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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천안 직산현 관아, 지방 수령이 근무하던 동헌

younghwan 2010. 10. 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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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산현은 조선시대 6대간선도로 중 하나로 호남과 충청지역과 연결된 도로상에 있는 주요 고을 중 하나였고, 경기지역을 벗어난 호서지역의 첫번째 고을로서 의미가 있었던 곳이다. 지금도 직산현 부근으로 1번 국도와 경부고속도, 경부선 철도 등 주요 교통수번의 얼굴이 되는 노선이 지나가고 있는 곳이다.

 옛 직산현 관아가 있는 곳은 지금은 주요 교통로에서 약간 벗어난 까닭에 한적한 시골마을 읍소재지가 되는 곳이다. 이 곳에는 옛관아건물을 헐고 세워진 직산초등학교가 관아 건물터에 들어서 있다. 그나마 개발이 덜된 지역이기때문에 옛 관아건물 중 내동헌.외동헌.내삼문,아문의 4동의 건물이 남아 있다. 옛 기록에는 객사, 군기, 동헌, 내아 등 많은 건물들이 있었다고 하며, 그 내용을 보면 주요 교통로에 있었기때문 찾아와서 머물다 가는 손님이 많아서 그런지 내아가 30칸으로 많은 방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면, 동헌에도 뒷편에 내동헌이라고 해서 사람이 숙박할 수 있는 건물이 있는데 이는 다른 지역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형태이다.


천안 직산면소재지에 위치한 옛 직산현 관아는 현재 내.외삼문, 내동헌, 외동헌이 남아 있다. 이 건물들은 1990년대까지 직산면사무소 건물로 사용되었다가 옛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지방의 관아 건물 중 남아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면사무소 건물로 사용하다가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경우가 많고, 또한 관아 건물 중 양조장으로 바뀐 경우도 여러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많은 관아 건물 중에서 초등학교교사로 사용하다가 건물이 허물어진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한다.



직산현 관아 아문을 들어서면 언덕에 솟을대문과 문간채로 구성되 내삼문이 있다.


보통 내삼문 문간채는 하급관료들이 사용하는 방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곳 직산현에서는 창고로 되어 있다.


지방수령이 근무하던 동헌은 앞면 7칸의 규모가 있는 건물이다. 가운데 대청마루는 수령이 앉아서 재판을 하거나 민원을 듣는 의자가 있었던 것 같고, 양쪽으로는 손님을 맞을 수 있는 2칸씩의 온돌방이 있다.


이 곳 직산현 동헌 건물은 관리가 잘 안되서 그런지 문짝이 떨어져 있고, 출입문도 잠겨 있어서 외부인이 안으로 들어가 보기 힘들게 되어 있다. 아마도 천안 도심에서 먼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행정기관의 관심도가 떨어지는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외동헌 뒷편


고을 수령이 업무를 보던 내동헌 뒷편에는 별도로 앞면 4칸규모의 작은 숙소가 있다. 이 곳은 직산현감의 숙소로 사용한 건물이라고 하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건물이다. 원래 현감의 숙소로 내아가 있고, 자료를 보면 내아의 건물칸수가 객사보다 많을 정도 큰 규모였던것 같은데 아마도 워낙 교통 중심지에 위치한 고을이기 때문에 이 곳에 찾아와서 숙식하는 경우가 많았기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직산현 고을 안에는 조선시대 중요 교통로의 숙박시설인 성환역이 있었다고 한다.


내동헌 뒷편


직산현 출입문인 아문


직산현 관아 전경. 담장밖에는 이 곳 수령을 거쳐간 인물들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이 곳 직산현 관아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동헌 서쪽편 객사가 있었던 자리에는 양조장이 들어서 있고, 동쪽편 내아가 있었던 곳에 직산초등학교가 있다.

조선시대 직산현의 지방행정관청이다. 북쪽에서부터 내동헌·외동헌·내삼문·외삼문 4동의 건물이 남쪽에서 약간 동쪽을 향해 기울어진  방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가장 앞쪽에 위치한 외삼문은 관청의 정문으로,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건물이다. 아래층 3칸에는 3문을 달아 동헌으로 통하도록 하였고 위층에는 마루를 설치하였다. 건물의 가운데 칸에 ‘호서계수아문(湖西界首衙門)’이라는 현판이 있다. 외삼문을 지나면 동헌의 앞에 자리한 내삼문이 있다. 앞면 9칸·옆면 1칸 규모의 건물로, 가운데 칸에 출입문인 솟을대문이 있고 양 옆에 각각 3칸·5칸의 창고로 쓰이던 고방이 달려있다. 내삼문의 안쪽에는 현감들이 업무를 보던 건물인 외동헌이 있다. 앞면 7칸·옆면 3칸의 건물로, 가운데 4칸은 대청을 크게 만들었고 그 옆으로는 온돌방이 있다. 면사무소로 사용되다가 1990∼1991년에 고쳐 지어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가장 안쪽으로 자리한 내동헌은 현감의 살림집으로,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이다. 오른쪽으로 3칸은 마루가 달린 온돌방을 두었고 왼쪽 1칸에 부엌을 만들었다. 『여지도서』에는 객사 19칸·군기 6칸·동헌 14칸·내아 30칸 등 많은 건물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은 4동의 조선 후기 건물만이 남아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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