버리고 그 옛터만이 남아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그 옛터에 양주향교가 제일 먼저 복원되고, 관아 건물로는 동헌만이 복원되어 있다.
양주시 유양동 불국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옛 양주관아터에 복원된 양주목 동헌을 보면, 비록 복원된 건물이지만 옛날 양주목이 얼마나 큰 고을이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양주목 동헌은 앞면 7칸, 옆면 4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상당히 큰 건물로 지방수령이 근무하던 건물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규모의 건물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헌 건물은 규모는 크지만 장식이나 구조가 화려하지 않고 안정적이면서 권위를 느끼게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양주목사가 근무하던 동헌은 직사각형으로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다른 지방의 동헌과는 달리 정3품의 목사가 근무하던 장소라 그런지, 궁궐 정전과 같은 느낌을 주고있는 상당히 큰 건물이다. 건물의 높이도 일반 건물에 비해서 상당히 높아 보인다.


앞면7칸, 옆면 4칸으로 내부에는 어떤 형태로 방을 구분했는지는 보지 못했지만, 관청건물로서는 중앙관청 건물보다다 더 큰 것 같다. 비슷한 유형의 건물을 굳이 찾자면 집현전으로 쓰였던 경복궁 수정전과 비슷해 보인다.


문살은 단순하면서도, 궁궐건물과는 달리 위로 걸어올릴 수 있는 구조는 아닌 것 같다.


동헌 현판.


양주목 관아의 관청건물들이 상당히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었다.


양주목 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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