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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양주 회암사 무학대사 홍융탑 앞 쌍사자석등 (보물389호)

younghwan 2010. 9. 2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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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주 회암사 무학대사 부도를 구성하고 있는 홍융탑 앞 쌍사자석등이다. 이 쌍사자석등은 바닥돌과 아래받침돌이 하나로 붙어 있으며, 그 위에 화사석을 두고 있다. 이 석등은 기존의 8각 석등형태에서 사각형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큰 특징이며, 무학대사의 명성이 연관되어서 보물로 지정된 것으로 보인다. 조각된 쌍사자는 가슴과 배가 붙이 있어서 입체감이 부족하고 그 조각 수법도 크게 세련되었다고 할 수 없으며, 화사석은 2개의 석재를 그냥 올려놓아 단순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양주 회암사 무학대사 홍융탑 앞에서 불을 밝혀주는 역할을 하는 쌍사자석등. 연꽃무늬가 새겨진 바닥돌과 아랫받침돌이 하나로 되어 있으며 쌍사자상이 중간받침돌 역할을 하고 있다.


회암사 무학대사 홍융탑 앞 쌍사자석등


쌍사자상을 새겨놓은 중간받침돌은 이전의 쌍사자석등에 비해서 입체감이 부족하고 조각수법이 많이 떨어진다.



화사석은 양쪽에 기존의 8각형에서 단순화된 4각형 형태를 하고 있는데, 양쪽에 2개의 석재을 올려 놓고 있다. 예술적인 조형미는 이전의 팔각형 석등에 비해서 많이 떨어지고 만들기 쉽게 되어 있다. 지붕돌 또한 목조건축물의 지붕을 모방한 형태인데 세련미가 부족해 보인다.


옆에서 본 석등


부도 앞 제단


회암사 무학대사 홍융탑과 쌍사자석등



회암사는 고려 충숙왕 때인 1328년에 승려 지공(指空)이 창건한 사찰로, 그 제자인 나옹(懶翁)이 불사를 일으켜 큰 규모의 사찰이 되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각별히 관심을 가졌으며, 왕위를 물린 후에도 이 곳에서 머무르며 수도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절터의 동쪽 능선 위에 지공과 나옹 그리고 무학의 사리탑이 남과 북으로 나란히 서있고, 그 남쪽 끝에 이 석등이 자리하고 있다. 바닥돌과 아래받침돌은 하나로 붙여서 만들었으며, 그 위의 중간받침돌은 쌍사자를 두어 신라이래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쌍사자는 가슴과 배가 서로 붙어 입체감이 없고 엉덩이가 밑에 닿아 부자연스럽다. 윗받침돌에는 8개의 연꽃모양을 새겼다. 불을 밝혀두는 곳인 화사석(火舍石)은 2개의 석재를 좌 우에 놓아 그 간격으로 생긴 2개의 공간이 창의 구실을 하고 있다. 지붕돌은 두꺼우며 처마밑이 반원모양으로 들려 있고, 경사면은 네 귀퉁이가 두툼하게 도드라져 뚜렷이 표현되었다. 지붕돌 꼭대기에는 둥근 돌 위로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있다. 기본형이 4각인 형태로 삼국시대이래 고유의 8각 석등형태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주목되며, 청룡사터의 보각국사 정혜원륭탑전사자석등(보물 제656호)과 양식이 비슷한데, 만들어진 시기도 이와 같은 것으로 보아 조선 전기의 작품으로 추측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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