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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양주 회암사 무학대사 홍융탑 (보물388호)

younghwan 2010. 9. 2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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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주 회암사는 고려말에 창건되어 조선후기에 폐사된 사찰로 조선 건국에 관련된 무학대사가 주지로 있었으며,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서 물러나 머물렀던 사찰로 조선 왕실과 관련이 많은 큰 사찰이다. 옛날의 영광을 간직한 옛 회암사는 그 건물터만 남아 있고 절터 뒷편에는 회암사와 관련된 고승들의 부도가 여럿 있으며, 그 부도를 중심으로 현재의 회암사가 자리잡고 있다.

 회암사 옛터에서 뒷쪽으로 올라간 언덕에 있는 고승들의 부도 중 대표적인 것으로 보물로 지정된 무학대사 홍융탑은 8각의 바닥돌 위에 용과 구름이 새겨진 몸둘과 목조건축물 형태의 지붕돌로 구성된 부도로서 조선전기 부도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학대사 홍융탑은 현재의 회암사 동쪽편 언덕에 있으며, 여러기의 부도 중 제일 앞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부도는 사방에 돌로 만든 난간이 둘러져 있으며, 정면으로는 양주 지역의 넓은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무학대사 홍융탑은 8각 바닥돌 위에 기단이 놓여 있다. 기단 아래.윗돌은 연꽂모양이고 가운데 돌은 북모양을 하고 있다.


부도 탑신의 몸돌에는 용과 구름무늬가 생동감있게 조각되어 있다.


탑신의 지붕돌은 목조건물의 지붕을 본떠서 만든 전형적인 고려시대 부도의 지붕돌의 모습을 하고 있다.


회암사 무학대사 호융탑은 부도, 부도앞 석등, 탑비가 나라히 서 있으며, 부도의 구성요소가 제대로 남아 있는 문화재이다.


양주 회암사 무학대사 홍융탑



회암사는 고려 충숙왕(1328)때 지공(指空)이 창건하여 조선 순조 때인 1800년대에 폐사된 사찰이다. 조선 전기 왕실의 보호를 받던 절로서 태조 이성계가 늙은 후에 머무르면서 수도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절터의 북쪽 능선 위에 지공(指空), 나옹(懶翁)의 승탑과 함께 서있는 이 부도는 무학대사(無學大師)의 묘탑이다. 둘레에는 탑을 보호하기 위한 난간이 둘러져 있다. 회암사의 주지이기도 했던 무학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활약한 승려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의 관계로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이성계의 꿈을 풀이하여 왕이 될 것을 예언한 이야기와 한양천도와 관련된 설화 등은 특히 유명하다. 부도의 형태는 구름무늬를 조각한 8각의 바닥돌 위에 받침부분인 기단(基壇)이 놓이고 탑신(塔身)과 머리장식부분이 포개져 있는 모습이다. 기단의 아래·윗돌은 연꽃모양의 돌이고 가운데돌은 배가 불룩한 8각의 북모양으로 각 면에는 모양이 서로 다른 꽃조각이 도드라져 있다. 탑신은 몸돌이 둥근 모양으로 표면에 용과 구름이 가득 새겨져 시선을 모은다. 용의 머리와 몸, 비늘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생동감있게 보이고 구름무늬가 한층 운동감을 느끼게 한다. 지붕돌은 8각으로 처마부분에는 목조건축을 흉내낸 모양들이 새겨져 있다. 경사는 급하며 추녀끝은 가볍게 들려있다. 지붕 꼭대기에는 둥근 돌 하나만 올려놓아 간소화된 형태를 보인다. 조선 전기의 양식을 보여주는 이 부도는 규모가 웅대하고 모양도 가지런하다. 무학대사묘비의 기록으로 미루어 1407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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